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호 출범 앞두고 EU·中 투자협정 체결
7년 공전하던 협상…美中경쟁 여파로 타결
바이든 '동맹연합' 대중압박 구상 차질 빚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동맹 및 파트너와 함께 대중 압박전선을 꾸리겠다고 강조해온 가운데 미국 최대 우방으로 꼽히는 유럽연합(EU)이 지난 연말 중국과 투자협정을 맺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압박 구상이 본격화되기 전, 중국이 EU에 경제적 유인책을 제공하며 '숨통'을 틔운 모양새다.
지난 2014년 이후 7년간 공전을 거듭해온 EU와 중국의 투자협정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급물살을 탔다. 유럽이 줄곧 요구해온 국제노동기구(ILO)의 '강제노동 금지' 협약과 관련해 중국이 '유연성'을 발휘한 게 결정적이었다. 중국은 그간 소수민족에 대한 인권 탄압 및 노동력 착취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지만, 이번 합의 도출을 위해 인권 문제를 일부 시인했다는 평가다.
해당 협정이 최종 발효될 경우 유럽 기업들은 △전기 자동차 △부동산 △통신 클라우드 서비스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중국 기업과의 합작 없이 독립 법인을 통해 중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기술 강제 이전 의무 및 기술 유출 우려에서 상당 부분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국이 인권 문제에서 한발 물러서며 협약 체결에 적극성을 띤 건 향후 미중경쟁에 대비하기 위한 포석으로 읽힌다. 바이든 당선인이 최대 우방으로 꼽히는 EU와 함께 중국을 압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중국이 서둘러 EU를 끌어안아 압박 동력을 떨어뜨리려 했다는 평가다.
실제로 중국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외교적 고립'을 막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앞서 중국은 지난해 11월 한국, 일본, 동남아 국가들과 함께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인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에 서명한 바 있다.
중국 외교를 총괄하는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 연말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을 잇따라 방문하기도 했다. 왕이 국무위원 순방 이후 중국 외교부는 '핵심 성과'로 코로나19 공동 대응 협력을 거론했다. 미국 개입 없이 중국이 한일과 협력할 공간을 만들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외신과 해외 전문가들은 EU와 중국의 투자협정 체결이 향후 미중경쟁 구도 속에서 중국의 '안전판'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하이 푸단대 미국연구센터 우신보 소장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투자협정이 "세계 시장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노력을 저지시키고 중국에 확고한 지위를 부여했다"고 말했다.
조지 매그너스 영국 옥스퍼드대 중국센터 연구원은 EU가 이번 협정에서 '실질적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중국은 큰 양보 없이 노동 윤리를 강조하는 EU와 협정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중국은 유럽이 요구해온 '강제노동 금지'와 관련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을 뿐이다. 사실상 중국의 '판정승'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중국이 자국 시장을 일부 개방하며 인권 문제에서 외교적 고립을 피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다만 협정 발효를 위해선 EU 모든 회원국으로부터 동의를 얻어야 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SCMP는 협정 발효까지 최소 1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독일 녹색당 소속의 라인하르트 뷔티코퍼 유럽의회 대중국 관계위원회 의장은 이번 협정을 '전략적 실수'로 규정하며 "EU가 중국의 노동권 관련 약속을 '성공'으로 포장하려 하는 건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