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은 역시 짜릿하다. 모델 출신답게 큰 키에 잘생긴 얼굴, 뛰어난 패션 소화력에 누구보다 욕심 많은 연기 열정을 바탕으로 폼 나는 캐릭터에 정극 연기만 고집했다면 이런 즐거움은 없었다. 코믹연기의 지존으로 자리 잡은 배우 차승원 얘기다.
차승원은 영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나 ‘시크릿’ ‘낙원의 밤’에서처럼 말쑥할 때도 물론 멋있지만, 같은 양복을 입어도 ‘독전’에서처럼 단발머리를 곁들였을 때 더 돋보인다. 희극적 요소 정도가 아니라 아예 희극연기를 할 때 차승원의 연기력 맛이 오롯이 살아오는 것도 사실이다.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 ‘광복절 특사’ ‘선생 김봉두’ ‘이장과 군수’에서 큰 웃음을 줬었고, 최근 ‘힘을 내요 미스터 리’에서는 행복한 웃음과 연기력을 동시에 발산했다. 코미디 센스와 재치가 넘치는 그이기에 장르가 다른 예능에서도 ‘삼시세끼’를 시즌5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11일 개봉을 앞둔 ‘싱크홀’(감독 김지훈, 제작 ㈜더타워픽쳐스, 배급 ㈜쇼박스), 차승원은 이제 뭘 입고 뭘 해도 웃음이 난다, 첫 등장부터 웃음이 난다. 그가 우스운 사람이 돼서도 아니고 개그맨이 돼서도 아니다.
이미 캐릭터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쓰고 생계형 열혈 아버지 정만수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85만원을 내는 집에 살며 나는 못 입고 못 먹어도 아들은 번듯하게 키우려 사진관 운영에 헬스클럽 바디매니저에 대리기사까지 뛰는 ‘쓰리 잡’(세 가지 일) 인생을 살면서도 웃음을 잃기는커녕 여유와 패기로 웃음을 주는 인물이다.
재난 드라마와 코미디를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하는 김지훈 감독의 자신만만 연출이 가능했던 것도 차승원이 있어서다. 차승원은 영화 ‘싱크홀’이 우리 집이 싱크홀에 빠져 버린 비극적 상황을 유쾌하게 풀어낸 코미디임을 잊지 않게 하는 축이다.
부부를 연기한 김성균이나 권소현, 최고령 정영숙에서 최연소 남다름까지 정극 연기를 하고 이광수와 김혜준이 때에 따라 정극과 코미디를 편히 오갈 수 있는 것은 차승원이 묵직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어서다.
시소로 상상해 보면 한쪽 편에 차승원이 앉아 있고, 다른 편에 나머지가 배우가 대칭을 이루고, 가운데 부분에 김혜준과 이광수가 손잡고 서 있는 모습이다. ‘싱크홀’을 보노라면 저절로 ‘와, 차승원 배우 진짜 코미디 연기 달인이네’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시종일관 웃음을 줄 것 같던 차승원이 감동을 자아내는 순간이 있다. 정만수가 지하 500m 깊이 싱크홀도 모자라 늪에 빠졌을 때다. 아들 승태(남다름 분)마저 아버지를 구하겠다고 뛰어든다. 아, 이거 굳이 신파가 필요한가, 우려의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광수와 김혜준의 시간이 멈춘 듯한 ‘사랑이 꽃피는 순간’은 오글거릴수록 뮤직비디오 같을수록 웃음소리가 커졌지만 짧게 끝내기도 힘든 ‘늪 신’, 이건 좀 위험한 시도 아닌가 걱정했다.
성급했다. 차승원은 늪에 빠져 얼굴만, 아니 얼굴의 3분의 1만 보이면서도 웃음을 줬다. 아들의 얼굴을 받쳐 올린 두 손만으로도 웃음을 줬다. 그런데 그냥 웃음이 아니다. 이거 뭐지, 눈가가 뜨거워지는데 입은 웃고 있다. 차승원이 보는 이를 미치게 한다, 울다가 웃기는 것을 넘어 울며 웃게 한다. 나는 죽어도 자식은 살려야 한다는 정만수 삶의 철학이 응축된 장면이자, 마음만 그리 먹고 사는 게 아니고 정말로 승태를 위해 목숨 버릴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장면인데. 배우 차승원은 온몸이 다 잠겨 그 조금밖에 남지 않은 얼굴로 표정을 짓고 목소리를 보태 두 손에 힘을 줘서 비극과 희극이 공존하는 순간을 만든다.
더 자세히 말하고 싶지만 생생한 관람을 권한다. 마치 올림픽 장면 같다. 손에 땀을 쥐다가 금메달을 땄을 때 눈물도 솟고 환희도 터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짝짝짝’ 기쁨의 박수를 치는 결정적 장면이다. 배우 차승원이 잘했고, 남다름이 앞에서 감정을 받쳤고, 김지훈 감독이 영화 ‘7광구’ < ‘타워’ < ‘싱크홀’로 점점 상승하는 연출력으로 잘 빚었다.
예능 ‘런닝맨’ 하차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이광수의 열연, 드라마 ‘킹덤’의 연기력 논란은 새까맣게 잊게 하는 김혜준의 매력 넘치는 호연, 영화 ‘마돈나’ 이후 오랜만의 만남이 반가운 역시나 연기 잘하는 권소현의 실감 연기, 그리고 정극 연기로 웃음 줄줄 아는 연기파 김성균이 결국 주르륵 흘리게 하는 뜨거운 눈물까지 ‘싱크홀’을 놓쳐서는 안 될 이유는 많다.
늪에 빠져도 코믹을 잊지 않는 차승원의 명연, 그런 형을 선하고 순한 마음으로 따르며 촬영 때마다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마무리하며 팀워크를 다진 후배들과의 하모니가 빛나는 영화 ‘싱크홀’의 매력에 깊숙이 빠져 무더위를 날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