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급들 단일화 각축전에 여론·정치권 관심 쏠리는 상황
"국민 앞에 모두 모여 참신함 겨루자" '미스트롯' 취지는 무색
"실력 있는 신인 등장 가로막고 기성정치인 경쟁으로 왜곡"
단일화 조기 타협 급선무…이후 경선 통해 취지 살릴 수 있어
야권의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국면이 국민의힘 소속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나경원 전 의원을 비롯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 거물급 인사들의 각축전 양상으로 흘러가며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불과 지난해 말까지 제기된 '인물난'에 대한 우려는 쏙 들어간 모습이지만, 참신하고 실력있는 새 얼굴을 뽑자는 의도로 준비했던 '미스트롯' 방식의 후보 선출 포맷의 의이가 다소 유명무실해지는 데 따른 자성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현재 야권은 중량감 있는 후보들의 단일화 문제를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안철수 대표가 출마를 선언한 상황에서 국민의힘 후보군과의 '야권 단일 후보 선출' 없이는 유리한 선거 국면을 스스로 망치는 결과가 될 수 있는 탓이다. 언론과 정치권의 주된 관심 모두 이들의 눈치 싸움에 매몰되는 모양새다.
이 같은 모습인 "인물이 없어 걱정이다"는 각계각층의 평가를 자아냈던 지난해만 해도 쉽사리 예측할 수 없었던 장면이다. '미스트롯' 방식의 후보 선출은 당시 인물난 우려를 받던 국민의힘이 이를 돌파하기 위해 고안한 후보 선출 포맷이다.
인지도가 부족하지만 능력을 갖춘 후보군을 대거 무대에 올려 국민 앞에 직접 검증받게 하고, 참신한 얼굴이 국민에 실력으로 어필해 선거 바람을 형성하겠다는 취지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단 거물급 인사들이 대거 출마 의사를 밝힌 이후 이들의 단일화 방식을 둘러싼 첨예한 눈치싸움이 주된 테마로 자리잡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선 이 같은 취지가 시작부터 유명무실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지도부와 안철수 대표 측이 단일화 방안을 조기에 타협하지 못하고 시간을 질질 끌며 대립각을 지속적으로 세울 경우 국민의 피로감만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시장에 도전하고 있는 국민의힘 소속 후보군들도 이 같은 점을 일제히 지적하고 나섰다. 위와 같은 문제를 신속히 매듭 짓고 각 후보군의 장점과 서울시에 대한 각자의 비전 등을 국민에 어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달라는 입장이다.
일찌감치 출사표를 던졌던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국민의힘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는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이기려면, 야권의 뉴페이스가 시민의 관심 속에 흥행과 감동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며 "2002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뉴페이스 노무현이 기성 선두주자인 이인제, 한화갑을 이기는 감동의 역전드라마가 펼쳐짐으로써 극적인 본선승리가 가능했다"고 돌아봤다.
김 교수는 "기성 정치인들의 뻔한 결과로는 편하게 질 수밖에 없다. '인지도'만의 기성 정치인으로는 과거회귀, 구태의연, 확장성 부재, 그나물에 그밥이라는 한계에 갇혀서 민주당의 조직력과 대깨문의 대결집을 이겨내기 힘들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야당의 후보 선출은 서바이벌 탈락과 뉴페이스 등장이 가능한 '미스트롯' 방식이어야 한다고 애초부터 의견을 모았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런데 안철수 대표의 출마선언 이후 야권의 후보선출이 갑자기 인지도 높은 기성 정치인의 단일화 샅바싸움으로 변질되고 결국은 실력 있는 신인 등장을 가로막고 구태의연한 기성정치인 경쟁으로만 왜곡되고 있다"며 "미스트롯의 감동이 원천봉쇄되고 왕중왕전의 기싸움으로만 바뀌고 있다. 야권의 후보 선출이 스타들만의 '명랑운동회'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김선동 전 국민의힘 사무총장 또한 "서울시장 선거판이 1등만 기억하는 잘못된 판으로 흐르고 있다"며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또다시 돌리려 하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에 서울의 새바람, 새로운 인물을 바라는 서울시민의 바람은 뒷전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날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거물급 주자들의 등장과 야권 단일화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선한 변화의 바람이 불 뻔 했던 가능성이 퇴색될 수 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며 "말로는 모두 혁신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선거공학적인 측면에서 지지율을 고려해 '이길 수 있는 후보'의 등에 손 쉽게 업혀 가려는 모습으로 비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단, 당 안팎에선 단일화와 관련한 교통정리만 잘 이뤄질 경우 당초 취지가 무색하지 않게끔 경선 과정을 통해 참신한 인물, 기존 인물의 새로운 면모 발굴로 국민에 다가가는 효과를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는 긍정론도 존재한다.
한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 핵심관계자는 통화에서 "막상 판이 깔리고 무대가 시작되면 그간의 우려가 불식될 수 있도록 많은 아이디어를 놓고 검토 중이다. 예고했던 대로 그간 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경선 방식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방식으로는 인지도가 높은 전문가 패널들을 선정해 국민의 관심을 제고하고, 서울시민들로 구성된 평가단이 참여하는 서바이벌식 합동토론회 등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력 주자들의 단일화 조율도 속도를 내고 있다. 논의의 핵심인 오세훈 전 시장과 안철수 대표가 내주 비공개회동을 하기로 합의하고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오 전 시장이 오는 17일까지 안 대표의 입당 혹은 당대당 통합을 요구하며 조건부 출마 선언까지 내건 만큼, 이들의 회동을 통해 단일화 여부에 대한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