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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이슈] 세상은 변하는데…퇴보하는 방송가 ‘동물권’ 보호 인식


입력 2022.01.22 08:17 수정 2022.01.22 08:18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태종 이방원' 동물학대 논란...낙마 촬영 동원된 말 사망

동물보호단체들 제작진 고발, 시청자들은 드라마 폐지 요구

KBS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 촬영장에 동원된 말이 낙마 장면 촬영 중 강제로 고꾸라지고,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동물학대 논란이 일고 있다. 사회적으로 동물권 보호 인식이 강조되고, 확대되어 가는 현 상황에서 오히려 방송가의 동물권 인식은 퇴보하는 꼴이다.


ⓒ연합뉴스

이번 ‘태종 이방원’ 동물학대 논란은, 지난 17일 KBS 시청자권익센터에 올라온 청원 글이 발단이 됐다. 이후 동물자유연대가 SNS에 당시 촬영 장면을 공개하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영상에는 와이어에 다리가 묶인 말이 심하게 꼬꾸라지는 모습이 담겼다. 이후 KBS 시청자권인센터에는 해당 프로그램 폐지를 주장하는 글이 잇따랐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전날 ‘방송 촬영을 위해 동물을 소품 취급하는 드라마 연재를 중지하고 처벌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와 21일 현재 약 4만9000명의 동의를 얻었다.


KBS는 전날 입장문을 통해 “사고 직후 말이 스스로 일어나 외견상 부상이 없다는 점을 확인한 후 돌려보냈고, 최근 말의 상태를 걱정하는 시청자들의 우려가 커져 건강 상태를 다시 확인한 결과 촬영 후 1주일쯤 뒤 사망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사과했으나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동물권보호단체 ‘카라’는 서울 마포경찰서에 ‘태종 이방원’ 촬영장 책임자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카라는 “KBS는 이번 일을 ‘안타까운 일’ 혹은 ‘불행한 일’로 공식 입장을 표명했지만 이 참혹한 상황은 단순 사고나 실수가 아닌, 매우 세밀하게 계획된 연출로 이는 고의에 의한 명백한 동물 학대 행위”라면서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KBS는 이번 상황을 단순히 ‘안타까운 일’ 수준에서의 사과로 매듭지어선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송가에서는 동물학대 관련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그들의 인식이 크게 달라졌는가에 대해서는 공감하기 어렵다.


앞서 올해 초 ‘생태교란종이 생겨난 원인과 현황을 파악하고, 조화로운 공생을 위해 인간의 역할과 책임을 생각해본다’는 취지로 론칭 됐던 SBS ‘공생의 법칙’도 의문을 남긴 바 있다. 방송에서 김병만이 “인간의 잘못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리듬을 맞춰줘야 하는 인간의 책임도 있는 것 같다”고 말한 것처럼, 생태교란종이 야기하는 문제에는 분명 인간의 책임이 있다. 그런데 ‘공생의 법칙’은 이런 생태계 문제에 대해 인간이 개입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 ‘생태계 교란 생물 학살’인 것처럼 묘사하면서 논란이 됐다.


‘카라’ 역시 해당 방송 이후 “생태교란종 문제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은 등한시한 채 해당 종을 혐오의 대상으로만 소비하고 있다”며 “인간에 의해 들여온 동물이 혐오와 학대의 대상이 되도록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SBS

촬영 현장의 동물복지 실태에 대한 조사 결과에서도 방송가의 동물권 보호 인식이 드러난다. ‘카라’가 공개했던 영화, 방송, 뉴미디어 종사자를 대상으로 촬영현장의 동물 복지 실태 관련 설문조사에서 동물 배우를 섭외한 경로는 ‘동물 촬영 전문 업체에서 대여’(44%), ‘스태프 또는 지인의 반려동물 섭외’(25%)로 조사됐다. 또 동물 촬영을 위해 ‘구매했거나 포획한’ 동물의 처리 현황은 △‘입양을 보냈다’(22%), △‘업체에 되팔았다’(16%) △‘모른다’(8%) △‘폐사(사망)했다’(3%)로 나타났다.


촬영 이후 개,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은 대부분 보호자에게 돌아가거나 입양되는 경우가 많지만, 어류·조류 또는 야생동물의 경우에는 소속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폐사나 방사, 재판매되는 일이 대부분이다. 특히 해당 조사에서 동물 촬영 경험이 있는 응답자의 65%는 가이드라인 없이 동물 촬영이 진행되었다고 답하기도 했다.


물론 방송가에서도 관련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 등을 통해 동물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도 있다. 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동물 학대 관련 방송들에 법정제재인 ‘경고’ 처분을 내리는 등의 움직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 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점은 더 안타깝다. 결국 논란이 된 이후의 처벌보다, 방송 제작 전 제대로 된 인식개선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출연 동물에 대한 관리체계 마련 및 제작진을 위한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동물이 출연하는 경우 충분한 시간과 안전한 장소, 전문가 필수 배치 등의 최소한의 규정은 물론, 이를 위반할 시 제재를 받는 등의 시스템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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