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수사 기능 폐지 우려에도…민주당, 국정원법 개정안 단독 처리
국민의힘 강력한 문제 제기도 무위…與 의원들 단독 표결로 통과해
같은 날 50여개 법안 법사위서 단독 통과…일상 된 민주당 강행처리
공수처법도 같은 수순 우려…합법 투쟁 방법 없는 野, 여론전에 총력
174석을 거머쥔 더불어민주당의 법안 단독 처리가 이제는 일상화된 모양새다. 민주당이 30일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전하는 내용의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을 야당과의 합의 없이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단독 처리하면서, 국정원 창설 이래 60년 간 주된 기능이었던 간첩수사 기능의 폐지가 현실로 다가오게 됐다. 정국 현안 중 하나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도 같은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날 오후에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 회의서 '제1야당' 국민의힘 의원들은 현재 국정원이 가지고 있는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가는 국정원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경찰의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해진다는 점을 짚으며 개정안의 통과를 강도 높게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더해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약화로 인해 향후 대북 첩보 수집 및 간첩 활동에 대한 수사가 무력화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 점도 당이 집중적으로 제기한 반대 요소였다.
국민의힘 정보위 간사인 하태경 의원은 이날 취재진과 만나 "경찰에서도 대공수사권의 이전과 관련한 개편의 논의가 진행중인 상황이라 수사권이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이사할 집도 없는데 이사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유하며 "국내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경찰이 대공수사권까지 거머쥐는 건 5공시대 치안본부로의 회귀를 뜻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보위원인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 또한 "세간에는 국정원의 국내보안정보 수집을 제외하고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이관하는 정도로만 알려졌는데, 실상은 훨씬 더 심각하다. 우리 안보가 현저하게 훼손될 위험이 있고, 정치인과 경제인 등에 대한 사찰 가능성 우려도 커지는 것"이라며 "국정원의 존립 목적인 국가안보 기능을 약화시키면서까지 미완성의 법을 고집하는 이유가 북한을 이롭게 하고 나아가 문재인 정권의 장기집권을 돕기 위한 것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재앙이 아닐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정보위원들은 단독으로 법안 처리에 나섰다. 민주당 소속 정보위원들의 찬성표만으로도 처리가 가능한 상황에 국민의힘 정보위원들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회의장을 빠져나갔고, 민주당은 지난 24일 소위에서의 단독 의결 이후 6일 만에 상임위 전체회의에서까지 개정안을 같은 방식으로 의결했다.
민주당은 다음 날인 내달 1일 경찰 내에 대공수사권을 이전할 국가수사본부를 신설하는 내용의 경찰청법도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의결을 시도할 방침이다. 국민의힘 행안위원들의 강력한 반발 속에 이 역시 민주당 단독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문제는 야당의 문제제기를 무시하고 민주당 단독으로 쟁점 법안 처리를 강행하는 사례가 21대 국회 들어 지나치게 잦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보위와 같은날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서는 민주당 소속 윤호중 법사위원장의 단독 개의에 반발해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이 불참한 상황에서 50여개의 법안이 민주당 단독으로 통과되기도 했다.
이 같은 민주당의 행보를 볼 때 국정원·경찰청법 개정안에 이어 핵심 쟁점 현안으로 등장할 공수처법 개정안도 민주당의 단독 처리로 결론지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공수처법 개정안은 초대 공수처장 임명 과정에서 현행 공수처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시키고 여당 단독으로 공수처장을 임명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민주당은 내달 4일 법사위 법안소위를 개최해 공수처법 개정안을 처리한 뒤 12월 내 열릴 본회의서 단독으로 통과시킨다는 복안이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생과 미래를 위한 예산 심의와 법안처리를 이제 매듭지어야겠다. 공수처법과 함께 국정원법, 경찰청법 등 권력 기관 개혁 법안들이 잇달아 처리되리라 기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법안에서 여야의 입장차가 확연히 갈리는 만큼, 정국의 심각한 경색이 예고되는 상황이지만 민주당은 이에 아랑곳 않고 강행을 이어나간다는 입장이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취재진과 만나 "임시국회가 없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는 분위기"라며 "특히 공수처법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국민의힘으로서는 민주당의 이러한 독단적 행보를 견제할 합법적 투쟁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연일 민주당을 향해 강도 높은 비판의 목소리를 내며 여론전으로 난관을 돌파한다는 전략이지만, 보다 실질적이고 즉각적인 견제 방법이 부재한 현실에 자조 섞인 목소리도 제기된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일각으로부터 당 지도부를 향한 투쟁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전해지기도 하지만, 민주당이 야당과 대화와 타협의 의지가 없는데 다른 어떤 방법으로 싸울 수 있겠는가. 억울한 측면이 있다"며 "과거처럼 삭발·단식·몸싸움을 하지 않을 거라면 그저 여론전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국민의힘은 '국회 보이콧' 등의 강수를 통해 국민에 실상을 알리고 민주당의 강행 행보를 저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전날 의원총회를 소집하고 "물러남 없는 행동으로 막아 내야 할 한 주가 다가온 것 같다"며 "대한민국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 법안들의 통과를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지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따라서 신중하고 정제되면서도 호소력을 담보할 선명한 메시지를 국민에 전달하는 과정이 절실하다는 평가다. 21대 국회 들어서 '극단적 투쟁'을 지양하고 합법적인 투쟁을 강조해왔음에도 전국민적 호응을 얻는 데는 실패한 과정을 돌아보고, 근본적으로 변화할 필요성이 많다는 지적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모든 것은 여론의 방향성이다. 민주당의 행보에 국민이 반감을 느껴 지지층의 이탈이 선명해진다면, 민주당으로서도 지금의 기조를 이어가기엔 상당한 부담감이 따를 것"이라며 "무조건적인 비판의 목소리로 국민의 피로감을 가중시키기 보다는 국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합리적이고 세련된 언어를 통한 투쟁을 담보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