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재 단행
동유럽에 병력 재배치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친러시아 반군 세력에게 '독립국' 지위를 부여하며 자국군을 파병한 것과 관련해 미국이 뒤늦게 '침공(invasion)'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미국은 제재를 단행하는 한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았을 때 고위급 회담을 진행키로 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예정됐던 양국 대통령·외교장관 회담 일정까지 '취소' 시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각) 백악관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됐다"며 국제법 위반에 따른 제재 도입을 공식화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 최대 국책은행인 대외경제은행(VEB)과 방위산업 지원 특수은행인 프롬스비야즈방크(PSB) 등을 제재 대상에 올려 서방과의 거래를 전면 차단했다. 두 은행이 보유한 해외 자산은 동결됐으며, 서방 금융권에서 러시아 국채 발행·거래도 불가능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와 독일 간 천연가스 수송관 사업인 '노르드스트림-2'사업에 대해서도 "독일과 중단되도록 협력했다"고 말했다. 앞서 독일은 전날 노르드스트림-2 사업 승인 중단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바이든 "독립국 선언할 권리? 국제법 위반"
미국은 러시아의 병력 투입 결정에 대해 당초 침공 규정을 삼갔지만, 국내 비판 여론 등을 의식해 뒤늦게나마 원칙적 입장을 밝힌 모양새다. 무엇보다 러시아의 이번 조치를 묵인할 경우 추가 침공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물러서지 않는 모습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겨냥해 "누가 이웃 영토에 새로운 국가를 선언할 권리를 부여할 수 있느냐"며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고 국제사회의 단호한 대응을 요구하한다"고 말했다.
이어 "추가 도발을 지속할 경우 러시아는 추가 제재를 포함해 훨씬 더 가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면서도 "외교가 아직 가능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러시아와 싸울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바이든 대통령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영토를 방어하고 이들과의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며 기존 유럽 주둔 병력의 동유럽 재배치를 명령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군 당국은 △F-35 전투기 최대 8대 △아파치 헬기 32대 △보병 800명 등을 동부 작전 지역으로 이동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동맹을 안심시키고 나토 회원국에 대한 잠재적인 공격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다만 "미국 본토에서 파견되는 새로운 병력은 없다"고 덧붙였다.
백악관 "미러 정상회담, 현시점에 계획 없어"
미국은 예정됐던 미러 대통령·외교장관 회담 일정도 사실상 '취소'시켰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미러 정상회담 관련 질문에 "지금 시점에서는 확실히 계획에 없다"고 말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역시 오는 24일로 예정됐던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의 회동 일정을 백지화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국무부에서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과 회담한 후 진행한 공동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았을 경우에 미러 외교장관 회담을 개최하려 했다며 "더는 라브로프 장관을 만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러, 크림반도 사례 거론하며
"서방 제재엔 근거 필요 없어"
러시아는 미국이 근거 없는 제재를 도입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타스 통신에 따르면,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러시아가 친러 반군 세력의 독립을 승인하지 않았다면 제재도 없었을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은 '착각'이라며 "서방의 제재는 근거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자하로바 대변인은 크림반도 사례를 언급하며 "서방이 제시하는 제재 명목과, 그에 따른 주장 및 행동 등이 일치하지 않는다 해도 특별할 게 없다"고 강조했다.
서방이 '정부'의 뜻보다 '시민'이 원하는 바에 주목하며 대개 인권 보호를 제재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정작 크림반도 사례에선 정반대 행보를 보였다는 주장이다.
앞서 우크라이나에 소속됐던 크림자치공화국은 지난 2014년 주민 투표를 통해 96%의 찬성표를 토대로 러시아와의 합병안을 가결했다.
자하로바 대변인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이 시민 의지에 따른 조치였지만 서방이 이를 외면하고 제재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