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량 늘었지만, 경쟁 심화에 평균 단가는 수년째 감소세
근로자 노동 강도 낮추고 일정 수입 보장 위해선 단가 인상 불가피
정치권 주도로 이뤄진 합의가 사태 키웠단 지적도
택배노조가 총파업을 철회하면서 설을 앞두고 우려가 높았던 택배 대란을 피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앞으로 택배 분류인력 운용과 비용 문제 등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가 계속돼야 한다는 점에서 갈등의 씨앗이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택배비용 현실화가 가장 근본적인 대안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현재 마련된 대책으로는 택배사와 근로자, 대리점 등 택배산업 구성원 간 근본적인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택배 노동자들의 근무 강도를 낮추면서 일정 수입을 보장하고, 또 사업 효율성도 높이기 위해서는 택배비 인상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은 29일 오전 전체 조합원 총회를 열고 노조와 택배사, 국토부, 국회 등이 전날 도출한 잠정합의안에 대해 투표한 결과, 찬성률 86%로 합의안 추인이 가결됐다고 밝혔다.
잠정합의안에는 분류작업 인력 투입 완료 시기를 내달 1일로 확정하고 이를 국토부가 현장 조사단을 구성해 확인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아울러 합의안에 각 택배사가 직접 서명한 점도 달라진 점이다. 앞서 1차 합의문 당시에는 택배사를 대표해 한국통합물류협회가 참여했다.
앞서 택배 노사는 지난 21일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택배기사의 주 최대 작업 시간은 60시간, 일 최대 작업 시간은 12시간을 넘지 않도록 하고, 특별히 불가피한 사유를 제외하고는 오후 9시 이후 배송을 제한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1차 합의문'에 서명한 바 있다.
노조의 파업 철회로 설을 앞두고 택배 지연 사태는 피할 수 있게 됐지만 업계에서는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반응이다. 그간 노사 간 쟁점이었던 분류전담 인력에 대한 책임소재는 가렸지만 이를 뒷받침할 택배비 인상에 대한 논의는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택배비 인상이라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빠져 있어 택배사, 노조, 대리점 등 택배산업 구성원 중 누구든 불만을 제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CJ대한통운의 경우 현재 3000여명의 분류전담 인력을 운용하고 있으며 오는 3월 말까지 이를 4000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여기에만 매년 500억원 정도가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본사와 대리점이 부담한다.
이와 별도로 자동분류설비인 휠소터 구축에 1400억원을 투자했으며, 1600억원을 들여 소형상품 자동분류기인 ‘MP(Multi Point)’를 추가로 도입하고 있다.
단순히 추가적으로 드는 인건비(500억원)와 자동화설비 투자액(3000억원)만 놓고 보면 작년 CJ대한통운의 연간 영업이익 예상치인 3400억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작년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온라인 쇼핑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택배 물량도 덩달아 급증하고 있지만 경쟁이 심화되면서 택배비는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택배비 평균 단가는 2012년 2506원에서 2019년 2269원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업계 1위인 CJ대한통운의 경우 연간 영업이익률 2018년 2.6%, 2019년 2.9% 정도로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단순히 택배회사에만 책임을 물어서는 택배 노동자들의 근무 강도를 낮추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택배기사들 대부분 건당 수수료를 받는 구조여서 근로시간을 제한할 경우 수입이 적어져 불만이 높아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또 단순히 택배기사 숫자를 늘리거나 개별 기사가 맡은 구역을 분할하는 등의 방법으로 근무강도를 낮추기에는 택배기사들의 소득이 줄어들 수 있어 반발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때문에 노조의 주장대로 노동 강도를 낮추면서 택배기사들에게 일정 수입을 보장해주기 위해서는 택배비 인상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택배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택배비 인상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온라인몰 등 대형 화주들과 소비자 등 여론 반대가 부담이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비용 인상에 대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업계 일각에서는 지난 21일 택배 노사 합의가 정치권 주도로 이뤄지면서 갈등 봉합을 우선시해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찾기 보다는 봉합하는데 급급해 너무 서둘렀던 측면이 있다”며 “택배비 인상을 중심으로 회사와 근로자, 대리점 등 구성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발표된 택배 노동자 과로방지대책은 택배회사와 대리점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며 “정부의 자동화설비 지원과 더불어 최소요금제 등 제도 개선이 뒷받침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