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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효승의 역사 속 장소 이야기①] 홍대 주차장 골목은 원래 ‘00길’이었다


입력 2022.10.04 14:02 수정 2022.10.05 10:01        데스크 (desk@dailian.co.kr)

기찻길 역사, 일제 강점기 서울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

1920년대 일본 회사인 경성전기, 당인리에 화력발전소 건립 추진

금요일 저녁 홍대입구역부터 상수역까지 이어지는 어울림마당로, 흔히 ‘홍대 주차장 거리’라고 불리는 곳은 서울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 중에 하나다. 밤 늦은 시간까지 네온사인과 거리의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에 거닐기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 특이한 것은 어울림마당로를 중심으로 늘어선 상가의 모습이 마치 건물 뒤편을 개조하여 출구를 낸 것 같다는 점이다. 오히려 뒷길처럼 여겨지는 서교 시장길 쪽으로 난 출구가 더 자연스럽게 보인다. 이유는 1980년대 초까지 어울림마당로가 기찻길이었기 때문이다.


[사진 1] 어울림마당로 (2022년 10월 현재)ⓒ필자 촬영


[사진 2] 어울림마당로 쪽 출구 (2022년 10월 현재)ⓒ필자 촬영
[사진 3] 서교 시장길 쪽 출구 (2022년 10월 현재)ⓒ필자 촬영
[사진 4] 당인리역에 기차가 정차한 모습ⓒ출처 : 서울역사편찬원 아카이브

여기에 기찻길이 놓이게 된 까닭은 일제강점기 서울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말 보급되기 시작한 전기는 점차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전등이다. 호롱에 기름을 채워 넣고, 거기에 불을 붙여 어둠을 밝히던 것에서 전구에 전기를 넣는 것으로 바뀌었다. 1910년대 이후 서울을 비롯한 도시를 중심으로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렇듯 전기 소비가 점차 증가하면서 기존 전기 발전량으로 이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러한 전기 공급을 일본 회사가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은 근대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황실에서 한성전기회사를 설립하였다. 하지만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일본 회사에 넘어갔다. 이후 회사 이름을 ‘경성전기주식회사’로 바꾸었다. 경성전기는 경제 활동의 기초가 되는 전기 등을 독점 공급하면서도 이윤을 극단적으로 추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 하의 조선에서 이를 제지할 수 있는 수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경성전기는 전기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전구까지 독점 공급하였다. 1920년대 중반 이와 관련한 신문기사를 살펴보면 경성전기에서 이를 고의적으로 비싸게 팔아서 조선인에게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기사가 줄을 잇고 있다. 조선에서 전구를 제조하면 저가에 공급할 수 있는 것을 경성전기에서 일본인 기업가의 수익을 위해 도쿄에 위치한 회사에서 구매하여 고가에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기사에서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언급하며 경성전기의 폭리를 규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 권력을 등에 업은 경성전기는 요지부동이었다.


[사진 5] 당인리 화력발전소 (1957년) ⓒ출처 : 서울역사편찬원 아카이브

1920년대 중반 경성전기는 금강산 수력 발전 사업 실패 이후 당인리에 화력발전소 건립을 추진하였다. 화력발전소 건립은 전력난이 점차 가중되면서 지속적으로 요구하던 것이었다. 이를 위해 조선총독부에서는 발전소에 석탄을 공급하기 위한 철도까지 부설하는 등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인근 주민에게 교통편의 등이 제공되었지만, 어디까지나 일본 기업과 자본가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사진 6] 1930년대 당인리선과 방송소역 지도(붉은색 선 : 당인리선, 파란 점선 : 방송소앞 역)ⓒ
[사진 7] 1970년대 이후 당인리선과 방송소역 터 지도 (붉은색 선 : 당인리선, 파란 점선 : 방송소앞 역)ⓒ
[사진 8] 기차역 플랫폼의 흔적ⓒ2013년 교통평론가 한우진 블로그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우리 국민이 국가의 온전한 주인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이러한 문제 역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경성전기 역시 일제의 침탈전쟁 패망 이후 우리 땅에서 물러나면서 그 운명을 함께하였다. 하지만 아스팔트 포장도로 옆에 남아 있는 기차역 플랫폼의 흔적처럼 일제 침탈의 역사와 그 흔적은 그것을 잠시 잊고 있다고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역사 속에 매몰되어서도 안되겠지만, 식민지배라는 것이 그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결국 그 본질은 그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점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신효승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soothhistory@nah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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