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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결정적 장면③] 깨진 도자기, 금 간 사랑(연애 다큐)


입력 2021.08.23 13:34 수정 2021.08.23 10:41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가끔 누군가 나를 기록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이하 사진 출처=네이버 영화정보

처음엔 서로의 다름을 감춘다. 코드 잘 맞는 혹은 잘 맞다고 생각하기로 한 두 사람이 연애를 시작한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자꾸만 생각나고 왜인지 몰라도 괜히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 얘기다.


연애는 서로의 다름을 설득해 나가는 과정이다. 다름을 감추던 두 사람이 자신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한다.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아껴 주기를 바란다. 거기서 멈추면 싸울 일도 없겠지만, 그럴 수 있다면 연애가 아닐 것이다. 이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걸 원하는 것을 알았으면 내 쪽으로 걸어와 주길, 달라지길, 변해 주길 바란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양보해 한쪽이 다른 쪽으로 또는 서로 움직여 만남의 지점을 만든다. 누군가는 상대 쪽으로 더 움직이기도 하고, 부딪히는 개별 측면에 따라 하나는 내가 다른 하나는 상대가 더 크게 움직이기도 하지만 결국 총합은 있어서 누군가 더 양보한 사람이 있다. 흔히 ‘맞춰 준다’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는 꽤나 에너지를 소모하고 신경을 날카롭게 하는 일이라 끝낼 게 아니라면, 여전히 만나면 좋고 헤어지는 게 두려운 두 사람은 줄다리기를 멈추고 싶어 한다. 설사 내가 좀 더 양보한 것쯤은 개의치 않는다. 서로의 딱 중간 지점에서 만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인간의 특성도 연애의 속성이기도 어렵다. 탐색전과 신경전이 끝나고 드디어 평화가 온다.


배우 지망생 하나(왼쪽)와 감독 지망생 교환이의 연애 이야기 ⓒ

이대로 영원히 평화일 수 없는 게 또 연애다. 내용 증명을 받은 건 아니지만 분명 마음의 합의를 봤던 부분도 어느 순간 ‘참을 수 없는’ 차이로 되살아 온다. 각자의 심리적 상태도 경제적 상황도 사회적 배경도 간섭쟁이로 나서고 불에 붓는 기름 역할을 한다.


연애의 지속성은 위기관리 능력에 비례한다. 순간순간, 또 태풍처럼 갑작스러운 동시에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차이 확인’의 위기들을 넘길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연애의 계속과 결별로 갈린다. 위기관리 능력은 서로의 인성과 현명함도 크게 영향을 미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사랑 적금’ 통장에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고 행복했던 경험들이 얼마나 많이 쌓여 있는가다.


위기 때마다 적금에서 사랑을 일부 인출하기도 하고 아예 적금을 깨기도 하며 관계를 지속하려 노력한다면 그래도 행복한 경우다. 때로는 통장에 사랑 잔액이 있음에도 이별을 맞이하는 연인들도 있다.


여기 적금을 몇 번쯤 깨고 다시 통장을 만들면서도 놀라운 위기관리 능력으로 연인 관계를 지속해 온 두 사람이 있다. 구교환과 이하나. 스물아홉 살 동갑내기로 영화를 사랑하고 자유분방한 예술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구교환은 감독 지망생이고 이하나는 배우 지망생이라는 건 작은 차이다.


"떠날 사람은 준비하는 게 보여". 영현 선배의 말을 빌려 교환이 하나에게 한 말 ⓒ

영화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고 영화가 시작되면 영화밖에 모르는 구교환, 영화뿐 아니라 미술과 음악과 연극과 모든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영화를 찍는 순간에도 두 사람의 관계가 소중한 이하나, 이쯤에선 두 사람의 차이가 극명해진다. 결별 후 진행되는 촬영이기에 더욱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났는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이 ‘왜 헤어졌는가’는 따질 것도 없이 서로 너무 달라서다. 다른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연애를 지속했던 두 사람은 결별을 맞는다. 그럼 왜 헤어진 ‘전 연인’끼리 영화를 찍게 된 걸까. 그렇게도 되지 않던 공모전, 하필 이미 헤어졌는데 <셀프 연애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명: 러브(LOVE)’>에 대한 EBS의 500만 원 지원이 결정돼서다.


연인인 두 사람의 이야기를 셀프 연애 다큐멘터리로 찍어보겠다는 제안서가 1차 서류심사를 통과하고, 함께 2차 프리젠테이션까지 마친 상황에서 이별했던 거다. 큰돈을 토해내기는 아깝고, 무엇보다 교환은 이 영화로 ‘감독 데뷔’를 해야 하는 상황. 가장 큰 난관은 하나다. 영화를 위해 무엇이든 하는 교환이 아니잖은가. 하나는 그 돈이 탐나지도 않지만, 아깝다 하더라도 헤어진 연인과 영화를 찍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다.


행운의 여신이 교환에게 미소 짓는다. 하필 교환이 “50만 원으로 중고 카메라 사고, 50만 원을 진행비로 쓰고 200만 원씩 나눈 뒤, 촬영이 끝난 뒤 카메라를 50만 원에 팔아 다시 25만 원씩 나누자”는 전화를 했을 때 하나는 갤러리에서 300만 원짜리 도자기를 깬 참이었다. 하나가 300만 원을 갖는 불평등 나눔을 조건으로, 촬영이 시작된 것이다.


배우 구교환 ⓒ

마치 아는 사람 얘기처럼 썼지만, 영화 ‘연애 다큐’(감독 구교환·이옥섭) 이야기다. 재미있는 건 영화 ‘연애 다큐’도, 영화 속 영화 ‘프로젝트명: 러브(LOVE)’도 페이크 다큐멘터리(이하 다큐)라는 사실이다. 교환(구교환 분)과 하나(임성미 분)는 헤어졌지만 셀프 연애 다큐를 찍어야 하니 연인 행세를 하며, “연기라 생각하고 하면 되는 거야”라는 교환의 말처럼 연기로 다큐를 찍으니 ‘프로젝트명: 러브(LOVE)’는 페이크 다큐이고. 영화 ‘연애 다큐’가 마치 감독 지망생 구교환과 배우 지망생 이하나 지리멸렬 연애사를 다큐로 보여주는 형식을 취했지만, 다큐 형식의 극영화이니 페이크 다큐다. 실제 연인이 공동 연출로 나섰고, 극중에서는 교환과 하나가 연인이니 영화가 페이크 다큐인 건 자명하다.


영화를 리뷰 하는 글은 영화를 닮기 마련이어서 영화라는 언급 없이 사설을 풀었다. 그리고 이제야 문패를 책임질 영화 ‘연애 다큐’의 결정적 장면을 얘기하자면. 하나는 깨진 도자기를 교환에게 보낸다. 연인인 척 다큐를 촬영한 뒤, 정확히는 더 이상 가짜 연인 다큐는 찍을 수 없었던지 막바지 촬영에 나타나지 않은 뒤에.


맞다, 갤러리에서 깼던 그 도자기, 300만 원 물어 준 그 도자기다. 교환은 본드로 열심히, 부단히 붙인다. 그리고 다시 이어 붙인 도자기를 들고 교환은 하나를 만난다.


이어 붙인 도자기는 무슨 의미일까. 애정과 신뢰에 금이 간 두 사람의 사랑도 재활 가능하다는 뜻일까. 라고 생각하는 찰나, 교환이 도자기를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두 사람은 호쾌하게 웃는다. 와 앗!! 유레카다. 함께 깔깔 웃는다.


그래, 맞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떠난 버스 잡아 세워 내가 타든 상대를 내리게 하든 두 사람의 ‘사랑의 원형’은 반복된다는 것. 다만 그것을 이번엔 더 잘 참아낼지 참을 수 없을지의 차이일 뿐, 서로의 마음을 온전히 충족시키는 해결은 없다는 것. 그래, 맞다. 이미 금 간 사랑, 아니 이미 깨진 사랑 깨진 채로 두는 것도 좋은 대응책이다.


배우 임성미 ⓒ

사실 교환과 하나, 누가 맞고 누가 틀리다고 할 수 없지만, 많이 다르다. “내가 어쩌다 문화예술 오타쿠를 만나서”라고 불만을 터뜨리며 결코 “교양 PD는 할 수 없다”고 선배 누나에게 하나와의 차이점을 드러내는 교환과 달리. 하나는 말을 뱉기보다는 안으로 삼키고, 해결할 수 없는 위기를 직감하면서도 마지막까지 “우리 다시 만날래?”라고 여지를 두는 사람이다.


교환에게는 곪은 상처를 터뜨리고 도려내는 게 답일 수 있고, 하나의 헤아리기 어려운 묵언과 재회의 제안이 어리둥절함과 ‘그건 아니다’라는 역심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나에게는 자존심을 잠시 밀어두고 회복할 만한 가치가 남아 있다 싶은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게 답일 수 있고, 가짜 연인 촬영이 끝난 뒤 ‘우리의 일정’을 묻는데 내일의 촬영 일정을 얘기하는 교환이 야속할 수 있다.


이미 익숙해진 사람과 어떻게든 깨진 도자기 조각을 맞춰 가는 게 사랑인지, 깨진 건 과감히 버리고 다가올지 모르는 운명의 상대를 기다리는 게 사랑인지, 사실 모르겠다. 다만 ‘연애 다큐’가 깨진 도자기로 보여준 금 간 사랑의 결말은 속을 뻥 뚫게 하는 호쾌함이 있다. 얼음물 양동이가 얼마나 차가울지 짐작해 놓고도 막상 뒤집어썼을 때 쩌릿 정신이 번쩍 들 듯, 그렇게 본질에 확 다가서게 하는 일갈이 있다.


또 그 장면, 내 연애를 돌아보는 미덕이 아니더라도 너무나 사랑스러운 세 명의 배우를 보는 것만으로도 ‘연애 다큐’ 관람은 행복하다. 영화 ‘반도’의 서 대위 역에 이어 ‘모가디슈’ 태준기 참사관 역을 통해 강렬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배우 구교환의 넉살과 유연함을 확인할 수 있고, 입는 옷에 따라 헤어 스타일에 따라 선글라스 하나 쓰고 벗는 것에 따라 다채로운 이미지가 펼쳐지는 배우 임성미의 진득한 연기가 좋고, 더 많은 영화에서 만나고 싶은 출중한 개성을 갖춘 배우 박현영(교환과 하나의 선배 현영 역)을 만나는 것도 즐겁다.


가끔 누군가 나를 기록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

“가끔 누군가 나를 기록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로 시작해 “가끔 누군가 나를 기록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로 끝나는 영화 ‘연애 다큐’. 당신을 기록해 줄 누군가가 곁에 있는지 궁금하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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