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 지원법에 칩4까지 기업 부담 가중
미·중 양자택일 넘어 장기적인 대안 마련 시급하다는 지적도
한국이 미국 주도 반도체 동맹 '칩4' 예비회의에 참여하기로 결정하면서 국내 기업이 받는 미·중 틈새 압박이 더욱 가중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국내 반도체산업의 첨단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이 시급하다는 업계 목소리가 대두된다.
8일 정계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서 칩4 참여 여부와 관련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관련 부처와 잘 살피고 논의해서 우리 국익을 잘 지켜내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칩4 참여 여부가 화두가 되고 난 뒤 첫 정부 공식 입장이다.
이미 우리 정부는 칩4 예비회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미국 측에 공식 전달해놓은 상태다.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예비회의에서는 칩4 세부 의제와 관련해 구체적인 조율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향후 칩4에 본격적으로 참여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반도체 산업의 딜레마를 감안해 신중하게 접근한다는 기류다.
이에 국내 기업들은 자세를 낮추고 신중함에 신중함을 거듭하고 있다. 업계는 관련 외부 발언은 자제하는 동시에 반도체 혹한기에 대비할 차세대 메모리에 사활을 거는 모습이다.
최근 SK하이닉스는 현존 최고층 238단 낸드플래시 개발에 성공했다. 단수를 높였음에도 세계 최소 사이즈다. 내년 상반기에 238단 512Gb 기가비트(Gb) 트리플 레벨 셀(TLC) 4D 낸드플래시 양산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적층 기술보다 데이터 저장과 처리에 초점을 맞춘 '페타바이트 스토리지'를 선보였다. 아울러 지난 5월 업계 최초로 개발한 UFS(Universal Flash Storage) 4.0 메모리도 이달부터 양산한다.
국내 기업들의 이같은 차세대 메모리 공략은 다가올 반도체 다운사이클에 대비한 시장 선점으로 관측되고 있다. 최근 세계 반도체 매출 성장세는 반년째 하향세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6월 반도체 판매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13.3% 증가했지만, 전월인 5월 증가율 보다 4.7%p 감소했다.
한편 앞서 지난 7월 29일 미국 의회는 반도체 지원법을 통과시키며 칩4 포석을 마련한 바 있다. 오는 9일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을 앞두고 있다. 미국 내에 반도체 공장을 설립하는 기업에 대규모 세제 혜택을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국내 주요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미 본토에 천문학적 투자를 계획 중이다. 다만 해당 법안의 목적이 사실상 미국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인텔 등 미국 반도체 기업이 성장하기까지의 공백을 국내 기업이 메우는 정도가 될 것이라는 다소 부정적인 전망도 있다. 아울러 해당 법안이 중국 견제의 목적까지 담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기업에는 부담이 크다.
이에 미·중 틈새에 낀 국내 반도체 산업의 첨단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회 유일한 반도체 전문가이자 '반도체산업 경쟁력강화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양향자 의원은 연일 칩4 가입 당위성을 피력하면서도 동시에 '국가 차원의 반도체 산업 지원'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발표되는 반도체 관련 연구 보고서에도 비슷한 지적이 줄을 잇고 있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8일 발표한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보고서에서 "우리 기업들은 단기적으로는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우리의 자체 공급망 안정화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며 "특정 국가에 편중되어 있는 공급망을 분산시키기 위해 현재의 공급망 재편을 기획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4일 발표된 산업연구원(KIET) 보고서 '미국 반도체와 과학법의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도 비슷한 주장이 담겼다. 보고서 저자인 경희권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우리 정부가 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 시행 등 반도체 전략을 강화 중이지만 막대한 규모의 직접 보조금과 파격적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주요국에 발맞춰 지원정책의 양적 확대 및 질적 수준 제고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중국 견제 및 아시아 의존도 축소를 지향하고 있으며, 안보 위협에 직면한 대만에 대한 첨단 반도체 의존 완화가 핵심 현안으로 떠오른 상황"이라며 "향후 서방의 전략적 탈(脫)대만 수요 선점을 위한 전략이 필요하며, 국내 첨단 후공정 생태계 경쟁력 강화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