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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럼②] 과정은 조국처럼


입력 2020.12.24 07:00 수정 2020.12.24 05:19        이유림 기자 (lovesome@dailian.co.kr)

정경심 실형 선고한 재판부, 조국 공모관계도 인정

상류층의 삶 자녀에게 대물림 위해 편법·탈법·불법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에게 허탈감과 실망 야기"

공정에 대한 신뢰 무너져…10명 중 1명만 "공정사회"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를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지난 8월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조적조'(조국의 적은 조국), '조로남불'(조국과 내로남불의 합성어), '조만대장경'(조국과 팔만대장경의 합성어), '조스트라다무스'(조국과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의 합성어)…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관련된 신조어들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앞에서는 정의와 공정을 외쳤지만 뒤로는 온갖 특권과 반칙을 일삼고, 남을 비판할 때와 자신을 방어할 때 전혀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위선적인 삶이다.


입시비리 등으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에 대해 1심 재판부가 징역 4년 및 벌금 5억원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재판부는 정 교수 딸 조민씨가 2013년 서울대 의학전문대학원 1차 서류전형 합격과정과 2014년 부산대 의전원 최종 합격 과정에서 제출한 인턴 확인서 등이 모두 '허위'라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는 △단국대 논문제2저자 등재 △공주대 생명공학연구소 인턴확인서 △서울대 인권센터 인턴확인서 △아쿠아팰리스 호텔 실습 인턴확인서 △KIST 인턴확인서 △동양대 영어영재협력사업 보조연구원 확인서 △동양대 표창장 위조 혐의 등 모든 확인서를 허위로 봤다.


검찰이 당초 '7대 허위스펙'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강조한 입시비리 혐의가 전부 인정된 셈이다. 특히 재판부는 서울대 인권센터 인턴확인서 허위 발급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공모'했다고 판단했다.


영화 기생충에서 주인공이 명문대 총장 직인 파일을 합성해 재직증명서를 위조하고 있다. ⓒ영화 기생충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주인공은 명문대 총장 직인 파일을 합성해 재직증명서를 위조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는 상류층에 기생해 살아가는 주인공 가족의 모습을 통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풍자했다. 그러나 현실판 기생충은 영화보다 더하다는 말이 나온다. 조국 전 장관 부부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상류층의 삶을 자녀들에게 대물림하기 위해 편법과 탈법, 불법을 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조국 전 장관이 교수 시절 내뱉은 날카로운 비판과 통렬한 일침들은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그는 2012년 자신의 트위터에서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10대90 사회가 되면서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확률은 극히 줄었다"며 "모두가 용(龍)이 되려 하지 말고 가재·붕어·개구리로 살아도 행복한 개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2014년 저서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에서는 "스펙을 쌓을 능력과 환경 덕분에 경쟁에서 승자가 된 소수는 승리의 기쁨을 누리겠지만, 그렇지 못한 다수는 큰 상처만 입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누구보다 법 수호에 앞장서야 했을 조국 전 장관의 딸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가짜 스펙'을 활용하기에 이르렀고, 이들 일가의 위선에 대다수 국민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재판부는 "정경심 교수의 입시비리 범행으로 딸 조씨가 서울대 의전원 1차에 합격하고, 부산대 의전원에 최종합격하는 실제 이익을 얻었다"며 "오랜 시간 성실히 준비한 다른 응시자가 불합격하는 불공정한 결과가 발생했다"고 이례적으로 일침을 가했다.


나아가 "공정한 경쟁을 위해 성실히 노력하는 많은 사람에게 허탈감과 실망을 야기했다"며 "우리 사회가 입시 시스템에 대해 가진 믿음을 저버리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다"고 강하게 꾸짖었다.


심지어 "정 교수는 조 전 장관에 대한 청문회 시작 무렵부터 변론 종결까지 단 한번도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지 않았다"며 "입시비리를 진술한 사람들의 법정 진술을 비난해 정신적 고통을 가했다"고 지적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조국 일가가 정치적으로 희생됐다던 여권 인사들은 그들의 비리가 드러나고 있음에도 반성 대신 적반하장 태도를 보여, 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은 지난 4월 술자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허위) 표창장은 강남에서 돈 몇십만 원 주고 다들 사는 건데 그걸 왜 수사했느냐"며 조국 일가 수사를 강하게 비난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은 1심 판결 직후 "재판부 판결이 너무 가혹하다"고 논평했고, 친조국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가슴이 턱턱 막히고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래도 단단하게 가시밭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사법부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친조국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법원이 위법 수사와 기소를 통제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포기한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국 전 장관은 "너무도 큰 충격"이라며 "제가 법무부 장관에 지명되면서 이런 시련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나 보다. 즉각 항소해서 다투겠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한국 사회에서 '공정'에 대한 믿음은 크게 무너져갔다.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청렴연수원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9월 2일부터 2주간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 사회가 공정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9.5%에 그쳤다. 반면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54.0%나 됐다.


또 자수성가를 뜻하는 이른바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이 가능한 사회인지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56.6%가 '아니다'라고 했고, 10명 중 1명꼴인 11.7%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조국 전 장관이 자신의 트위터에 언급했던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도 계층 사다리가 무너진 현실을 보여주는 역설적 표현으로 쓰이고 있다.

이유림 기자 (lovesom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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