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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배우발견③] 신선한 놈들이 온다 ‘습도 다소 높음’


입력 2021.08.21 11:21 수정 2021.08.21 11:21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영화 '습도 다소 높음' 포스터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개인적으로 ‘고봉수와 어벤져스’라 부르는 감독과 배우들이 있다. 적은 돈과 인력으로, 영화를 향한 열정과 아이디어로 똘똘 뭉쳐 ‘이것이 영화다’ ‘우리가 배우다’를 꾸준히 외쳐온 그들이다.


감독 고봉수, 배우 백승환·신민재·김충길·이웅빈과 윤지혜. 그들이 함께한 영화를 보노라면 ‘놀 줄 아는 영화패’ ‘신선한 영화창작집단’이라는 생각에, 기성 영화가 주지 못하는 종류의 재미와 감동을 주기에 경탄의 박수가 절로 나온다.


영화 '사면조가' 스틸컷 ⓒ이하 ㈜씨엠닉스 제공

일명 ‘고봉수 사단’이 전하는 새로운 재미. 그렇다. 단편영화 ‘사면조가’ ‘홀리테러’ ‘G4(쥐포)’ ‘사망언’을 모은 영화 ‘고봉수 감독 단편선’만 봐도 기가 막히다.


잠에서 깨어보니 담벼락 철창에 머리가 끼어있는 남자와 그를 구해줄 생각은 있는 건지 돈을 뜯고 때리고 의미 없는 친절만 과시하는 행인들의 투 샷이 빛나는 ‘사면조가’. 자신의 오빠를 죽여달라는 애인을 위해 킬러를 고용해 오빠를 찾아간 사내 이야기인데 조선족 오빠와 킬러가 더 눈길을 끄는 ‘홀리테러’.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 남자의 아침을 배경으로 역설적 의미의 Good house, Good friend, Good people, Good food(좋은 집, 좋은 친구, 좋은 사람들, 좋은 음식)를 담은 4개의 에피소드가 진짜 좋은 4가지가 되어가는 반전을 고스란히 담은 ‘G4’이자 쥐포. 자신의 재능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일이 풀리지 않는 무명 배우가 오디션을 본 뒤 근처 찻집에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를 이어가며 신세 한탄도 하고 자존감 충전도 하던 중 맞이하게 되는 극적 상황을 그린 ‘사망언’.


흔한 일상의 공간에서 보통의 사람들을 통해 생경한 상황을 뽑아내고 신선한 웃음을 주는 고봉수 감독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적은 제작비로 촬영의 용이성을 위해 찾아갔을 철거촌과 변두리 동네는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정겨움을 불러일으키는 1970~80년대 풍경이 되고, 미래에는 보기 힘들 ‘곧 없어질 우리의 현재’를 영화로나마 저장해 놓는 순기능을 발휘한다.


번뜩이는 고봉수 감독의 생각들을 영화로 재현해 주는 배우들도 대단하다. 종종 독립영화나 저예산영화를 보노라면 배우들의 연기 구멍이 몰입을 방해하고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데 백승환을 위시해 고봉수 사단의 배우들은 마치 실제 인물인 듯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날 것’으로 담는다. 자연스럽기만 한 게 아니라 매력도 철철 넘친다.


배우 백승환 ⓒ

먼저 백승환 배우를 보면 ‘사면조가’에서 돈을 뜯으려는 사내, ‘홀리테러’의 킬러, ‘G4’에서 사내의 극단적 선택을 극단적 방법으로 막는 ‘좋은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인 동네 양아치1를 연기했는데. 뻔뻔하면서 폭력적이고 과격하면서 인간적인 모습을 자유자재로 연기한다. 특히 ‘사망언’에서 혼자 영화를 끌어감에도 지루할 틈 없이 관객의 눈과 호흡을 제 것으로 만든다.


배우 이웅빈 ⓒ

배우 이웅빈은 언어 연기에 탁월하다. ‘사면조가’에서는 얄미울 만큼 친절을 가장한 교포 영어로 큰 웃음을 주더니, ‘홀리테러’에서는 옌볜 말투의 한국어를 실감 나게 연기하며 아까 그 미국인임을 잊게 한다. ‘G4’에서는 백승환 옆에서 대사 한마디 하지 않는 것으로 또 다른 언어, 묵언을 연기한다.


배우 신민재 ⓒ

배우 신민재는 커다란 덩치에서 나오는 중량감과 에너지로 캐릭터를 장악한다. ‘사면조가’에서는 목 낀 남자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아침부터 취한 남자로 나오는데 저 손에 뺨 한 대 맞으면 기절할 것 같은 파워를 발산하고, ‘사망언’에서는 전화기 너머 동네 형으로 등장 무명 배우를 들었다 놨다 한다. 특히 ‘G4’에서 극단적 선택을 결심한 ‘차 안의 남자’를 연기했는데 경제적 어려움 속에 연애도 결혼도 아기도 포기한 ‘삼포세대’의 비애를 네 가지 좋은 것 G4와 구워 먹는 쥐포를 통해 절절하게 연기했다. 언뜻 보면 험악해 보이지만 귀여움을 지닌 게 또 하나의 매력이다.


배우 김충길 ⓒ

김충길은 ‘사면조가’에서 창살에 목이 낀 남자를 연기한 배우다. 얼굴 하나, 팔 한쪽으로 연기하면서도 백승환, 신민재, 이웅빈의 활력을 다 받아낸다. ‘사망언’에서와 마찬가지로 ‘G4’에서도 친구를 연기했는데. 밤새 게임 하다 친구 전화에 억지로 집골목으로 끌려 나와 신민재와 티티카카를 펼치는데, 애드리브로 한 연기가 어찌나 웃겼는지 고봉수 감독은 웃음을 참지 못해 NG를 연발하다 못해 카메라를 골목에 세워두고 웃음소리를 감출 수 있는 곳으로 피신을 했을 정도다.


영화 '델타 보이즈' 포스터 ⓒ인디스토리 제공

이 어벤져스 군단이 모여 상금 500만원이 걸린 남성 4중창 선발대회에 참가하려는, 지질해서 더 순수한 사내들의 이야기를 담아 ‘델타 보이즈’를 세상에 내놨는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무명 배우의 설움이 노래에 대한 미련과 주목받는 삶에 대한 희망으로 치환된, 사실은 슬픈 이야기지만 우리는 키들키들 보게 되는 ‘코미디’ 역작으로 완성됐다.


고봉수 감독의 천재성은 여전하고, 베우 백승환은 레게 머리를 하고 4중창단 ‘델타 보이즈’의 리더가 되어 애쓰고, 이웅빈은 ‘사면조가’ 때처럼 미국 시카고에서 온 음악 좀 아는 교포로 분해 멤버들에게 노래와 안무를 가르치고, 신민재는 가수가 되고 싶은 꿈을 좀처럼 포기하지 못하는 생선가게 점원으로 등장하고, 김충길은 소년원 시절부터 자신을 보살펴 준 형(신민재 분)이 고마워 어떻게든 도우려 하지만 ‘먹고 사는 일’을 앞세우는 무서운 아내(윤지혜 분)에게 꽉 잡혀 사는 남자를 연기했다.


삶이 버겁고 무엇에라도 웃고 싶은 날 꺼내 보면 딱 좋은 ‘델타 보이즈’ 이후에도 고봉수와 어벤져스는 문제작을 계속 내놨다. 드라마 전국체전에서의 1승을 목표로 땀을 흘리는 시골 청년들의 땀을 담은 ‘라켓소년단’의 상황을 한참 먼저 세팅한 ‘튼튼이의 모험’을 비롯해. 신민재배우가 짝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키다리 아저씨에 ‘츤데레’를 자청하는 영화 ‘다영씨’, 국악을 하는 18세 연하 연인을 사랑하는 43세 영화감독의 좌충우돌 연애 실패담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린 ‘갈까부다’.


전주영화제에 초청받은 김에, 물심양면 지원받아온 고마운 마음을 담아 영화제를 배경으로 겨우 2박 3일 만에, 배우가 되고 싶은 여자친구를 위해 자신이 스태프로 일하는 감독에게 추천한 남자와 고봉수 감독에게 경쟁심을 느끼는 못난이면서도 배우와 스태프에게 갑질하는 감독의 이야기를 완성한 ‘심장의 모양’. 산골 마을을 지배하는 악당을 몰아낸 고수가 다시 독재가가 되는 아이러니와 이를 타개할 의인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 ‘우리마을’ 등. 무엇을 보든 ‘새로움’을 보장받는 역작들을 꾸준히도 만들어 왔다.


영화 '습도 다소 높음' 스틸컷. 오른쪽부터 배우 윤지혜, 이희준, 고주환, 바티나 모슬리 ⓒ이하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초반에 언급한 윤지혜 배우는 고봉수 사단의 ‘블랙 위도우’ 격 배우다. 큰 키에 목청도 좋고, 타격감 있는 액션도 좋은 배우인데 얼굴이 가수 아이비를 연상시키는 미모인 게 반전이다(^^). 최근에는 개인적으로 팬인 이웅빈 배우는 보이지 않고, 한국인인지 헛갈리는 수려한 외모에 차진 연기력을 자랑하는 고주환 배우가 자주 보인다.


바로 그렇게 고주환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백승환, 김충길, 신민재, 고주환, 윤지혜 배우가 함께한 신작이 9월 1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심지어 연기파 배우 이희준이 단발에 아방가르드풍 재킷을 입은 독립영화계의 스타 감독 이희준으로 등장하고, 전찬일 평론가가 공짜 좋아하는 전찬일 평론가로 출연해 맛깔난 연기로 힘을 보탰다. 영화 ‘습도 다소 높음’ (감독 고봉수, 제작 백지수표㈜·㈜곰픽쳐스, 배급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얘기다.


영화 '습도 다소 높음' 스틸컷 ⓒ

이희준 감독의 영화 ‘젊은 그대’에 출연했지만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조연 배우 승환은 백승환이 연기했는데,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소개팅 한 미녀를 데리고 관객과의 간담회가 있는 시사회가 열리는 극장을 찾는다. 시골의 삼촌들도 초대했고, 삼촌들은 직접 키운 홍삼이며 인삼주며 로열제리를 바리바리 싸 들고 왔다.


승환은 소개팅을 위해 빨간 양복에 갈색 조끼, 노란 셔츠에 초록 넥타이까지 매고 멋을 냈지만, 이희준 감독의 차기작에서 복서 역할을 할 예정이라 머리는 어깨까지 길러 파마를 한 상태라 아이러니하다. 삼촌들은 조카보다 마음이 앞서고 감독을 대하는 태도에 패기가 넘친다.


영화 '습도 다소 높음' 스틸컷 ⓒ

헤쳐 나가야 할 난관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우선 ‘젊은 그대’ 시사회가 열리는 극장에서는 에어컨이 나오지 않고 파는 것이라곤 소금맛 팝콘과 파인애플맛 환타뿐이고 화장실엔 휴지도 없다. 직원이라고는 김충길이 연기한 찰스뿐인데 자린고비 사장(신민재 분)의 아바타가 된 듯 엄격한 준칙을 강조하며 깐깐하게 군다.


과연 승환은 첫눈에 반한 여인의 마음도 얻고, 마을에 플래카드까지 걸며 읍내 시사회를 계획 중인 문중 어른들의 마음도 만족시키고, 이희준 감독의 차기작에도 출연할 수 있을까. 영화 ‘분노의 주먹’을 오마주 한 장면도 만날 수 있는 영화 ‘습도 다소 높음’. 개봉 전에 고봉수와 어벤져스의 전작들을 예습하고 본다면, 더욱 더 키들키들 신이 날 수 있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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