통일부-남북하나재단-탈북민 단체 모여 협의
정동영 평화당 대표, 직접 동참해 중재 나서
문구마다 대치…마지막까지 "사인 못해" 반복
4시간 논의 끝…내달 10일 새터민장으로 장례
통일부-남북하나재단-탈북민 단체 모여 협의
정동영 평화당 대표, 직접 동참해 중재 나서
문구마다 대치…마지막까지 "사인 못해" 반복
4시간 논의 끝…내달 10일 새터민장으로 장례
"남북회담만큼 어려웠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28일 탈북단체 중심의 비상대책위원회와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의 '삼자대면' 자리에서 한 말이다. 정 대표는 지난 7월 아사한 채 발견된 탈북모자의 장례와 관련해 중재를 이끌었다.
정 대표의 말에서 가늠하듯, 비대위와 재단 사이의 중재는 접점을 찾으려 하면 엎어지길 거듭했다. 중재는 오후 3시경에 시작해 무려 4시간 동안 진행됐다. 비대위와 재단 측은 수 차례 작전타임을 가졌다. 문구 등의 이견으로 버려진 합의문만 9장에 달했다. 정 대표가 '마지막'이라고 했던 합의문에서조차 비대위에서 "사인 못 하겠다"는 말이 나왔다.
이들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끝에 오후 7시경 합의문을 발표했다.
탈북모자 장례는 북한이탈주민장으로 10일 진행키로 했다. 빈소는 8일부터 마련된다. 비대위와 재단은 탈북모자 아사사건의 재발방지를 위해 협의체를 구성·운영키로 했다. 아울러 통일부와 재단은 탈북민 정착지원 등의 활동을 하는 탈북민 협력망의 활성화와 지원을 확대키로 했다. 평화당과 비대위, 재단은 서명한 합의문을 한 장씩 나눠가졌다.
이날 자리는 우연히 광화문 탈북모자 분향소에 들렸다가 수 개월째 장례가 치러지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된 정 대표가 마련했다. 앞서 탈북단체는 정 대표와의 만남에서 '모자의 사인을 아사(餓死)로 밝혀줄 것'과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합의문을 작성하는 각론에 들어가자, 극명한 입장차가 드러났다. 비대위와 재단은 각각 자신들의 입장을 담은 합의문을 가져와 반영해줄 것을 요구했다. 비대위는 합의문의 구속력을 담보하기 위해 통일부 장관의 서명과 양해각서 등을 역설했다. 반면 재단은 수개월째 지연되고 있는 탈북 모자의 장례부터 치르자는데 주안점을 뒀다.
비대위는 "모자의 죽음에는 통일부와 재단의 책임이 있다. 일방적으로 장례를 강요해선 안 된다"며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확약을 받아야 한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재단 역시 "정부와 재단을 향한 탈북단체의 불신이 크다는 걸 안다"면서도 "(각서 등은) 법률적·제도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난색을 표했다.
문구 하나하나를 놓고도 대치했다. 비대위는 협의체 구성에 '통일부와 하나재단'을 모두 넣어줄 것을 요구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전국적인 탈북민 협력망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부분에서 '전국적인'이라는 표현을 빼줄 것을 주장했다.
정 대표는 탈북모자 장례를 '북한이탈주민장'이 아닌 '새터민장'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협의 끝에 '통일부'라는 단어는 포함됐고 '전국적인'이라는 표현은 빠지지 않았다. '새터민장'은 '북한이탈주민장'과 함께 표기하기로 했다.
탈북모자의 장례 날짜를 놓고도 양측은 오랜시간 공회전했다. 당초 정 대표는 오는 31일 장례를 치를 것을 제안했지만, 비대위에서는 "너무 빠르다"며 손사래를 쳤다. 재단 측은 내달 10일을 건의했고, 비대위는 16일을 주장했다. 결국 장례를 최대한 빨리 마무리해야 한다는 공감대에 따라 10일 진행키로 합의했다.
양측의 합의에는 정 대표의 적극적인 중재의 역할이 컸다. 정 대표는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협의체가 출범해야 한다", "논의가 쳇바퀴를 돌면 안 된다"고 재차 설득했다.
이견이 있을 때면 대부분 비대위의 편에 섰지만, 양해각서 등 과도한 요구에는 제동을 걸었다. 양측에 "조건과 단서를 달면 안 된다", "통 크게 합의해야 한다", "합의 문구보다 실천이 중요하다"고 재차 주문했다.
비대위와 재단 측이 한 발씩 양보한 것도 합의에 영향을 미쳤다. 정 대표는 "남북회담만큼 어려웠다"고 말했다. 탈북모자 아사사건으로 사의를 표명한 고경빈 남북하나재단 이사장은 "(합의 내용이) 내일 신문의 1면 톱에 올라갔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비대위도 "이사장의 힘든 과정을 이해한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들은 합의문에 최종 서명한 뒤 손을 맞잡고 기념촬영을 했다. 평화당은 "오늘 합의로 탈북모자의 장례가 최대한 예를 갖춰 치러지게 됐다"며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탈북민의 현실을 되돌아보고 더 이상 비극적인 사건이 재발하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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