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신경전 이어가다가 막판에 '동시 수용'
단일후보 바라는 열망에 후보들 부담 느낀 듯
'金·吳·安에게 고한다' 시민 광고 게재되기도
단일화 불발·3자 구도시 정치생명 장담 못해
단일화 여론조사 유불리의 계산기를 두드리며 치열한 수싸움을 이어가던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가 마침내 서로 양보하고 상대의 요구를 수용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정권심판'을 바라는 시민들의 민심이 두 후보에게 압박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19일 오세훈·안철수 후보 진영은 하루 종일 신경전을 이어갔다. 이날이 선관위 후보등록 마감인 관계로 각자 접수가 불가피하게 된 두 후보 진영은 전날밤부터 수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탐색전이 계속되던 중 안철수 후보가 이날 오전 10시를 선관위 후보등록 접수 일정으로 예고하자, 오세훈 후보도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후보등록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안 후보는 돌연 후보등록 일정을 오후 2시로 연기했다. 그러자 오 후보도 질세라 후보등록 일정을 전격 연기하는 등 치열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이날 오전 9시 30분부터 오세훈 후보와 30분간 비공개 3차 회동을 가진 안철수 후보는 직후 국회로 이동해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안 후보는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오세훈 후보가 요구한 단일화 방식을 전적으로 수용하겠다"고 선언했다. 전날에 이은 두 번째 '전적 수용' 선언이었다.
전날 안 후보의 '수용 선언'에 '당했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오세훈 후보도 이날은 가만히 두고보지 않았다. 오 후보는 오후 1시 국회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안 후보가 어떤 안을 받아들였다는 것인지가 불투명하다"며 "(전적 수용이 아닌) 새로운 협상의 재개를 요청한 정도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이틀째 계속된 '수용 선언'과 뒤이은 논란을 둘러싸고 시민들의 피로감이 커졌다. '전적 수용' 선언이 나오면 당연히 타결이 되고 단일화가 이뤄지는 게 상식인데, 두 후보 사이의 논란을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가상대결과 경쟁력 조사는 문구상 앞뒤로 말을 바꾼 것일 뿐인데, 그것을 놓고 며칠째 룰 협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한심하다"며 "보수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커지자 오후 2시 30분 서울시선관위를 찾아 후보등록을 한 안철수 후보는 직후 국회로 이동해 다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긴 한숨과 함께 자리에 앉은 안 후보는 "국민의힘이 추가로 요구하는 조사 방식이 있다면 그것도 다 수용하겠다"며, 격앙된 어조로 "이제 만족하느냐"고 물었다.
같은 시각 오세훈 후보는 서울시선관위에 도착해 후보등록에 앞서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오 후보는 준비해온 원고를 꺼내들더니 빠른 속도로 "안철수 후보의 요구를 전격 수용한다"는 내용을 읽어내려갔다.
오 후보는 "아까 1시에 말씀드린 뒤 많은 고민을 했다"며 "결국 내가 양보하는 게 단일화를 이루는 방법이 아닌가 결심을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로 양보' '동시 수용'이 이뤄진 것이다.
야권 단일화가 결국 불발돼 3자 구도로 갈지 모른다는 우려 속에서도 끝내 두 후보가 '서로 양보'라는 귀결에 도달한 것은 '정권심판'을 바라는 민심의 압박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야권이 단일후보를 내서 4·7 보궐선거에서 승리해주기를 바라는 시민들의 열망이 후보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한국갤럽이 16~18일 설문해 이날 발표한 대통령 직무수행평가에 따르면, 서울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평가는 27%에 불과해 전국에서 가장 낮았다. 대구·경북(28%)보다도 낮은 수치다. 직무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65%에 달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런데도 끝내 오세훈·안철수 두 후보의 '각자 등록'이 불가피해지면서 여론은 '누구든 아무나 양보하라'로 기울어졌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이날의 신문광고 사건이다. 60대 기업인으로 알려진 한 시민은 이날 조간신문 세 곳과 석간신문 한 곳에 '대한민국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김종인·오세훈·안철수에게 고한다'는 전면광고를 냈다. 야권 단일화를 촉구하는 내용이다. 이 시민은 전날 끝내 단일후보 등록이 불발되는 것을 보고 광고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점증하는 '단일화 압박' 여론에도 불구하고 끝내 단일화가 불발돼 '3자 구도'로 갈 경우, 오세훈·안철수 후보 둘 다 선거 승리는 물론 향후의 정치생명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점도 '서로 양보'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장은 LH 투기 사태 등 악재 속에서 고전하고 있지만, 공식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되면 지지층의 결집이 이뤄지면서 결국은 40% 이상의 득표가 기대된다. 야권 중진의원은 "지금의 여론조사는 의미가 없다"며 "막판에 가면 결국 51대49의 싸움"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세훈·안철수 후보가 단일화를 이뤄내지 못하고 각자 완주해 '3자 구도' 속에서 낙선한다면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렵다. 자칫 정치생명이 그대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서로 한 발짝씩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두 후보의 '서로 양보' '동시 수용'에 따라 이르면 21일, 늦어도 22일부터는 야권 단일화 여론조사가 실시될 것으로 기대되는 가운데, 여론이 어느 후보의 '양보' '수용'에 더 우호적인 평가를 내리느냐가 최대 변수가 됐다는 관측이다. 정치적 셈법으로 보면 '양보'나 '수용' 선언도 여론조사를 앞두고 '대승적으로 희생했다'는 이미지를 획득하기 위한 승부수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성철 소장은 "정치는 계산으로 하는 게 아니다. (적합도니 경쟁력 설문이니 가상대결이니 하는) 세세한 계산을 국민들께서 아시겠느냐"며 "정치는 국민들에게 감동을 줘서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