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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式 제거' 통하지 않아…윤석열에 무대응 전략


입력 2021.05.13 00:00 수정 2021.05.13 07:03        이충재 기자 (cj5128@empal.com)

과거 노무현 "실패한 인사" 한마디에 고건 낙마로 이어져

문 대통령 "아무 말도 않겠다"…여권 철저한 무시‧무응답

때릴수록 커진다는 '尹방정식'에 따라 언급도 하지 않아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고 말했다. ⓒ데일리안 DB

"때릴수록 커진 게 '윤석열현상'인데 지금은 말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대선을 앞두고 현재권력의 위협감과 위기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발언이다."

"대통령도 여당도 그의 맷집을 알았다. 일단 무대응으로 거품을 빼는 거다."


문재인 대통령의 '윤석열 답변'을 두고 정치권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발언에는 고도의 정무적 판단이 작용한 것이란 분석이다.


애초에 윤 전 총장이 범야권 1위 대선주자로 키운 일등공신이 집권여당이었다. 여권은 검찰개혁을 명분 삼아 윤 전 총장 때리기에 몰두했고, 스스로 정치에 소질도 없고 의사도 없다던 인물을 정치판으로 불러냈다.


이미 때릴수록 체급이 높아진다는 '윤석열 방정식'은 정치권 정석으로 자리 잡은 상황이다. 이 같은 공식에 따라 문 대통령도 윤 전 총장에 대한 철저한 무대응 전략을 취했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친문계 한 의원은 "윤 전 총장의 존재감을 얹어줬던 학습효과 때문에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자체가 어렵지 않았겠나"라며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질문이었고, 무응답도 대통령이 준비한 답변"이라고 말했다.


야권에선 쉽게 흔들리지 않는 윤 전 총장의 '맷집'을 고려한 발언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실제 윤 전 총장은 2019년 7월 검찰총장 임명장을 받은 이후 여권의 노골적인 찍어내기 공세를 버텨내며 거물급 대선주자로 급성장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청와대가 윤 전 총장의 현직 시절 맷집을 과소평가했다는 사실을 이제 깨달은 것 같다"면서 "때리면 커지기만 하고, 그렇다고 '우리 총장님'이라고 끌어안을 수도 없으니 아예 말을 않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여권에선 '윤 전 총장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동의가 이뤄진 모습이다. 범야권 대선 지지율 1위 주자에게 공세를 펴지 않는 유례없는 장면이다. 여당 주요 대권주자들도 윤 전 총장과 관련된 질문에는 손사래를 치거나 원론적인 수준의 답변만 내놓고 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선 "윤 총장에 대해 저의 평을 한마디로 말하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직 검찰수장이던 윤 전 총장의 정치 행보를 견제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많았다.


'당선시키진 못해도 떨어뜨릴 힘 있다'…文 윤석열을 어쩌나


관심은 향후 문 대통령과 윤 전 총장의 '관계설정'이다. 정치권에선 더 이상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으로 규정될 수 없는 만큼 어떤 방식으로든 문 대통령의 견제가 이뤄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 대선 국면에서 현직 대통령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대상이다. '특정 주자를 당선시키지는 못해도 떨어뜨릴 힘은 있다'는 것이 정치권의 오래된 통설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관계가 대표적인 사례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자신이 초대 국무총리로 기용했던 고건 전 총리를 눈엣가시로 여겼다.


노 전 대통령은 2006년 12월 21일 민주평통 상임위원회에서 작심한 듯 "고건 총리는 실패한 인사였다"고 말했고, 살아있는 권력에 직격탄을 맞은 고 전 총리는 동력을 잃고 불과 한 달 뒤에 대선불출마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정무특보였다. 청와대 출신 여권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이 어떤 의도로 발언을 했는지, 결과가 어땠는지 문 대통령도 함께 고민하고 지켜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 사람들은 대부분 문 대통령이 윤 전 총장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진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노 전 대통령같은 승부사 스타일이 아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 전 총장이 갈등을 빚는 동안에도 한 발짝 물러나 뒷짐을 지는 모습이었다. 공격은 여권 친문세력의 몫이었다.


민주당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윤 전 총장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다. 그는 생각보다 내공이 있다.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걸 부인하면 안 된다"고 위기론을 강조했다. 여당 주요선거에서 전략기획을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윤 전 총장이 외곽에 있는 주자라고 얕잡아 보면 안된다는 공감대가 있다"며 "일단 (정치권으로) 나오면 세게 붙어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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