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관 의원을 처음 만난 것은 2014년 7.30 재보선 때다.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아 김포시에 출마했던 그를 마침 기회가 닿아 하루 내내 밀착 취재를 할 수 있었다.
30~40대 인구 유입이 급격하게 늘고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김포는 보수 강세인 지역이었다. 더구나 선거일을 불과 3주 앞두고 지역에 온 김 의원은 지역민들에겐 ‘400km를 날아온 철새’나 마찬가지였다.
예상대로 민심은 곱지 않았다. 사회인 야구팀이 연습 중인 한 야구장을 찾았을 때였다. 기자를 선거보조원으로 착각한 한 시민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뭐 하러 여기까지 왔나. 빨리 데리고 가라. 방해된다.” 시민체육관에서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마지못해 악수를 해주는 시민 조차 드물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시민들 반응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라고 돌려서 물었는데, 김 의원의 답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경남이나 고향에서는 아예 대놓고 욕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그래도 여기는 얼굴 마주해서는 웃어 주시잖아요? 허허허”라고 웃어넘겼다. 어려운 전쟁만 치러본 백전노장의 여유와 애잔함이 동시에 느껴졌던 것 같다.
재보선에선 졌지만, 김포에 남은 그는 20대 총선 김포시갑에서 당선되며 재기에 성공했다. 운도 따랐다. 김포시가 도심지역인 갑구와 농촌지역인 을구로 분구되며, 갑구에서는 민주당에 유리한 환경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아마도 김 의원의 처음이자 마지막 ‘꽃길’이 아니었나 싶다. 21대 총선에서는 지역구를 사실상 빼앗기고, 경남 양산으로 내려갔다. 김해와 함께 경남에서는 민주당에 비교적 호의적인 지역이지만 험지는 험지다.
누구보다 내구력 강한 정치인이지만,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의 ‘찬밥’ 신세는 그도 참기 힘든 모양이다. 얼마 전 민주당 대선 경선 TV 토론회에서 김 의원은 당원과 지지층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 곳에서 박박 기어 여기까지 왔다. 경남 남해 제 고향에서는 빨갱이 소리를 들어가면서 김대중 후보의 벽보를 지켰다. 험지 영남에서 노무현 정부 출범에 몸을 던졌다. 그런데 제가 꼴찌다. 이보다 더 야속한 일이 어디 있나. 영남의 동지들은 제 마음과 똑같을 것이다. 정말 야속하다.”
물론 김 의원의 과거 행적에 상처를 받은 당원 지지층도 많다. 본인의 대선 출마를 위해 당의 소중한 정치적 자산이던 경남도지사를 내던졌고, 경쟁 상대였던 문재인 후보를 매몰차게 공격했었다.
그럼에도 지역갈등 해소와 외연 확장에 있어서 민주당에 대한 그의 기여는 가볍지 않다. 적어도 말로만 ‘노무현 정신’을 외치며 그 유산만 상속만 받으려는 정치인들보다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 의원은 과거 남해신문이라는 언론도 운영했었다. 당시를 기억하는 한 관계자에 따르면, 김 의원은 주말만 되면 마산역으로 나가 남해신문을 직접 팔았다고 한다. 소규모 군 단위의 신문사도 판매 수익을 통한 운영이 가능함을 입증하고, 또한 그것이 풀뿌리 민주주의의 시작이 될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그는 “다른 건 몰라도 김 의원의 진정성은 만큼은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