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폭로에도 '선수 보호' 명분 아래 미온적 대처 지적
그나마 신속하게 조치 취한 OK금융그룹과 대조
여자배구 이재영·이다영(25·이상 흥국생명)에서 시작된 ‘학교 폭력’의 폭발력이 걷잡을 수 없이 배구계 전체로 뻗어가고 있다.
13일 송명근(28)·심경섭(30·이상 OK금융그룹)을 학폭 가해자로 지목하는 폭로 글이 올라와 해당 선수와 구단이 사과문을 발표했다.
‘현직 남자 배구선수 학폭 피해자입니다’라는 글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A씨는 “고1 때 학교 선배에게 폭행당해 고환 봉합 수술을 받았으며, 중학교 때도 심한 폭력을 행사하는 선배가 있었다”고 썼다.
OK금융그룹 배구단은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는 입장문을 발표했지만 피해자 A씨는 "먼저 명확히 할 것은 당시에 '수술 치료 지원 및 사과가 있었음을 확인했다'라는 문장은 사실이 될 수 없다"며 "가해자 측에서 진심어린 사과가 있었다면 지속적인 놀림이 동반될 수는 없었을 거다. 이것을 사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때 추억으로 묻으려고 했는데 아무리 해도 악몽이 잊히지 않는다"면서 "당신들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다"고 했다.
이에 송명근은 14일 개인 SNS를 통해 공개 사과를 했고, 반성의 의미로 잔여경기 불출전 의사를 밝혔다. OK금융그룹은 고위층 포함 프런트, 감독 및 코칭스태프들이 긴급회의를 열고 ‘핵심전력’ 송명근-심경섭의 잔여경기 불출전 의사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흥국생명의 징계 소식은 아직까지 들리지 않고 있다.
학폭 관련 첫 폭로가 나온 지난 10일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는 사과문을 발표한 뒤 11일 경기에 결장했지만 여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여자배구 선수 학교폭력 사태 진상 규명 및 엄정 대응 촉구합니다’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게시 이틀 만에 7만 여명을 돌파했다.
이다영의 경우, SNS로 선배를 저격하고 불화 논란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낙인돼 여론은 더 싸늘하다.
가뜩이나 김연경과의 불화설로 분위기가 어수선한 흥국생명은 연일 계속되는 피해자들 폭로에도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해당 선수들의 징계 수위와 시점에 대해 고심 중이지만 ‘선수 보호’라는 명분 아래 단호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은 피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는 한국배구연맹과 대한배구협회도 처벌 조항이나 올림픽 국가대표팀 구성 등을 감안해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 피해자는 “피해자들이 한둘이 아닌데 구단이나 협회 연맹 등 관계 기관들은 방관자처럼 보인다.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것 아니냐”고 성토했다. 확실한 조치가 나오지 않다보니 의혹만 쌓여가고 있다.
만에 하나 구단과 협회가 일각에서 제기하는 ‘시간 벌기’ 식의 얄팍한 사고로 징계를 지연한다면, 한국 배구 발전에 큰 장애 요소이자 위협적인 변수를 키우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학교 폭력에 대해 우리 사회는 매우 엄격해졌다. 그 잣대는 지난해 프로야구(KBO리그)에서도 적용됐다. 단호한 조치로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가해자가 된 선수들을 조금이라도 빨리 건져 올리며 한국 배구의 중흥을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피해자들은 물론 배구팬들도 강력하고 신속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