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소비자 물가 전년 比 2.3% 올라
고삐 풀린 소비심리 물가 끌어올릴 듯
수요 예측 어려움에 공급 부족 현상 심화
"文정부, 성장률보다 연착륙 방안 모색해야"
회복세를 타기 시작한 한국경제에 '물가'가 돌발 변수로 부상했다. 통제 불능한 수준으로 계속 오르면서 민생을 위협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와서다. 데워지는 물속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처럼, 꾸준히 상승하는 물가가 경제 전반을 질식시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4월 소비자 물가는 1년 전보다 무려 2.3% 올랐다. 이는 정부 관리목표치인 2%를 훌쩍 넘어선 것으로, 3년 8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폭이다. 신선식품지수는 1년 전에 비해 14.6% 상승했고, 생산자물가지수는 2.1%에서 3.9%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국제유가와 광물, 천연가스 등 원자재 가격도 급등했다. 가히 물가의 역습이라 일컬을 만하다.
물가 상승은 상품의 수요가 증가하거나, 공급이 줄어들 때 촉발된다. 또는 국가가 경기부양 또는 위기극복을 목적으로 중앙은행을 통해 시중에 통화를 풀면 돈의 가치가 하락하면 물가가 뛴다. 지금 전 세계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3가지 물가 상승 촉발 요소 모두가 작동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점이 '초인플레이션' 사태를 촉발할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박사는 "세계 각국이 코로나 극복 차원에서 엄청난 통화를 풀며 유동성을 확대했기 때문에 그로 인한 물가 상승 효과는 분명히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여기에 공급과 수요 측면에서 모두 물가상승압력이 나타나고 있다"며 "내년 상반기까지 물가 상승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고삐 풀린 소비, 물가 끌어올린다"…수요측 물가상승압력
올 상반기 가장 주목할 현상은 코로나19가 안정된다는 기대감에 소비심리가 급격하게 개선되고 있다는 점이다. 외부요인에 의해 억눌렸던 소비가 한꺼번에 분출되면서 물가상승압력이 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25일 발표한 '4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5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5.2로 4월보다 3p 높아졌다. CCSI가 100보다 높으면 장기평균(2003∼2019년)과 비교해 소비 심리가 낙관적이라는 뜻이다.
지난 1년간의 소비자물가에 대한 체감상승률을 뜻하는 '물가인식'과 향후 1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 값에 해당하는 '기대인플레이션율' 모두 2.2%로, 한 달 사이 나란히 0.1%포인트씩 상승했다. 2.2%의 기대인플레이션율은 2019년 5월(2.2%) 이후 2년 내 가장 높은 기록이다.
황희진 한은 통계조사팀장은 "예상보다 1분기 경제성장률이 높게 나온데다 수출 호조 지속, 코로나19 백신 접종, 고용지표 개선 등에 따른 경기회복 기대로 5월 소비자심리지수가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조경엽 박사는 "이는 소비 지표가 일시적으로 확 올랐다가 줄어드는 일시적인 보복 소비 수준을 넘어선 것"이라면서 "지속적으로 오르는 소비가 물가상승을 부추기지 않도록 정부의 세심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소비는 회복되는데 생산망 부족"…공급측 물가상승압력
소비심리는 회복되는데 생산망이 뒷받쳐주지 못하면서 또다른 물가상승압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국내외 자동차 기업들의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가 대표적이다. 일례로 올해 4월 현대차의 울산1공장이 차량용 반도체와 신형 전기자동차 아이오닉5에 사용되는 부품의 재고 부족 탓에 한시적 가동 중단에 들어가기도 했다.
차량용 반도체기업 한 관계자는 "코로나로 사회 전반이 비대면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암호화폐의 채굴, 인공지능을 위한 비디오카드 칩셋(GPU), 스마트폰의 AP 등 수요는 늘어나지만 자동차용 반도체 수요는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이란 예상이 업계 전반에 깔렸다"며 "업계는 자동차 수요가 이른 시간 내 회복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생산 라인의 가동을 멈추거나 생산량을 줄여 최소한의 가동만 이어왔다"고 재고 부족 이유를 설명했다.
국제정세 변수까지 겹쳤다. 차량용 반도체를 중점적으로 생산하던 중국 1위 반도체 기업인 SIMC가 미중 패권전쟁으로 인해 미국의 제재를 받아 사실상 빈사 상태에 빠지면서 자동차용 반도체 생산량 자체가 평소 대비 크게 줄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동차 수요가 예상보다 이른 시점에 회복을 시작하면서 반도체 공급량이 수요량을 쫓아가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국제유가 및 원자재 가격 상승 변수까지
산업 물가 전반에 영향을 주는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도 솟구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무리 코로나 상황이라지만 원유가격 상승은 일시적인 현상이고 조만간 배럴당 50달러대로 내려갈 예상했었다. 그러나 현재 WTI·브렌트유·두바이유 등 3대 유가 모두 60달러 중후반대에 머물러 있다. 하반기엔 80달러대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원유가격 상승은 '바이든 효과'가 가장 크다. 과거에는 유가가 오르면 미국 셰일가스 공급이 충분히 늘어나며 가격 하락 요인이 있었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관심이 큰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에 비해 셰일가스 증산에 훨씬 소극적이고 화석연료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결국 바이든이 임기 동안 석유 규제를 강화하면 개발비용이 더 들게 되고, 결국 생산이 줄어들어 유가를 더 끌어올리게 된다.
조상범 대한석유협회 커뮤니케이션팀장은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의 석유 규제 완화를 다시 오바마 때처럼 강화시키며 유가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며 "지금은 원유가 제품 가격을 끌어올리는 형국이고 나중에 코로나가 회복돼 수요가 확대되면 제품이 원유가격을 끌어올리는 모양새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도체 부족과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영향으로 기업들의 체감 경기 개선 추세도 주춤해졌다. 한국은행이 26일 발표한 '5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달 모든 산업을 반영한 업황 실적 BSI는 88로 4월과 같았다. 한국경제 발목을 잡을 변수다.
文정부, 4%대 성장 호언…경제 전문가 "글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올해 우리 경제가 4% 이상의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도록 정부 역량을 총동원하고 민간의 활력을 높이겠다"며 고무적인 성장률을 제시했다. 4월까지 수출 실적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고 설비투자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으며 소비와 경제 심리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호전되고 있는 점을 배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앞서 살펴봤듯이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동시다발적인 물가상승압력이 잔존해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보여주기식으로 성장률을 제시하는데 급급하기보다는 우리 경제가 코로나 이전 수준까지 회복되는 기점까지는 물가 안정 등 연착륙 방안을 각별히 수립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조경엽 박사는 "인플레이션이 심해지면 각국이 유동성 회수를 추진하면서 경기 위축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면서 "정부당국이 통화 정책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