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고물가에 간접 가격 인상
기업들 가격인상 주기 점점 짧아져
소비자 부담 갈수록 높아…“하반기도 문제”
고물가가 최근 소비자 밥상 문화까지 바꿔놓고 있다. 외식업계를 중심으로 반찬 리필 문화가 사라졌고, 기업을 중심으로 제품 가격 인상 주기가 짧아졌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 곡물가 폭등과 각종 제반 비용 상승이 불러온 안타까운 현실이다.
최근 식자재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원가가 뛴 반찬을 아예 구성에서 빼버리거나 손님에게 리필해주지 않는 음식점들이 늘고 있다. ‘슈링크’(shrink)와 ‘인플레이션’(inflation)를 합친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shrink+inflation) 현상이다.
‘슈링크플레이션’이란 가격은 그대로 두면서 제품의 크기나 수량을 줄이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일종의 ‘간접 가격 인상’인 셈인데,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손님들의 주머니 사정도 고려해야 하는 외식업계의 고민이 반영됐다.
실제 한 달 사이 140% 넘게 뛴 상추 가격 탓에 채소 리필을 금지하는 고깃집, 돼지고기 장조림을 달걀 장조림으로 대체해 원가를 낮추는 식당도 등장했다. 식당 주인들은 가격을 소폭 조정해 올리는 것보다 이런 방식이 손님 지키기에 더 유리하다고 입을 모은다.
가격을 유지한 상태에서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은 다양한 장점을 갖는다. 우선 비용절감 효과가 크다. 가격 인상에 대한 소비자의 반감이나 저항을 피할 수 있을뿐 아니라 큰 폭의 이익 창출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어 채택되는 방식 중 하나다.
문제는 슈링크플레이션이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물가 대책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고물가 시대에 소비자의 저항감을 완화시키기 위해 등장했지만 인플레이션이 극성을 부릴 때마다 가격은 그대로 유지한 채 상품 크기와 용량을 줄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외식업 종사자들은 영업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가격을 유지하고 이윤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설명한다. 코로나가 재확산 되고 있는 상황에서 월세·공공요금·인건비가 동시에 올랐기 때문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A씨는 “당장 채소값부터 안 오른게 없어 메뉴 가격을 상향 조정해 판매하는 게 맞지만 소비자 저항성이나 부담을 생각해 최대한 올리지 않는 쪽으로 버티고 있다”며 “곧 추석도 있고 물가가 더 오르면 조정이 불가피 할 듯 하다”고 말했다.
◇ 무한리필 집 사라지고, 가격 인상 주기 짧아지고
무한리필 식당의 경우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 식재료 원가 상승은 모든 식당이 똑같이 겪는 문제지만, 무한리필 고깃집은 타격이 더 크다는 설명이다. 가격 경쟁력으로 버텨온 무한리필 식당은 음식값을 올렸다가는 일반 고깃집에 손님을 뺏길 가능성이 높다.
돼지고기 무한리필 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B씨는 “반년도 안돼 가격이 두 배 이상 오른 부위도 있지만 무한리필 음식점 특성상 ‘가격 경쟁력’을 포기할 수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가격을 조금만 올려도 손님이 줄어 눈치만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쌈채소도 무료로 제공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팔수가 없다”며 “인당 채소 가격을 추가로 받고, 음료수와 계란찜 등 사이드메뉴는 별도로 추가 금액을 받고 있는데도 마이너스가 난다”고 덧붙였다.
기업들은 제품 가격 조정을 통해 손해를 최소화하고 있다. 최근 빙그레는 지난 3월에 이어 ‘붕어싸만코·빵또아’ 등 주요 빙과 제품에 대한 가격 20%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밀가루, 원부자재값 등 인상에 따라 8월을 기점으로 가격을 상향 조정할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앞서 롯데리아, KFC, 써브웨이 등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주요 제품 판매 가격을 6개월 만에 또 올리기로 했다. 원자재 가격 및 물류비, 인건비 상승이 주 이유다. 특히 롯데리아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총 3번에 걸쳐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이들 업체의 공통점은 가격 인상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급등하는 원재료값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항변한다. 일부 기업들은 원료 원산지를 바꾸거나 대체원료를 사용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설명이다.
정부가 최근 ‘물가 부처책임제’ 등 강력한 카드를 꺼내들고 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가격 인상의 터널이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 상황이다. 올 초부터 지속돼 온 가뭄에 따른 농작물 피해, 이웃나라 전쟁 등의 요인 등의 부정요인이 상당하다.
전문가들 역시 이 같은 ‘물가 폭풍’이 아직 끝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국내 농산물의 가파른 가격 상승세가 생활 물가 전반을 자극하는 충격파가 될 것이란 분석이다. 공공요금과 최저임금 인상 등 불안요소가 곳곳에 깔려있는 탓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비자들의 어려움은 더욱 크다. 가파른 물가에 금리 상승, 자산가치 하락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소비여력이 축소된 데다, 하반기에도 현 상황이 이어지거나 악화될 것으로 점쳐지면서 지갑을 닫는 소비자들이 크게 늘것으로 전망된다.
직장인 C씨는 “최근 매일 사먹는 점심값 부담이 상당하다”며 “정부가 물가를 잡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직장인이 피부로 느낄수 있는 정책은 사실상 전무하다. 물가·경기·부채 등을 함께 바라보고 대책을 세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