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스스로를 죽여 인을 이루다…다른 이를 살리다
잊혀 진 대선 경쟁자들도 살려주고 있다
미래의 경쟁자도 띄워주고 있다
죽었던 패까지 살려줬다
요즘 문재인 대통령의 표정이 많이 어둡다. ‘앙다문 꼰대’의 얼굴 표정이 됐다. 보통 사람들은 모든 일을 망치기만 하는 부족한 능력과 굽힐 줄 모르는 고집에도 뜻대로 되는 일이 없어서 그럴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난 생각이 조금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仁)’을 이루기 위해 온힘을 다하는 것이다. 온갖 비판, 곧 닥칠 수모, 역사의 비판을 감수하면서 말이다.
처음에는 이상했다. 손만 대면 마이너스고 하는 것 마다 망가진다. 정말 대단한 능력이다. 그런데 더 대단한 것은 인지능력과 공감능력이다. 공수처법을 통과시키며 ‘야당이 더 원하고 여당이 꺼려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정도면 선계(仙界)의 분이거나 치명적인 병증이다. 그러나 이제 좀 알 것 같다. 그 깊고 높은 뜻을. 스스로를 죽여 인을 이루는 것이다. 인(仁)을 이루는 구체적인 방법은 다른 이를 살리는 것이다.
그는 故 노무현 대통령의 명예를 찾아줬다. 자신이 정권을 잡아 모시던 분의 명예를 높여준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실정으로 노 전 대통령의 정책을 재평가하게 해줬다. 노 전 대통령이 얼마나 외롭고 어려운 결단을 통해 국가에 기여했는지를 알려줬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일 갈등을 유도하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 파기를 시도해 노 전 대통령의 ‘한·미 FTA’ 체결과 ‘국군 이라크 파병’의 의미를 되살려 줬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자들로부터 버림을 받아 지지도가 5%대까지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망치는 일은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지지층의 요구를 100% 구현해 스스로 한줌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됐다. 결과는 비슷하겠지만 길이 완전히 다르다. 한쪽을 나라를 위해 자제했고 한쪽은 지지층을 위해 나라를 희생시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명예도 회복시켜줬다. 탄핵 당해 권좌에서 끌려 내려오고 감옥 독방에 갇혀 있는 박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을 위해 스스로 온갖 자충수를 두고 있다. 드디어 ‘그래도 박근혜가 나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박 대통령에게 미안하다’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성공이다.
실지로 코로나19를 정치적으로만 활용하다가 실기해, 확진자 확산을 막지 못하고 게임체인저인 백신도 확보하지 못했다. 이를 통해 박근혜 정부의 메르스 대책이 얼마나 합리적이었는지 알 수 있게 해 줬다. 다시 야당이었던 문재인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의 메르스 대책에 신랄하게 공격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치·통일·외교·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했던 발언에 의하면, 2015년 메르스사태때 민주당은 △(확진자 18명) 정부, 초기 대응 실패했다 △(확진자 25명) 보건복지부장관 사퇴하라 △(확진자 87명) 국가비상사태 선포하라 △(확진자 175명) 정부가 메르스 슈퍼전파자다. 대통령이 사과하라 등의 발언을 했다. 그리고 “발언한 분이 누구인지 아느냐”라고 물었다. 지금은 컨트롤타워 문재인 대통령이 말할 때마다 겁이 난다 희망적인 메시지가 나올 때마다 상황을 더욱 악화됐다. 최근에도 ‘터널 끝이 보인다’고 했는데, 곧 ‘터널의 시작이었음’이 밝혀졌다.
이밖에도 사례는 많다. 거듭된 부동산정책 실패는 이명박 정부의 ‘뉴타운’과 박근혜 정부의 ‘뉴스테이’가 재평가되도록 도왔다. ‘윤석열 찍어내기’를 벌이며 혼외자 스캔들로 인심을 잃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교체가 정당했음을 보여줬다. 조국을 아껴 ‘최순실 국정농단’에 면죄부를 주었고, 자신이 공천한 지자체장의 성추행을 가볍게 여기고 ‘공천 안하겠다’는 당헌을 스스로 바꿔 박근혜 정부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확인시켜줬다. 옵티머스, 라임사태 수사를 막아, 미르, K스포츠가 구멍가게 횡령이었음을 알려줬다. 윤미향을 공천해 박근혜 정부의 한일관계 회복노력이 값진 것이었음을 확인시켜줬다. 일일이 거론하려면 지면이 부족할 것 같아 다음으로 넘어가자.
전직 대통령만이 아니다. 잊혀 진 대선 경쟁자들도 살려주고 있다. 문 대통령이 13평 임대주택에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한 말이 논란이 됐다. 대통령의 말이었는지 질문이었는지가 논란이 됐는데, 일반국민들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화살을 언론과 야당인사들에게 돌렸다. 유승민 전 의원의 “니가 가라 공공임대”와 안철수 대표의 “795평 사저를 준비하시는 상황에서 할 말은 아니다”라는 발언에 대한 비판이었다. 대응하지 않는 것이 정답이었는데, 굳이 조목조목 비판하며 유승민과 안철수의 말이 주목받게 했다. 둘 다 문 대통령과 지난 대선에서 경쟁해 패했던 상대다. 아직 대선 패배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는데 문 대통령이 동지애를 발휘한 것이다. 청와대가 일일이 거론하며 존재감을 띄워줬다. 모든 게임이 그렇듯 정치에서도 체급이 중요하다. 체급이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과 싸우면 무조건 유리하다. 저도 진 것이 아니고 이기면 대박이다. 그래서 끝없이 도발한다. 그래서 높은 사람은 애써 싸움을 회피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를 기준으로 볼 때 청와대의 대응은 경쟁자들을 띄워주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과거의 경쟁자들 뿐 아니다. 미래의 경쟁자도 띄워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다음에 정권교체가 있으면, 과거 정권이 당했던 것과 격이 되는 재앙을 맞을 것 같다. 국정과 권력실세에 불법이 너무 많아 검찰은 야근을 밥 먹듯 해야 할 것이다. 현 여권이 공수처에 목을 매는 이유다. 그런데 스스로 야권의 차기 주자를 육성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현재 대통령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징계위가 정직 2개월 결론을 내렸다. 수위조절이 예술이다. 왜 ‘2개월’일까? 공수처를 출범시키기 충분한 시간이다. 공수처만 설립되면 구차한 수사지휘권 논란 없이 사건마다 검찰수사를 지휘하고 뺏어 올 수 있다. 해임을 안 한 이유는 내년 4월 보궐선거를 앞둔 시점에 검찰총장 인사청문회를 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재로 징계수위를 두고 ‘해임’과 ‘면직’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상황에서 여당 중진이 공개적으로 ‘정직’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하지만 윤 총장은 소송을 통해 유명세를 유지할 것이고 그 때마다 지지도를 보강할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뻔 한데 이를 방치한다는 것은 문 대통령의 심모원려(深謀遠慮) 이외에는 해석할 방법이 없다. 야권에 대선주자가 없으니 국민의 다양한 선택지를 위해 스스로 야권 대선주자를 만들어 준 것이리라.
거기다가 죽었던 패까지 살려줬다. 황교안 전 대표다. 그가 공개적인 행보를 못하자 불쌍했던지 명분을 주었다. 공수처법을 억지로 통과시켰다. 황 전 대표는 공수처를 막기 위해 풍찬노숙 단식을 했던 인물이다. 패스트트랙 재판도 받고 있다. 자숙하고 있던 황 전 대표는 법정에 출두할 수밖에 없었고 언론에 메시지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저는 죄인입니다’로 시작하는 메시지가 나왔다. 그리고 공수처법이 통과된 날 8개월여 만에 SNS에 글을 올렸다. “참고 참았다.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는 심정으로 버텼다”로 시작했다. 반응은 그리 박하지 않았다. 본격적인 정계복귀는 아니지만 발은 하나 걸쳐놓은 격이다. 모두 문재인 대통령 덕분이다.
이렇듯 여야를 넘어 문재인 대통령의 활약은 대단하다. 앞으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명예를 회복해 주고 재기를 도울 지 기대가 된다. 이런 기대를 가지며 그나마 국민이 최소한의 위안을 받기 바랄 뿐이다.
글/김우석 정치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