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법조계에 부동산 투기 수사 결과 물어보니… "동의서나 구하러 다닌 경찰, 권력수사 태생적 약점"


입력 2021.06.04 13:39 수정 2021.06.04 14:08        안덕관 기자 (adk@dailian.co.kr)

2800명 수사하고도 고위공직자·국회의원 구속 '0명'…"전수조사 방식, 증거인멸 시간만 벌어줘"

"수사 초기 검찰 배제 가장 아쉬워…경찰 특수수사 경험 부족이 용두사미로 이끈 것"

"LH 관할하는 국토교통부도 합수본에?…투기의혹 있는 부처까지 경찰과 합동수사 한 셈"

김창룡 경찰청장이 2일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부동산 투기 조사 및 수사 중간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이 LH 부동산 투기 의혹 수사로 첫 시험대에 올랐지만, 전국을 뒤흔들며 요란하게 수사를 벌인 것과는 달리, 결과는 맹탕에 그쳤다는 법조계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법조 전문가들은 "경찰이 수사 초기부터 강제수사 착수에 늦는 등 대형 비리 사건에서의 경험 부족을 여실히 드러냈다"면서 특히, 투기의심자의 동의서를 받아 신도시 토지거래 내역 전수조사를 벌인 수사 방식이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합수본)는 부동산 투기의혹 사건 총 646건, 관련자 2796명을 내·수사해 이 가운데 20명을 구속하고 검찰에 529명을 송치했다고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내·수사 대상자에는 국회의원 13명, 고위공직자 8명 등 공직자 399명이 포함돼 있으며, 이번 수사의 시발점이 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경우 직원 77명이 수사를 받았다. 몰수 또는 추징 보전한 액수는 651억원이다.


하지만 국가수사본부를 중심으로 15개 시·도경찰청과 국세청·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전문인력 총 1560여명이 투입돼 84일간 전국적으로 수사한 결과치고는 초라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구속한 20명도 기획부동산 불법 중개인 등 일반인 7명, LH 포함 공공기관 종사자 3명, 지방자치단체 관계자 2명, 국가·지방공무원 5명 등이다. 국민들은 권력형 비리 의혹을 남김없이 파헤쳐줄 것을 국민들이 주문했지만 고위 공직자(3급이상)와 국회의원 등의 구속은 없었다.


실제로 고위 공직자나 국회의원에 대한 경찰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경찰은 투기의혹을 받는 이모 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에 대해 지난 4월 말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반려당한 뒤 한 달이 넘도록 후속 수사를 전개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원 5명 가운데 양향자·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무혐의 처분했고, 다른 의원 2명도 무혐의로 종결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남은 1명은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뿐인데, 지난달 강 의원을 압수수색한 뒤 이날까지 소환 등의 후속 조치는 없다.


법률사무소 해온의 장달영 변호사는 “행정부 소속이라는 경찰의 태생적인 약점을 고려하면 애당초 권력 수사 의지가 있었는지 조차 의문”이라며 “거기다 LH를 관할하는 국토교통부까지 합수본에 포함됐는데, 신도시 개발 정책을 입안한 게 국토부라는 점을 고려하면 투기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부처까지 경찰과 합동수사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3월 서울 중구의 한 건물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와 관련한 제보를 받는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특수본) 경찰 신고센터가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특히, 법조계에선 경찰의 수사 방식이 투기 의혹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적절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경찰은 이번에 투기의심자의 동의를 구한 뒤 거래내역을 확보하고 이를 토지대장과 비교하는 수준의 수사에 그쳤다. 이 때문에 증거인멸 시간만 벌어주면서 빠른 증거 확보가 필수적인 내부정보 이용 혐의 규명에는 사실상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대다수 내·수사자들은 줄줄이 무혐의 처분을 받거나 불기소 가능성이 높은 농지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넘겨졌는데, 이는 국민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한 권력자들의 사익 추구나 친인척을 통한 차명 거래 등의 비위가 이번 수사로 근절되기를 기대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다.


초기 수사에서 검찰이 배제된 것도 아쉽다는 반응이 나온다. 앞서 1·2기 신도시 투기 수사는 모두 검찰이 담당했다. 1기 신도시 투기의혹이 불거진 1990년 검찰은 수사 9개월 만에 부동산 투기 사범 8944명을 적발하고, 776명을 구속, 709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2기 신도시 조성 때도 부동산 투기 문제가 심각해지자 검찰은 2005년 ‘투기사범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공무원 27명의 투기 혐의를 포착한 바 있다. 이번 사건에서 경찰 수사가 미진해지자 검찰은 뒤늦게나마 투입됐으나 경찰의 기소의견 송치 사건을 처리하는 담당 창구 역할 정도만을 수행했다. 다만 대검은 경찰 수사와는 별도로 지난 5년간 처리했던 부동산 투기 사범 사건을 재검토해 부동산 투기사범 14명을 구속하고 257억원을 보전 조치했다.


법률사무소 더민주의 서정욱 변호사는 “경찰의 특수수사 경험 부족이 수사를 용두사미로 이끈 것”이라며 “투기의혹의 가장 큰 핵심은 자금흐름 추적이고 압수수색인데, 면죄부 수사도 아니고 동의서 구한다고 모두 흐지부지됐다”고 비판했다.


검찰 출신 임무영 변호사는 “이런 대형 비리 수사에서는 어떤 식으로 공모 관계를 찾아 증거를 확보하고 윗선을 잡아낼 것인가가 중요하다”면서 “초기에 검찰이 배제돼 수사 노하우가 경찰에 전수되지 않은 것이 가장 컸다고 본다”고 말했다.

안덕관 기자 (ad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안덕관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