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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뒤 사람들①] ‘표준근로계약서’가 바꾼 영화 현장


입력 2021.11.02 13:49 수정 2021.11.02 13:49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2005년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의 출범 이후 꾸준한 노력

“세팅 시간까지 고려…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는 분위기 정착”

“(영화 ‘기생충’의) 정교함이 빛난 것은 밥때를 너무나 잘 지켰다는 거다. 식사시간, 이런 정확한 시간들을 지켜서 굉장히 행복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영화 '기생충' 스틸

배우 송강호가 봉준호 감독의 디테일을 극찬하는 과정에서 농담처럼 덧붙인 이 말이 당시 새삼 화제가 됐었다. 지난 2019년 한국 영화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은 당시 “표준계약서를 준수했다”며 또 한 차례 주목을 받았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는 업계에서 ‘미담’으로 받아들여졌다.


봉 감독은 “‘기생충’만이 유별난 건 아니고 2~3년 전부터 영화 스태프의 급여 등은 정상적으로 정리돼왔고, 영화인들 모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민망해했지만, 이는 정해진 근로 시간과 식사 시간을 준수하고 그에 맞는 적당한 대가를 받는 것이 새삼 화제 될 만큼 영화계가 열악한 노동 환경의 대명사처럼 인식이 되고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지금은 현장에서 일하는 스태프들 모두 “전보다 환경이 나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2014년부터 영화계 표준근로계약서가 시행되기 시작해 이제는 상업 영화 대부분 이를 적용 중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까지만 해도 영화 스태프의 영화 편당 평균임금은 852만 원, 평균연봉은 1020만 원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열정 페이와 밤샘 촬영이 당연하게 이어지던 현장은 이제 ‘옛일’이 됐다고 말했다.


변화의 시작은 2005년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의 출범이었다. 이들은 꾸준하게 스태프 처우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냈고, 2012년 4월 영화제작가협회와 CJ ENM, CJ CGV. 영화진흥위원회와 함께 ‘한국영화산업 노사정 이행협약’을 체결하며 표준근로계약 사용 권고를 끌어냈다.


표준근로계약은 스태프들의 임금 및 지급 방법, 근로 시간과 4대 보험, 시간 외 수당 등에 관해 노사가 약정한 사항을 담은 계약서를 말한다. 영화 스태프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 문제는 제작사가 스태프를 근로계약이 아닌 도급계약 형태로 고용하는 관행에서 비롯됐고, 이에 영화계가 4대 보험, 시간 외 수당, 계약 기간 명시 등의 내용을 담은 표준근로계약서를 도입한 것이다. 당시 협약에는 1일 근로시간 12시간 원칙, 다음 회차 촬영 때까지 10시간 이상 휴식 보장 등도 포함되며 스태프들의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망이 구축되기 시작했다.


2013년에는 노사정 이행협약에 참여하는 단체들의 숫자가 늘어났다. 1차 협약부터 함께한 CGV를 포함, 롯데엔터테인먼트, NEW, 쇼박스까지 국내 4대 배급사가 모두 참여했다. 표준근로계약서 사용을 기본으로, 4대 보험 적용과 표준임금 가이드라인 공시, 임금 체불 중인 제작사의 투자·배급·상영 금지 등의 조항이 포함되면서 현장 환경도 본격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2014년부터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작품들이 개봉을 하기 시작했다. 그해 2월에 개봉한 영화 ‘관능의 법칙’이 모든 스태프들과 표준근로계약서를 맺은 첫 영화가 됐으며, 같은 해 개봉한 ‘국제시장’도 표준근로계약서를 적용했었다.


현재는 상업 영화를 제작하는 제작사 대부분이 스태프들과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549명의 스태프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0년 영화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근로계약 체결 시 표준근로계약서로 계약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83.9%로, 2019년 76.4%보다 7.5%p 증가했다.


수년째 영화 현장에서 촬영팀으로 일하고 있는 한 스태프는 “지난 2015년 계약을 맺을 때도 이미 표준근로계약서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루 12시간까지 촬영을 하고, 협의가 되면 추가 수당을 받고 주 60시간 정도까진 찍기도 한다. 매년 찍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 지금은 영화 현장에서 주 52시간 촬영이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스태프도 “촬영, 조명 팀의 경우엔 다른 팀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을 한다. 그럴 경우 세팅 시간을 근로 시간으로 포함시킬지, 아니면 별도로 계약을 맺을지도 논의를 하고 있다. 영화 현장은 확실히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는 분위기가 정착이 돼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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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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