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태평양 구상·신남방 정책 '교집합' 모색
쿼드 가입 없이도 '역할 확대' 가능하다는 취지
쿼드 '비군사적 의제'에는 협력할 가능성
'5자 협력체' 신설시 참여 가능하다는 관측도
문재인 정부는 지난 17일부터 이틀간 이어진 한국과 미국의 고위급 회담에서 '쿼드(Quad)' 관련 논의가 없었다고 밝혔다.
쿼드는 미국이 일본·호주·인도와 함께 꾸린 안보 협력체로, 중국이 '반중 군사전선'으로 간주해 강하게 반발하는 협력체이기도 하다. 미국은 쿼드를 한국·베트남 등으로 확대하는 '쿼드 플러스'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 18일 한미 외교·국방 장관 회담 직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쿼드에 대한 직접적인 논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도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쿼드 가입 문제는 의제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쿼드가 '비공식적 협력체'라며 "여러 이슈에 대해 협력하려 한다. 한국과도 긴밀한 협력을 지속 중이다. 이런 모임(쿼드)이 굉장히 큰 혜택을 가져온다고 본다"고 말했다. '공식 제안'만 하지 않았을 뿐 사실상 한국의 '적극적 역할'을 기대한다고 밝힌 것이다.
앞서 블링컨 장관은 외교정책을 소개하는 연설에서 중국 견제 의지를 강조하며 '동맹과 부담을 나누겠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향후 역내 한국 역할 확대를 요구하는 차원에서 쿼드 참여 및 협력을 타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美, 쿼드 '군사 이미지' 빼는데 주력
韓, 신남방 정책 통한 운신 폭 확보 노력
바이든 행정부는 아시아 정책 '기초'로 쿼드를 내세운 이후, 쿼드의 '반중 군사전선' 이미지를 빼는데 주력하고 있다. 일례로 최근 개최된 쿼드 정상회담 의제는 △기후변화 △코로나19 대응 △기술협력 등 비군사적 이슈에 국한됐다.
문 정부가 △포용성 △개방성 △투명성 △국제규범 준수라는 4대 기준 충족 시 "어떤 협력체와도 협력할 수 있다"고 거듭 밝혀온 만큼, 쿼드가 '포괄적 협의체'로 자리 잡을 경우 참여를 거부할 명분이 마땅치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외교 당국은 현시점까지 양국 간 공식적 쿼드 논의가 없었다고 거듭 강조하며, 바이든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구상과 문 정부의 신남방 정책 간 연계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쿼드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요구하는 역내 역할 확대를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는 취지로 읽힌다.
실제로 정의용 장관은 이번 한미 고위급 회담에서 "우리의 신남방 전략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어떻게 공조해 공동의 목표 달성할 수 있는지 여러 방안에 대해 협의했다"고 밝혔다.
2+2회담(외교·국방 장관 회담) 직후 발표된 공동성명에도 "신남방 정책과의 연계 협력을 통해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을 만들기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간다는 결의를 재확인한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양국 전략의 '교집합'으로 △경제 △안보 △인적 교류 분야를 언급하며 "(한국의) 선진적 기술과 아세안 국가들의 수요를 결합시켜 역량을 강화해나간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신남방 정책과 인도·태평양 구상 모두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국가들과의 다각적 협력 심화를 목표로 하는 만큼, 차이점보단 공통점에 주력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정부 당국자는 우리 군 퇴역함정을 아세안 국가에 무상 원조한 사례를 언급하며 "(이번에 방한했던) 미군 고위인사가 서욱 국방부 장관에게 (한국·아세안 간) 안보협력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고 전했다. 쿼드에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원하는 역내 안보 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韓美동맹 전략가치, 호주·인도보다 중요"
"쿼드의 '플러스' 아닌 '펜타'엔 가입 가능할 것"
문 정부 외교안보 브레인들은 한국이 신남방 정책으로 일부 운신 폭을 확보하는 것과 별개로, 쿼드가 주도하는 비군사적 의제에는 협력할 여지가 있다고 보는 분위기다.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를 맡았던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최근 한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쿼드 주요 의제에 "군사·안보 분야는 빠져있다"며 "(코로나19) 백신 개발에는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고, 기후변화와 기술협력 문제 역시 우리가 관심이 많은 이슈"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기존 쿼드에 한국이 포함되는 '쿼드 플러스'의 틀을 벗어나 미국 측이 보다 포괄적인 '새로운 협력체'를 꾸릴 경우 참여를 검토할 수 있을 거란 관측도 제기된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한 인터뷰에서 "한미동맹이 호주·인도보다 전략적으로 훨씬 중요할 수 있다"며 "왜 우리가 쿼드(플러스)에 들어가나. 헥사(6)를 하든 펜타(5)를 하지"라고 말했다.
문정인 이사장은 일본·호주·인도가 쿼드에 참여한 상황에서 "한국은 '기타 범주(플러스)'에 속하는 베트남·뉴질랜드와 같이 참여하라고 하면 한국 정부가 끼겠는가"라며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좀 탐탁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4자 협의가 아니고 5자 협의를 해서 한국에 들어오라고 하면 그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