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칸국제영화제저 온라인으로 열린 2020년. 지나간 칸영화제의 추억들을 되짚어 보니 다양한 사연과 얼굴들 속에 소중하지 않은 해가 없다. 하지만 영화제 메인 포스터를 생각하면, 단연코 단 한 장의 사진이 떠오른다. 2년 전 칸을 찾았을 때, 뤼미에르 극장 외관을 장식한 아름다운 색의 향연과 연인의 키스에 압도당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올드 무비를 고르면서 “영화사는 장 뤽 고다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세르주 다네의찬사처럼 ‘네 멋대로 해라’(1960)로 현대영화의 시작을 알린 감독의 영화를 택한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코로나19 확진자 증가로 다시금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모처럼 활기를 찾아가던 극장가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너무나 아름다웠던 포스터, 그 속의 파란 하늘처럼 코로나19와 극장가에 청신호가 켜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55년 전 명작을 소개한다.
71회 칸 포스터는 장 뤽 고다르의 1965년작 ‘미치광이 피에로’의 한 장면이다. 2년 뒤 미국에서 제작된 ‘보니 앤 클라이드’의 원조 격이라 할 작품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사는 남녀의 위험한 도주 행각을 따라 남부 지중해 해안까지 이야기가 펼쳐진다.
고다르의 영화가 그렇듯 벽에 걸린 그림들과 그것을 그린 화가, 주인공들이 언급하는 영화감독이나 소설가 그리고 그들의 작품, 음악가와 읊조리는 노래,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사건과 관련 인물의 이름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겠다면 ‘미치광이 피에로’ 역시 그야말로 ‘지적 유희’를 만끽할 수 있다. 동시에 장 뽈 벨몽도가 연기하는 페르디낭 그리핀, 안나 카리나가 연기한 마리안 르누아르, 두 남녀의 자유를 향한 도피를 따라 장 뤽 고다르가 선사하는 영화 형식의 새로움과 선명한 색채의 대비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처음 볼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즐기고, 두 번째 볼 때는 정보들을 확인하고 보는 것도 ‘미치광이 피에로’를 관람하는 방법이다.
페르디낭은 부유한 이탈리아 여자와 사는 남자다. 한때 스페인어 교사였고 방송국에서 일하다 해고돼 실직자가 된 상태다. 영화는 페르디낭의 일기, 내레이션을 따라 흐른다. 그렇다고 딱딱 맞아떨어지는 스토리로 전개되는 건 아니다. 이야기는 고다르 감독의 의도에 따라 일부러 분절적이고, 영상 역시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며 점프컷을 쓰기도 하고 그림이나 만화, 잡지나 광고 장면이 끼어들기도 한다.
마치 독일의 극작가 베르돌트 브레히트가 지금 보는 것이 연극임을 관객이 잊지 않음으로써 극에 빠져들지 말고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갖기를 바랐던 것처럼, 브레히트의 ‘소격효과’ 또는 ‘소외효과’가 스크린 위에 구현된 느낌이다. 어떤 면에서 고다르 감독은 보다 적극적으로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영화임을 상기시킨다. “여러분 보셨죠, 이 여자는 농담밖에 모른다니까요”라고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는 페르디낭, 누구에게 말하는 거냐고 묻는 마리아에게 “관객에게”라고 답하는 식이다. 주인공의 카메라 응시는 수차례 반복된다.
처가의 파티에 참석한 페르디낭은 자본주의적 속물주의에 염증을 내고 아내의 얼굴에 케이크를 던지고 집으로 온다. 딸의 베이비시터로 일하고 있는 마리안을 집에 데려다주는데 시체가 한 구 놓여있고, 마리안을 찾아온 프랑크의 머리를 냅다 병으로 깨는 사건이 발생한다. 두 사람은 도주를 시작한다. 그런데 정말 들키지 않고 무사히 도망가려는 건지 의심스러울 만큼, 돈 없이 주유하며 말썽을 일으키는가 하면 차를 불태운 뒤 돈 가방이 들어있다고 말한다.
‘네 멋대로 해라’가 그러했듯 ‘미치광이 피에로’ 역시 완성된 시나리오 없이 고다르 감독이 정한 기본 상황에 배우들의 즉흥연기로 장면들이 촬영됐다. 주인공들은 영화의 형식 그대로, 즉흥적 캐릭터로 즉흥적 선택들을 이어간다. ‘네 멋대로 해라’의 후속작이자 완결판을 의도한 영화인데다 고다르 감독이 전작의 주연 장 뽈 벨모도의 스케줄을 5년 기다려 촬영한 보람 있게 즉흥성은 영화 전반에 생동감과 리듬을 부여한다.
즉흥성은 대사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만든다. 마리안이 페르디낭에게 5년 전 인연을 말하는데 두 주인공이 과거 연인이었음을 드러내는 것인지, 안나 카리나가 ‘네 멋대로 해라’ 오디션에서 떨어진 뒤 5년 만에 벨모도와 연기하게 된 것을 말하는 것인지, 혹은 그 둘 다인지 확정하기 어렵다.
‘미치광이 피에로’에서 페르디낭과의 사랑과 대립에서 팽팽한 힘의 균형을 보여주는 마리안 역할은 너무나 중요하다. 프랑소와 트뤼포, 클로드 샤브롤, 알랭 레네 등과 함께 누벨바그(1957년경 시작돼 1962년에 절정에 이른 프랑스의 영화의 새로운 물결. 주로 주제와 기술상의 혁신을 추구) 거장으로 불리는 고다르와 7편의 영화를 함께하며 ‘누벨바그의 여신’으로 불리는 안나 카리나. 고다르와 1961년 결혼해 4년 뒤 이혼했는데, 결혼 말기 찍은 영화다.
앞서 고다르의 ‘여자는 여자다’(1961)로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인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연기력을 인정받았고, ‘미치광이 피에로’는 다섯 번째 함께한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페르디낭은 책 읽기, 글쓰기, 철학적 사유에 빠져 있고 마리안은 이런 남자를 지루해하며 새로운 모험을 꿈꾸는데 고다르-카리나가 전한 부부생활 모습과 닮아 있어 웃음이 나기도 한다.
다시 스토리로 돌아와서, 프랑스 남부에 정착한 페르디낭과 마리안은 돈을 벌기 위해 또 무료함을 떨치기 위해 길거리 연극을 한다. 페르디낭이 미국 군인, 마리안이 베트남 소녀로 분해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고다르 감독은 예술과 철학에 대한 사유뿐 아니라 정치에 대한 견해를 직설적으로 드러내곤 하는데 그와 맥락을 같이하는 장면이다.
영화 형식과 색채의 새로움을 추구한 고다르 영화에서 회화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영화 초반부터 페르디낭은 엘리 포르의 예술사 평론 ‘벨라스케스’를 욕조에서도 읽는다, 어린 딸에게도 읽어 준다. 벨라스케스는 영화의 제목처럼 피에로(광대)를 많이 그렸다. 마리안의 집에는 르누아르, 피카소, 모딜리아니, 리히텐슈타인의 그림들이 걸려 있다. 페르디낭은 영화 내내 만화책 한 권(‘레빠땅, 게으른자의 춤’. ‘장 뤽 고다르의 영화세계’ 중 신광순 교수 부분 참조)을 들고 다닌다, 혼자 보기도 마리안과 함께 읽기도 한다. 1965년의 영화라는 게 놀라울 만큼 감각적 몽타주 속에 시대와 주제의식을 표상하는 이미지들이 유영한다.
도주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 좁힐 수 없는 서로의 다름에도 마리안과 페르디낭은 지중해가 보이는 남부에서 사랑에도 성공할 수 있을까. 장 뤽 고다르의 영화들은 흔히 비극으로 끝나지만, 감독은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헌 집을 헐고 새집을 짓듯, 기존 영화 문법을 파괴하고 새로움을 추구해 온 고다르는 2014년 자비에 돌란이 25세의 나이에 ‘마미’로 심사위원상을 받을 때, ‘언어와의 작별’로 공동 수상했는데 84세였고 3D영화였다. 다채로운 실험을 계속하고 있지만, 그가 우리에게 묻고 스스로 탐구하는 것은 어쩌면 하나다, 영화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