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11일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코로나19(COVID-19)에 대해 세계적 대유행 즉, 팬데믹(Pandemic)을 선언 했다. WHO의 선언 이전부터 코로나19는 우리 일상에 심각한 영향을 주었고, 유례를 찾기 어려운 고통과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우리 삶의 가장 큰 변화는 마스크 착용의 일상화였다. 초반에는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약국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다반사였고, 결국 마스크 사재기를 막기 위해서 한때 배급제라는 특단의 조치까지 취해졌다. 그렇다고 마스크 착용이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당연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문화적 차이 등으로 발병 초기에는 마스크 착용 자체를 거부하는 나라도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미국이 그러했다.
110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당시 중국 동북지역 특히 만주리아 일대에서 시작된 전염병, 이른바 ‘만주폐렴’은 급속도로 퍼지면서 불과 한 달여 만에 중국 동북지역 전역에 퍼졌고, 베이징까지 확산됐다.(<사진 1> ‘만주폐렴’ 감염 확산 지도) 이러한 전염을 막기 위해 당시 중국 보건 당국, 특히 감염 확산 방지 대책을 주도적으로 이끌던 우롄더는 <사진 2>처럼 마스크 착용 모습까지 촬영하여 배포할 정도였다.
중국 보건 당국은 초기부터 <사진 2>처럼 검역 및 방역 담당자부터 수술용 면 거즈를 활용하여 마스크를 착용하게 했다. 그 결과 얼마 뒤에는 <사진 3>처럼 대부분의 사람이 마스크를 착용했다.
일본도 중국 보건 당국처럼 만주 폐렴에 대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우선 감염자와 비감염자를 철저히 분리하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전염병이 의심될 경우 자가격리를 우선적으로 시행하지만 당시에는 <사진 4>와 같은 시설에 구금하여 관리했다.
심지어 감염자가 나온 집은 환자를 격리 조치한 후 <사진 5>처럼 울타리를 치고 그 집은 불태워버렸다. 사실상 오염원을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소독 조치의 일환이었다. 방화를 통한 소독은 그 감염원이 쥐벼룩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소독만으로는 쥐벼룩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듯 집을 부수고 불태워서 없애려 한 것이다. 그만큼 당시 감염 확산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와 함께 모든 이동 수단에 대해서도 소독을 실시했다. 가장 먼저 대상이 된 것은 기차였다. (<사진 6> 기차 소독) <사진 7>에서 볼 수 있듯이 인력거와 인력거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철저한 검역과 소독 중심의 방역 대책이었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쥐잡기’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계속 증가하자, 일본은 이 문제를 비위생적인 중국인의 생활환경과 중국의 낙후된 의료 시설 때문으로 치부하였다. 대표적으로 하층민 노동자인 쿨리의 생활환경을 예로 들었다.
먼 타지에서 일자리를 찾아 중국 동북지방까지 온 중국인 노동자는 당시 매우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비위생적인 상태에서 고된 노동에 혹사당했다. 일본 전문가들이 지적한 비위생적 상황이란 중국인 노동자의 공동 숙소 같은 곳이었고, 이곳에서 쥐벼룩 등이 기생하면서 사람에게 ‘만주폐렴’을 전염시킨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일본 전문가의 주장은 ‘만주폐렴’이 쥐벼룩 같은 매개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한 결과였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전문가는 쥐 등의 매개체 박멸 그리고 환자 격리와 소독에 충실하기만 하면 방역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인 주거지에서도 환자가 계속 발생하자, 점차 일본 역시 인적 접촉에 의한 즉, 폐페스트에 의한 전염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일본인 의료진 역시 마스크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방역 문제에서 해당 전문가의 의견은 그 누구의 의견보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의 아집은 자칫 더 많은 희생을 불러올 수 있음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신효승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soothhistory@nahf.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