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직원 SK로 이직 후 SK 폭스바겐 수주가 결정적 계기
영업비밀 침해 LG 승리했지만 SK '미국 철수' 강경 대응에 美 중재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햇수로만 3년째 끌어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11일 전격 합의했다.
지난 713일간 법적 다툼은 물론 장외 공방까지 주고 받은 양사는 분쟁 장기화 부담과 한국·미국의 '대승적 합의' 요구에 전격적으로 합의를 도출했다.
업계에 따르면 이번 소송은 2019년 4월 29일 LG에너지솔루션(당시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자사의 배터리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ITC와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제소하면서 시작됐다.
LG에너지솔루션은 SK이노베이션이 자사의 핵심 인력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배터리 핵심 영업비밀이 유출됐다고 주장했다.
2017년~2019년 당시 LG화학 직원 100여명은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했다. LG 측은 대규모 인력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핵심 기술이 유출됐다고 판단했다.
이 과정에서 2018년 말 SK이노베이션이 폭스바겐의 수십억 달러 규모의 배터리 수주를 따낸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LG에너지솔루션은 SK이노베이션에 소송을 제기하며 SK의 배터리 셀과 모듈, 팩 및 관련 부품·소재에 대해 미국 내 수입을 전면 금지해달라고 ITC에 요청했다.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도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ITC는 통상 문제와 불공정 무역 행위에 대해 조사와 분석, 규제를 수행하는 미국 대통령 직속의 독립적인 연방 준사법기관이다.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은 경력사원 채용은 정상적인 절차로 진행된 것이라며 영업비밀 침해 주장을 부인했다. 특히 SK와 LG는 배터리 개발·제조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LG의 영업비밀 자체가 필요없다고도 강조했다.
영업비밀 침해 분쟁이 시작된 이후 양사는 국내외에서 소송전을 이어갔다. LG화학은 2019년 5월 SK이노베이션을 경찰에 고소했고, 다음달에 SK이노베이션은 서울중앙지법에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같은 해 SK는 2019년 9월 3일 자사의 배터리 특허권을 LG가 침해했다며 ITC에 제재를 요청했고 LG는 같은 달 27일 맞소송으로 응전했다.
소송이 격화되자 9월 16일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이 만나 합의를 모색했지만 의견차만 확인했다.
ITC는 지난해 2월 SK에 조기패소 결정(예비결정)을 내리면서 LG에 손을 들어줬다. ITC는 SK이노베이션이 사건이 시작된 이후 고의로 문서를 삭제하는 등 고의적 증거 인멸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 ITC는 SK의 요청으로 두 달 뒤인 4월 전면 재검토 결정을 내렸고 최종 결정까지 세 차례나 발표 시점을 연기했다. 그 사이 LG화학의 배터리 사업부는 LG에너지솔루션으로독립했다.
지난 2월에야 ITC는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고 최종 판결했다. 그러면서 SK의 배터리 셀과 모듈, 팩 및 관련 부품·소재에 대해 10년 동안 미국 내 수입 금지를 명령했다.
다만 미국 고객사들의 피해를 고려해 포드와 폭스바겐 일부 차종엔 각각 4년과 2년의 유예기간을 허용했다.
ITC 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거부권 시한은 60일이다. 이 기간 동안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이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막판 설득에 총력을 기울였다. SK 배터리가 미국에서 발을 빼면 대규모 일자리 창출이 무산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결과적으로 미국 전기차 산업 경쟁력을 후퇴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하는가 하면, "수입금지 처분은 SK이노베이션이 신속히 합의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하며 바이든 행정부 설득에 나섰다.
양사는 미국 행정부 고위관료 출신 인사들을 대거 영입하는 등 치열한 로비전을 벌였다.
이 같은 교착 상태가 이어지면서 업계는 거부권 시한(현지시간 11일)까지 양사 합의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 대통령이 ITC의 영업비밀 침해 관련 결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전례가 없고, 바이든 대통령은 평소 지식재산권 보호를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양사는 합의금 규모를 놓고 큰 이견을 보이며 팽팽한 줄다리기를 지속해왔다. 업계 추정 등을 종합하면 LG측이 원하는 배상액은 3조원 이상인 반면 SK는 이에 훨씬 못미치는 1조원 안팎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ITC 판결 이후 한국·미국 정치권까지 가세해 '대승적 합의'를 요구를 요구했지만 별다른 진척은 없었다.
이 때문에 이번 합의는 사실상 미국 정부의 중재로 이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ITC 최종 결정 이후 백악관을 대신해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검토해왔으며, 막판까지 양사의 합의를 종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바이든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당장 SK이노베이션 공장이 있는 조지아주 일자리가 타격을 입게 된다. 반대로 거부권 행사를 하면 평소 지적재산권을 강조해온 바이든 대통령의 지론에 상충되는 문제가 있었다.
이번 합의가 성사되면서 미국 입장에서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입장을 훼손하지 않고, 기후변화 대응 계획에도 차질을 빚지 않게 됐다. 양사 역시 '소송 리스크'를 걷어냄에 따라 수주 및 투자 확대에 전념할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바이든 행정부가 LG-SK를 대상으로 중재를 한 끝에 주말 사이 전격 합의가 타결됐다고 보도했다.
이날 합의로 양사의 배터리 분쟁은 713일만에 마무리됐다. 양사 합의로 영업비밀 침해의 파생 분쟁인 특허 침해 소송은 취하할 가능성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