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자기정치 하겠다" 의도는?
'공천개혁→당권확보' 속내?…반발↑
홍준표·배현진, 李 겨냥 '공개 비판'
"尹정부 도움 등 당원에 확신 줘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선언한 '자기정치' 발언의 여파로 국민의힘이 술렁이고 있다.
이 대표의 '자기정치'가 공천개혁을 디딤돌 삼아 차기 당권에 재도전하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일각에서는 반발 조짐이 읽힌다. 이 대표가 명확한 개혁 명분을 내놓지 못할 경우, 집권여당의 내홍으로 번지면서, 윤석열정부의 원활한 국정운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이준석 대표는 지난 12일 열린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이제 제대로 자기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대표는 "내가 이루고 싶은 세상,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세상,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정책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당을 만들기 위해 내 의견을 더 많이 투영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이튿날인 지난 13일에도 이 대표는 "지금 우리에게 갓 들어오는 2030이 당에서 꾸준히 역할을 하려면 당이 크게 바뀌어야 한다"며 "당 개혁을 할 때 방향성을 설명하고 그것을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을 '자기정치'라 통칭한다면 나는 그것을 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지방선거 직후인 지난 2일 출범한 혁신위원회가 '이준석표 개혁'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르면 이번주 출범할 혁신위는 시스템 공천과 당원민주주의 구현 등 정당 개혁을 의제로 설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혁신위에서 민감한 사안인 '공천개혁'을 다룬다는 점이다.
공천개혁에 시동을 걸면 이를 통해 수혜를 입을 의원이나 원외당협위원장 등 '그룹'이 생긴다. 이를 바탕으로 이 대표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특정 당권주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행보에 나설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 대표 본인이 공천개혁을 2024년 총선까지 흔들림없이 밀고나가겠다는 명분으로 차기 당권 재도전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같은 우려는 이미 당내 갈등으로 드러나고 있다. 배현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14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혁신위라는 게 정말 당의 건전한 조직으로 무색투명하게 띄우려고 같이 의기투합을 한 것인데, 불필요한 (자기정치) 말들이 나오는 바람에 어렵게 된 것"이라며 "이준석 대표가 자기정치를 이 혁신위를 통해서 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들이 좀 있다"고 말했다.
지도부의 일원으로서 당대표에 대한 예의를 고려해 '오해'라고 완곡하게 표현하기는 했지만, 그러한 시각이 당 안팎에 존재하고 있음을 표출한 것이다. 지난 2일 최고위에서 혁신위 출범을 결정할 때는 거론되지 않았던 '공천개혁' 의제가 이 대표가 상의 없이 끼워넣은 것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혁신안에 대해 불편한 시각이 등장하는 이유는 이 대표를 지지하는 젊은층이 으뜸당원으로 임명될 경우 차기 당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며 "혁신안 지지 세력이 이 대표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을 때, 개혁을 통해 이 대표가 다시 당권을 잡고 추후 본인 지지 세력에게 공천을 주려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준석 대표의 '공천개혁' 의제 설정은 당내 계파 갈등 비화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것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결코 바람직한 선례는 아니지만 그간 보수정당의 공천권은 대통령을 세운 계파에 유리하게 행사돼왔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뒤 이듬해 2008년 총선에서의 '친이(친이명박) 공천', 2012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앞두고 그해 총선에서의 '친박(친박근혜) 공천', 2016년 박근혜정부 당시 친박계 이한구 공관위원장을 통한 '친박 공천' 등이 그 예이다.
그러한 선례로 보면 윤석열 대통령 집권 3년차에 치러지는 2024년 총선 공천권에 대해서는 친윤(친윤석열)계가 욕심을 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 대표의 혁신위 설치와 '공천개혁' 구상은 차기 총선 공천 과정에서 친윤계와 이해가 엇갈릴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 대표가 혁신위를 띄운지 일주일 만에 친윤계 의원을 중심으로 한 '민들레(민심을 들어볼래)' 모임이 발족을 예고한 점이나, 대표적 친윤계 중진으로 알려진 정진석 의원과의 신경전 등 이 대표와 친윤계와의 갈등은 실제로 일부 표면화되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혁신위에서 가장 예민한 공천권 문제를 건드리면서 이같은 갈등이 표면화될 경우 '당정 원팀'을 강조했던 윤석열정부의 국정운영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홍준표 국민의힘 대구광역시장 당선인은 지난 13일 이 대표와 정 의원 간의 설전 등 당 내홍을 두고 "정치물이 덜 든 대통령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당권 투쟁에만 열을 올린다면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라며 "가까스로 정권 교체를 이루고 국민의 도움으로 지방선거에도 선전했으면 하나가 돼 정권의 기초를 다지는 데 전념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홍 당선인은 이날도 자신이 만든 플랫폼 '청년의꿈'의 청문홍답 코너에 지지자가 올린 '지금 (이준석 대표가) 정진석 의원과 대립하고 있는 와중에 자기정치를 하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에 "여태 그럼 타인을 위한 정치를 해왔다는 것이냐"고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로 반문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자기정치를 안 했다는 것은 당에 헌신을 하고 자기 자신은 없었다는 건데 이 시점에 그런 발언을 한 것은 어리둥절하다"며 "전 정부에서도 친문 의원이 대거 입성하며 문재인 전 대통령의 뒷받침한 선례가 있는 만큼 윤석열 대통령 입장에서도 2년 뒤 총선에서 우호세력 확보를 위해 공천에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을텐데, 이준석 대표가 갑자기 공천 얘기를 꺼낸 것 자체는 대통령실을 향한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한편으로는 당내 일각에선 이준석 대표가 '공천개혁' 카드를 꺼내든 이유가 조만간 결론이 날 당 윤리위원회 징계 문제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위한 시도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현재 이 대표는 일부 시민사회단체가 제기한 성상납 의혹으로 당 윤리위원회에 제소된 상태다. 정치권에선 '성상납 의혹' 자체는 사건 입증 자체가 쉽지 않지만, 이 대표가 '증거인멸 교사'로 인한 품위유지 위반으로 윤리위의 징계를 받을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보통 대선과 지선에서 승리하면 새정부 국정과제, 조직개편, 당선자 관련 내용이 부각되는데, 이 대표가 바로 혁신위를 띄워 이슈를 선점해 버렸다"며 "이에 다른 당권주자들이 아닌 본인이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게 되면서 윤리위 이슈가 희석된 부분도 분명히 있다"고 지적했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혁신위가 가동돼도 위원이 어떻게 꾸려지는지가 중요한데 참여를 원하는 현역의원이 많지 않은 만큼 외부인사로 구성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이 경우 이 대표 본인의 의견을 반영한 공천룰을 만드는 것도 어렵고, 혁신위를 통과하더라도 최고위 의결, 전국 상임위 통과 등 절차 속에서 이 대표의 입김이 작용하더라도 어느 정도만큼 당원들이 이를 받아들일지가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어 "당내 개혁이 필요하다는 명분과 현 정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당 소속 의원과 당원들에게 심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