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변 거짓 위선이 체질화된 사람들
“우리 편 진위선악(眞僞善惡) 중요치 않아”
생태탕과 페라가모 구두의 경고
들끓던 분노 폭발….
무능하면 겸손이라도 해야 했다. 집 장만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유권자 혁명이었다. 선거는 끝났지만, 끝이 아니다
문재인의 취임사는 감동이었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역설한 것에 특별히 꽂혔다. 하나 버릴 것 없던 대통령 취임사는 어느새 거짓과 위선의 대명사가 됐다. 유효한 것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뿐이라는 탄식이 온 나라를 덮었다.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는 유권자 혁명이었다. 오세훈 박형준 압승보다 박영선 김영춘 참패가 더 와닿는 것에서 우선 그렇다. 그 결과는 몇 가지 특정 이슈의 결과물이 아니다. 국정운영 전반의 대(大) 난맥이 부른 필연이다.
선무당들은 짧은 기간에 25차례 부동산대책을 쏟아냈고 그때마다 집값은 되레 폭등했다. LH 땅 투기는 가뜩이나 성난 민심이 폭발하는 기폭제였다. 생애 첫 집 장만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이고, 집을 갖거나 팔면 세금폭탄이 도사리고 있으니 뭘 어쩌라는 건가.
원전 경제성평가 조작, 울산시장 선거 개입, 대형 펀드 금융 비리 의혹 수사가 어디서 발목이 잡혔는지 사람들은 다 안다. 검찰이 팽(烹) 된 사연과 고위공직자수사처 경찰국가수사본부가 왜 생겼는지, 중대범죄수사청은 어디까지 와 있는지도 모르지 않는다.
그들은 나라를 거의 말아먹었다. 부국강병(富國强兵)을 먼 산 쳐다보듯 했으면서 그 열매와 영광은 독식하려 들었다. 국가 존망의 기틀인 외교·안보를 허물었으며, 북한에 중국에 나라의 체통과 주권자의 자존심을 갖다 바쳤다.
궤변 거짓 위선이 체질화된 사람들
궤변과 거짓과 위선은 그들의 일상이었다. 청렴에서도 거리가 멀었다. 무능하면 오만이라도 하지 말아야 했다. 오만방자는 완장 찬 얼굴뿐 아니라 그 주변 인물들에게서까지 하늘을 찔렀다. 부끄러움 같은 건 아예 안중에 없었다.
일부 지역, 계층, 세대는 판단을 달리할 것을 이해한다. 그렇더라도 정권의 배신에 대한 분노는 서울·부산만의 것이 아니다. 양대 도시의 구(區) 단위 지지율 우위를 야당 후보가 석권한 것은 온 나라에 들끓는 분노를 증언한다.
선거전략을 네거티브로 택한 속내는 쉽게 읽힌다. 뭘 내세울 것이 없지 않은가. 저질 망령 시리즈는 가관이었다. 결국 서울시장 선거는 오세훈과 생태탕의 싸움, 부산은 박형준 vs 엘시티 대결로 좁혀졌다. 부끄럽고 역겹기가 눈 뜨고 못 볼 지경이었다.
박영선 김영춘은 거기 없었다. 그럴 거면 더구나 박원순 오거돈 성범죄로 치른 선거에 처음부터 여당 후보는 없는 게 나았다. 그게 상식적이다. 그들은 대중의 건망증을 기대한 정도가 아니었다. 유권자를 천치 등신쯤으로 허접하게 여기지 않고서야 없을 일이 줄을 이었다.
“우리 편 진위선악(眞僞善惡) 중요치 않아”
LH 사태는 농지투기를 엄벌하라는 지시를 불렀다. 문재인 저택 논란도 가라앉은 건 아니다. 농지를 11년 (텃밭) 영농경력으로 사들인 것을 빗대어 “주말에 낚시 다니면 어부냐”라는 식의 냉소가 팽배한다. 대통령 친·인척과 주변 인물 등 특수관계인(人) 비위를 감찰하는 특별감찰관이 여태 공석인 것에도 눈길들이 차갑다.
친여 매체들은 여당 측 네거티브를 일사불란하게 편들었다. TBS 교통방송의 ‘뉴스공장’ 김어준이 정점이었다. 그들은 생태탕집 아들을 ‘의인’으로 불렀다. 야당은 거기를 ‘뉴스공작소’로 지목했다. 선거 직후 김어준은 선공(先攻)으로 뉴스공장 ‘사수’를 다짐하고 나섰다.
해마다 서울시는 400억원을 교통방송에 지원한다. 서울시민들이 낸 세금, 소중하게 아껴 쓰겠다며 걷은 돈이다. 김어준의 뉴스공장 1회 진행료는 100만원, 주 5회씩 연간 수입 2억6000만원(52주x500만원)으로 알려져 있다.
김종민은 8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언론의 편파보도로 여당이 패배했다는 취지의 불만을 털어놨다. 같은 날 민주당 당원 게시판에는 언론과 포털이 편향됐다며 ‘즉각적인 세무조사와 가짜뉴스처벌법 완력 통과’를 요구하는 글이 게재됐다.
생태탕과 페라가모 구두의 경고
공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에서 진중권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편을 위해 진실은 왜곡해도 되는 것이고, 우리 편을 위해 선악의 기준은 버려도 된다는 포맷, 그것이 문재인 정권의 권력과 만나 증폭되면서 미증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짐작은 했지만, 민심의 질책을 엄중히 받아들인다면 저건 아니다. 허구의 촛불혁명 미몽에서 깨어나 무릎 꿇고 고해성사하는 것이 먼저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저 퇴락한 남 탓과 내로남불 적폐청산이 아니다. 남의 눈에 든 티끌보다 제 눈의 대들보부터 빼내라는 주문이다.
무도 무능 무치(無恥)에 비양심 몰상식이 더해진 세상을 4년 살았다. 선전·선동 쇼에 잠시 넘어갔어도 마음을 뺏겼던 것은 결과적으로 잘못이다. 코로나 K-방역 자화자찬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백신 접종이 세계 111위 바닥을 헤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선거는 끝났으나 끝이 아니다. 4월 7일 보궐선거는 한갓 예고편일지 모른다. 대선까지 1년 남짓, 그들은 ‘의인’ 김대업 윤지오 향수, 어쩌면 훨씬 세련된 유혹을 못 견뎌 할 것이다. ‘생태탕과 페라가모 구두’를 잊으면 안 된다.
글/한석동 전 국민일보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