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앞 릴레이 1인 시위' 촉발했던 주인공
김은혜, 국민의힘 6·11 전당대회 당대표 조준
"총선 이후 위축됐던 야당이 목소리 냈던 계기
표결서 지더라도 정치적으로 이기는 길 선택"
'초등학생 김은혜'에게는 꿈이 있었다. 고교야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시절, 야구선수가 되는 게 꿈이었다. "어머니가 내 손을 이끌고 무수히 동대문운동장을 데리고 다녔다"고 했다. 박노준이 홈플레이트로 대시하다가 발을 접질러 '졌지만 이긴 싸움'을 했던 1981년 봉황대기 결승전도 직관했다.
여성으로서 야구선수를 한다는 꿈은 좌절됐지만, 야구에서 배웠던 꿈은 꺾이지 않았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9회말 투쓰리 풀카운트에서도 역전은 가능하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지난해 연말 집권 세력이 법무장관을 시켜 현직 검찰총장을 '찍어내고' 공수처를 우격다짐으로 설치하려 하던, 흡사 '9회말 투쓰리 풀카운트'에 몰린 것과 같은 시점에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은 초선 의원들의 '청와대 릴레이 1인 시위'를 촉발했다.
초선 의원들의 결기는 공수처법 개정안 정국에서 '전원 참여 필리버스터'로 이어졌다. 집권 세력은 거대 의석을 바탕으로 끝내 법안을 처리했지만 국민의힘에게는 '졌지만 이긴 싸움'이 됐다. 정의와 공정의 실종, '내로남불'에 성난 민심은 4·7 재·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삼켜버렸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당대표 출마를 선언한 김은혜 의원을 17일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김 의원은 데일리안과의 인터뷰에서 출마선언의 장소를 청와대 앞으로 정한 것에 대해 "총선 이후 위축됐던 국민의힘이 야당으로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계기가 초선 의원들의 '릴레이 시위'였지 않았느냐. 내게는 상징성이 있는 장소"라며 "우리의 절체절명의 지상과제인 대선승리·정권교체의 목표 지점을 눈앞에 두고 (당권에) 도전을 선언하니 더 의미 있더라"고 말문을 열었다.
아울러 "상대가 거대 의석을 앞세워 힘으로 밀어붙이겠다고 나서면 의회 안에서 막아낼 방법은 없다"면서도 "오히려 그들의 관성을 이용해서 그들이 스스로 넘어지게 해야 한다. 야당이 선택해야 하는 길은 표결에서 지는 한이 있더라도 정치적으로는 승리하는 길"이라고, 자신이 촉발했던 '초선 릴레이 1인 시위'의 성과를 회상했다.
당 안팎 모든 대권주자에게 장벽·문턱 없는
완전개방경선, 오픈프라이머리로 문호 연다
"참신한 분들 대거 등판시켜 활기 불어넣고
본선 다름없는 축제의 오픈프라이머리 될 것"
국민의힘 6·11 전당대회로 선출될 당대표의 최대 책무는 범야권의 대선후보군을 잘 관리해서 대선후보 경선을 국민의 주목 하에 치러낸 뒤, 이렇게 세운 대선후보를 중심으로 내년 3·9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이뤄내는 것이다.
이와 관련, 김은혜 의원은 "이른바 중진들이 내놓는 해법이 오로지 '윤석열' 아니냐. 경륜에 어울리지 않는 태도"라며 "상상하기 싫지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만약 다른 생각을 한다면 그 때는 대체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러면서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정치를 왜, 누구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입장을 듣고, 평가와 판단의 과정을 거치는 게 상식이고 정도 아니냐"며 "이러한 과정과 절차를 거치면서 때가 되면 당연히 (윤 전 총장과) 진지한 대화에 나서는 것이 순서"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윤석열 전 총장만 바라보고 손을 놓을 수는 없다. 국민의힘도 자체적인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프로그램을 가동해야할 것"이라며, 자신이 당대표에 선출된다면 직후 바로 대선기획단을 출범해 완전개방경선과 대선공약 준비에 착수하는 것은 물론, 이와 동시에 당내의 대권주자들을 띄우는 작업도 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지금은 주자들에게 '알아서 지지율을 올리라'고 방치해서는 해결이 안될 상황"이라며 "당내 대권주자들이 참여하는 정치콘서트를 통해 프리-마케팅(Pre-Marketing)과 인큐베이팅에 전력을 다할 생각"이라고 제시했다.
김태호 의원과 원희룡 제주도지사, 유승민 전 의원과 황교안 전 대표가 이러한 '프리-마케팅'의 대상이 되는 당내 대권주자군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윤석열 전 총장 외에 당밖에도 여러 잠재적 대권주자들이 언급된다. 무소속 홍준표 의원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있고, 최재형 감사원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홍정욱 전 의원 등도 거론된다.
이들의 이름이 거명되자 김은혜 의원은 "많은 분들, 더 많은 분들이 참여하는 것을 환영한다"며 "당대표가 된다면 내가 제시한 당의 혁신과 변화·쇄신 방안을 당원들이 추인한 것으로 알고, 이를 바탕으로 바로 그분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누구나 쳐다볼 수 있는 당이 돼야 한다"며 "기존 주자 외에 다른 참신한 분들이 대거 등판해서 우리 당에 활력을 불어넣고, 그 과정에서 본선과 다름없는 축제와 같은 오픈프라이머리 전당대회가 열리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MBC 기자로 '9룡상쟁'의 신한국당 경선 담당
"안정적이고 공정·객관적인 경선 관리 자신"
여권잠룡 이재명 본진에 깃발 꽂은 야당 의원
"이재명의 정치, 철저히 검증하고 살펴볼 것"
당의 혁신을 이뤄내고 축제와 같은 대선후보 경선을 기획하는데에는 초선 의원의 패기와 도전정신, 정치적 상상력이 장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원래부터 당내에 있던 대권주자들과 영입된 대권주자들이 뒤섞여 경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공정하고 객관적인 관리라면 어떨까. 경륜이 필요한 부분은 아닐까.
김은혜 의원은 이 점에 있어서도 자신감을 보였다. 김 의원은 "경선 과정에서 안정적인 관리, 공정하고 객관적인 경선 진행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패기만 갖고는 안되며 조직을 운영해본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가 판단의 잣대가 돼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나는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긴 시간 동안 리더십 트레이닝을 받아온 사람"이라며 "KT 임원으로도 있었고 청와대 대변인도 지냈다. 조직 운영, 메시지 관리, 통합 능력, 안정성 측면에서 확실히 나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자임했다.
이러한 자신감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MBC 기자 출신인 김 의원은 1996년 정치부로 발령받아 신한국당을 담당했다. 당시 신한국당은 '당내파' 김덕룡·김윤환·이인제·이한동·최형우에 '영입파' 박찬종·이수성·이홍구·이회창 등이 각자 다양한 지역기반·지지기반을 갖고 대선후보 경선을 치르고 있었다.
김 의원은 "96년 신한국당 시절은 '9룡'이라고 불리던 분들이 대선을 바라보며 꿈틀대던 시기였다"며 "이런 시기에 당을 출입했고, 그들의 용틀임을 어깨 너머에서 보며 취재했다"는 점을 내세웠다.
여야의 대선후보가 선출되면 제1야당 대표는 집권여당 후보를 향한 '최전방 공격수'의 역할을 마다할 수 없다. 현재 집권 세력에서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상당히 유력한 상황이다.
김은혜 의원은 이재명 지사의 '본진'에 해당하는 경기 성남분당갑이 지역구다. 지난해 총선에서 이 지역의 부동산정책 난맥상을 포착해 맹렬히 쟁점화한 끝에 깃발을 꽂았다. 경기도 59석 중에서 민주당 현역 의원을 상대로 지역구를 빼앗은 국민의힘 도전자는 김 의원이 유일하다.
이재명 지사가 여당의 대선후보가 되고, 그의 본거지를 지역구로 삼고 있는 김은혜 의원이 제1야당 대표로서 칼끝을 겨누는 상황에 대해 묻자, 김 의원은 "흥미진진할 것"이라며 빙긋 웃었다.
김은혜 의원은 이재명 지사에 관해 "시대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대단한 순발력을 가진 사람"이라며 "변신의 귀재라고 생각할만큼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특장점을 가진 분"이라고 일단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국민이 나라를 맡겨야 하는 리더로서 안정감과 책임 있는 대안 제시, 그리고 능력으로 귀결되느냐고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겠더라"며 "그동안 이재명 지사가 '약자를 위한 정치'를 해왔다고 주장하지만, 그 동기부터 결과까지 과연 제대로 이어졌는지는 철저히 검증하고 냉철하게 살펴봐야할 지점"이라고 압박했다.
혁통위 前대변인이 보는 총선 패배의 원인은…
"통합이 혁신으로 이어지지 않아 총선서 참패
민주당이 다시 집권? 상상하는 것조차 두렵다
정권교체는 판갈아엎는 혁신이 아니면 불가능"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정권심판을 바라던 국민과 당원들의 명령은 '통합'이었다. 김은혜 의원은 혁신통합추진위원회의 대변인을 맡았다. 야권의 통합은 총선을 앞두고 실제로 성사됐다. 그러나 총선은 야권은 패배로 끝났다. 당시 통합이 근본적인 변화와 혁신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것을 김 의원이 아직도 못내 아쉬워하는 이유다.
김은혜 의원은 "그 때 어렵사리 통합에는 성공했다. 간신히 묶어냈다"면서도 "통합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이뤄내는데는 실패했기 때문에 총선에서 참패했던 것"이라고 회상했다.
이어 "미래와 과거 사이에서 롤러코스터를 탔다. 코로나 와중에 전략 부재로 헤매다가 막말 파동으로 침몰했다"며 "국민들은 과거에 한 발을 걸치고 옷만 미래로 바꿔입은 야당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국민의힘이 4·7 재·보궐선거에서 압승하며 연패의 사슬을 끊었지만 김 의원은 '물 들어온다'는 상황 인식에 동의하지 않았다. 김 의원은 "재보궐선거에서 우리가 신승을 했지만 4연패 끝의 신승이라, 전적은 '4대1'"이라며 "국민들은 아직 우리에 대해서 '고삐가 풀리면 다시 과거로 회귀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우리 당이 새 얼굴로 새 판을 깔고 모든 것을 바꾸지 못하면 국민들의 그런 의구심은 전혀 불식되지 못할 것"이라며 "내가 전당대회를 '무난하게 하면 무난하게 진다' '무난하게 뽑으면 무난하게 진다'고 계속 말씀드리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총선을 앞두고 통합을 이뤄냈지만 변화와 혁신으로 이어지지 못해 패배했던 역사가 내년 3·9 대선을 앞두고 반복돼선 안된다는 점을 김은혜 의원은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김 의원은 반드시 당대표가 돼서 변화와 혁신을 이뤄내, 민주당의 정권재창출 시도를 차단하고 당원과 지지자들이 염원하는 정권교체를 쟁취하겠다고 천명했다.
김은혜 의원은 "흡입하면 치사율이 80~95%인 탄저균 포자 테러를 당했던 미국 의사당 현장도 취재했다. 삼풍백화점 참사 때도 어둠 속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누구도 진실을 파악할 수 없다는 절박감이 있었다. 머리로 계산하지 않고 몸이 먼저 뛰어갔던 것"이라며 "무모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까지 이 자리에 온 것도 정권교체는 새 판으로 갈아엎는 혁신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절박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나아가 "민주당이 다시 집권한다면 그 다음을 상상하는 것조차 두렵다"며 "김은혜가 당대표가 돼서 국민의힘이 집권을 하면 시계바늘이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확신, 국민의힘이 집권해야 국민의 삶이 나아진다는 희망, 이러한 확신과 희망을 국민들께 심어드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