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챔피언 극복 위해 성장성 큰 시스템반도체 육성 필요성 대두
반도체 생태계 구축으로 전반적인 체질 개선 통한 산업 경쟁력 향상도
K-메모리로 불릴 정도로 메모리반도체에서 위력을 떨치고 있는 국내 반도체 산업은 비메모리(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는 경쟁력이 미미해 반쪽짜리 챔피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메모리의 반쪽짜리로 완전체를 위해서는 결국 시스템반도체를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는 이유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4월 오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1위를 목표로 총 133조원을 투자하는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한 것은 메모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러한 국내 시스템반도체의 현실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특히 4차산업 혁명 시대에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5세대이동통신(5G)·자율주행 등 신기술의 등장으로 무궁무진한 시스템반도체의 성장 잠재력은 이러한 필요성을 더하고 있다.
이와함께 반도체 칩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경쟁력을 끌어 올리는 등 생태계 구축을 통한 전반적인 산업 체질 강화도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 경기 민감한 메모리 편중 타개 필요...잠재력 큰 시스템반도체
메모리(Memory) 반도체가 ‘기억’이라는 의미에 맞게 데이터를 저장하는 반도체라면 시스템(System)반도체는 계산이나 처리 등 연산·제어를 담당하는 반도체다. D램과 낸드는 전자에, 중앙처리장치(CPU)와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은 후자에 속한다.
국내 반도체 산업은 기억 분야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은 것과 달리 연산·제어 분야에서는 아직 경쟁력이 미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례로 삼성전자는 최근 성과를 내고 있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시장에서 2위로 올라섰지만 1위와 격차가 크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시장 추정 점유율은 17.4%로 TSMC(53.9%)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전 세계 D램의 40% 이상, 낸드플래시의 3분의 1을 차지하며 양대 메모리 시장서 모두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압도적인 위용과는 확연히 온도차가 있다.
지나치게 높은 메모리 의존도에 낮은 비메모리 비중으로 인한 불균형은 때로는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초호황을 보였던 2017년과 2018년에는 삼성전자가 전체 반도체 시장 1위를 차지했지만 메모리 가격이 하락했던 지난해에는 1위 자리를 인텔에 내줬다.
경기 변동이 심한 메모리반도체 비중이 절대적인 반도체 사업 구조로 경기가 좋을때는 실적이 고공행진을 하지만 악화되면 급락이 나타나기도 한다. 반면 시스템반도체는 종류도 많고 용도도 다양해 경기 민감성이 메모리에 비해서는 덜하다.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감안해야 하는 상황이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에 따르면 지난 2018년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반도체의 비중은 35%, 시스템반도체 비중은 65%를 차지했다. 메모리업황이 좋지 않았던 지난해에는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8%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결국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은 전체의 30% 시장에서만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나머지 70%에 대한 경쟁력을 높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특히 AI와 IoT 등 신기술의 성장은 시스템 반도체 비중이 더욱 커질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점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교수)은 “메모리반도체 생산설비를 시스템반도체에서 활용할 수 있는 등 메모리 경쟁력은 비메모리 경쟁력 향상에도 분명 도움이 되는 일”이라며 “AI·IoT·자율주행 등에 맞춤형으로 고부가가치화가 가능한 제품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면 빠르게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日 수출규제 계기 부상한 소·부·장 자립화 속도 내야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육성도 K-반도체 입지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과제다. 일본의 핵심 소재 수출 규제를 계기로 정부가 소·부·장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7월 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종을 한국 수출시 일반포괄허가 대상에서 개별허가 대상으로 변경하면서 규제를 강화했다.
이후 1년여가 지났고 당초 우려했던 것 만큼의 큰 타격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핵심 소재 산업의 자립과 독립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계기가 됐다.
또 고순도 불화수소의 경우, 정부와 업계가 신속한 대응으로 국산화에 속도를 내는 등 일본산 소재의 높은 의존도를 줄이는데도 일정 부분 성과가 있었다.
반도체 초미세공정에 사용되는 극자외선(EUV·Extreme Ultra Violet)용 포토레지스트와 같이 아직 국산화 시기를 언급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지만 일단 소재 자립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고해졌고 잠재력도 확인된 만큼 성과를 지속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소재뿐만 아니라 부품과 장비 분야에서도 높은 해외 의존도는 여전한 숙제이긴 하다.
과거보다 나아지긴했지만 다이오드와 트랜지스터 등 전자부품의 해외 의존도는 여전히 높고 국내 장비업체는 글로벌 시장에서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수준과 규모는 아니다.
글로벌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는 ASML(네덜란드)·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미국)·램리서치(미국)·도쿄일렉트론(TEL·일본) 등 이른바 빅 4가 엎치락 뒤치락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업체들은 톱 5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개선해 나가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내년에 첫 삽을 뜨는 경기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대표적인 사례로 총 122원이 투입돼 50개 이상 반도체 장비·소재·부품 업체가 입주하는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된다.
업계에서는 일본 수출 규제와 같은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수입선을 다변화하면서 소·부·장 국산화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밖에 없지만 방향성을 갖고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의 국내 기술력로는 뚜렷한 한계를 보이는 품목들도 있고 기술 수준이 언제까지 향상될 수 있을지 알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반도체 생태계 강화를 위해서는 칩 뿐만 아니라 소·부·장의 경쟁력을 높여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