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부부의 세계' 히로인 지선우 연기
복잡다단한 인물 다채로운 감정 표현
<배우의 얼굴은 변화무쌍합니다. 비슷한 캐릭터라도 작품에 따라 달라지고, 같은 작품이라도 상황에 따라 다른 색을 냅니다. 대중은 그 변화하는 얼굴에서 희로애락을 읽으며 감정을 이입합니다. 여기서는 최근 주목할 만하거나 화제가 된 배우들의 작품 속 얼굴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
비지상파 드라마 최고 시청률 기록(28.4%)을 쓰며 종영한 JTBC '부부의 세계'. 드라마의 중심에는 지선우 역을 연기한 관록의 배우 김희애가 있다. 배우조차 "매 신이 산 넘어 산이었다"고 했을 만큼 김희애가 맡은 지선우는 복합적이고, 감정 소비가 많은 인물이다.
지선우는 남편 이태오(박해준 분)를 향한 미움, 사랑, 증오, 연민 등 다양한 감정을 지닌 사람이다. 잘나가는 의사이지만, 부족하고 바람피운 남편을 미워하면서도 끊지 못한다. 시청자들은 이를 두고 이해할 수 없다고 하지만 김희애는 지선우를 흔들리고 부족한 한 인간으로 규정해 변화무쌍한 얼굴로 표현했다.
지선우는 극 초반 남편의 불륜을 알아차리고, 친구들에게 배신받는다. 김희애는 완벽했다고 믿은 자신의 세계가 헝클어진 지선우를 무너져 내리는 표정으로 드러냈다. 당장이라도 남편의 불륜을 까발리고 싶지만 울음을 삼키며 참아내는 장면에서는 얼굴에 절망감이 가득했다. 김희애의 분노 섞인 울음에 시청자 역시 분노했다.
사이다를 선사해준 남편의 불륜을 까발리는 장면에선 침착함과 노련함, 여유가 얼굴에 번졌다. 불륜녀의 부모 앞에서 불륜녀의 임신을 알리고 불륜녀에게 한 대 얹어맞았음에도 김희애의 얼굴에는 흔들림이 없다. 모든 걸 체념한 듯한 표정은 담담했다. 이후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장면에서 클로즈업된 얼굴엔 지선우의 복잡한 마음이 엿보였다. 이런 행동을 해야만 했던 지선우의 공허한 심정은 김희애의 얼굴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냈다. 마음이 후련하면서도 지선우가 안쓰러운 이유다.
남편 때문에 망가지면서도 자신의 일을 놓지 않는 지선우는 멋졌다. 환자를 볼 때만큼은 얼굴에 자신감과 생기가 돌았고, 누구와 있을 때보다 행복해보였다. 완벽한 스타일링을 보여준 지선우가 여우회에 들어간다고 선포했을 때는 특유의 당당한 기운이 얼굴에 드러났다. 병원에서 잘 나가는 의사 지선우의 매력은 오랜 시간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온 김희애표 얼굴을 만나 극대화됐다.
극이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김희애는 극한의 감정까지 소화해야 했다. 아들에게까지 버림받고 바다에 뛰어든 장면은 압권이다. 모든 걸 체념한 듯한 표정, 가장 소중한 아들을 잃은 허망함이 얼굴에 가득해 시청자들을 울렸다. 실제로 저런 경험을 한 것처럼 사실적이었다.
이후 아들의 부름을 받고 여다경(한소희 분) 앞에서 남편의 실체를 알린 장면에서는 담담한 얼굴을 하고, 빈털털이가 된 이태오를 향해 분노를 표현할 때는 남편을 죽도록 미워하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지선우의 감정을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나타냈다. 이태오가 자살 소동을 벌였을 때 김희애의 얼굴은 유독 다채로웠다. 어떤 문장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남편에 대한 애증은 김희애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일각에서는 그 잘난 지선우가 계속 이태오에게 휘둘리기만 해 답답하다는 지적도 일었다. 하지만 이태오를 향한 지선우의 사랑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 아들이 엮인 부부, 가족 관계도 신경 써야 했으리라. 김희애는 일, 사랑, 가정 등 모든 면에서 책임감이 강한 지선우와 딱 맞는 배우였다. 얼굴에는 여유와 자신감이 넘쳤고, 힘든 상황에서도 사태를 해결하려 온몸을 불살랐다. 37년 동안 켜켜이 쌓은 연기, 삶의 세월의 흔적이 묻은 얼굴. 놓치고 싶지 않은 '특급 매력', 김희애의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