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전체가 재미있었다”
문 정권의 정체성은 무엇이었나
公黨이 왜 혐의자를 비호하는가
지난 20일 구속 기한 만료로 출소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다음날 대장동 사건 재판을 받기 위해 법원에 갔다가 기자들에게 속내 한 자락을 털어놨다.
“의리? 그런데 이 세계는 그런 게 없더라. 내가 착각 속에 살았던 거 같다.”
“양파가 아무리 껍질이 많아도 까다보면 속이 나오지 않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에 대해) 재판 중에 잠시 기사를 봤다. 굉장히 재미있더라.”
“어떤 부분이 재미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냥 회견 내용 전체가 재미있었다.”
“10원 하나 받은 게 없다? 초밥도 10원은 넘을 거다. 그걸 몰랐다고? 그것만 몰랐을까?”
“‘자살 당한다’ 이런 말도 나오고 별말 다 한다. 인명재천 아니겠나. 그런 거 염려하지 않는다. 진실만 이야기하고 다 끝나면 조용히 살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이날 서울중앙지법에 신변보호 요청을 했다. 위험이 감지된다는 뜻이겠다.)
“작은 돌 하나 던지는데 저렇게 안달이다. 내가 숨길 수 없는 ‘시작’이라고 생각하시면 된다.”
여러 언론사 기자들이 각각 취재한 유 전 본부장의 언급들이다. 민주당 이 대표가 ‘측근’이라고 강조했던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구속 수감되고 유 전 본부장이 출소해서 입을 열기 시작한 만큼 대장동 의혹의 격랑은 다시 험하게 굽이칠 조짐이다. 이 대표는 “‘사탕 하나’ 받은 게 없다”(대규모 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행정 책임자에게 ‘사탕’따위를 뇌물로 줄 사람도 없겠지만)며 자신의 연루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민주당은 ‘정치탄압 중단하라’고 아우성이다. 거리에서는 좌우 양 세력이 ‘윤석열 퇴진’ ‘이재명 구속’의 구호를 외치며 세(勢)를 과시한다.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 벌이는 파국놀음이다.
우선 이 대표 이야기부터 하자. 사탕 하나 받은 적이 없고 불법자금은 1원도 보거나 쓴 일이 없다는 말의 진실성 여부는 수사를 통해 확인될 것이다. “김만배는 이재명을 ‘O같은 XX. OO놈. 공산당 같은 XX’라 욕했습니다. 그들이 과연 원수 같았을 이재명의 대선자금을 줬을까요?”라는 페이스북 글이 결백을 증명해 줄 것도 아니다. 정말 욕지기가 나는 상대이지만 권력이 무서워 달라는 대로 줘야 할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야당을 탄압하고 정적을 제거하고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던데, ‘정권 유지’는 법과 제도가 보장해 준다. 그 이치를 아직도 모른다는 것인가. “진실은 명백하다”는 것도 이 대표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는 자명한 사실이다. 그 진실을 밝혀내자고 검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 아닌가.
민주당 의원들이 “정치탄압 중단하라”고 떼를 지어 외치던데, 현직 대통령이 헌재의 탄핵결정으로 파면당하고 문재인 정권 내내 교도소에 갇혀 지낼 때 민주당은 어디서 무얼 했는지 궁금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도 엄청난 범죄자가 되어 초(超)장기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해야 한 것은 ‘정치탄압’이 아니고 무엇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인가?
일전에 감사원의 서면조사 요구를 “대단히 무례하다”며 내친 문 전 대통령의 말을 전했던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 “검찰공화국의 본색이 드러난 것”이라고 매도했다.
“아주 낮은 지지율 그리고 국정 난맥상(질서나 체계가 서지 않은 일의 양상)을 극복하기 위해서 집권 세력이 두 가지 트랙을 가동하는 것 같다. 첫 번째가 전임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무자비한 정치 보복이고 두 번째가 민주당 당 대표인 이재명 대표에 대한 근거 없는 부분(수사)이다”(MBN. 10. 23.)
감사원에 대해서는 ‘권력의 사냥개’라고 하더니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검찰공화국’이란다. 문 정권 때는 무슨 공화국이었는지부터 설명해주고 후임 정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게 바른 순서다. 경험담이면 그렇다하고.
광화문 촛불(및 횃불)집회 덕으로 집권에 성공한 문 전 대통령과 민주당은 이를 ‘촛불혁명’으로 명명하고, ‘적폐청산’을 혁명과업으로 내걸었다. 그 정권의 검찰에 직전 정부 요인들에 대한 사법적 징벌의 과제가 부여됐다. 문 전 대통령은 당시의 윤 검사를 파격적으로 승진시켜가며 그 과업을 이끌어가도록 했다. 문 정권으로서는 통탄해 마지않을 인사 실책이 되고 말았지만, 어쨌든 그 정부 아래서 수많은 전직 관료와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군 장성들까지 ‘청산’이라는 이름의 ‘숙청’을 당해야 했다. 그 때문에 정권을 빼앗겼으면서 무슨 염치로 ‘검찰공화국’운운하는지 정말이지 이해가 안 된다.
성남도시공사 유 전 본부장은 나름대로 ‘의리’를 지킨다며 수사과정에서 함구했던 듯하다. 그런데 이 대표는 아랫사람을 너무나 쉽게 부인하고 외면했다. 대장동 관련 조사를 받던 중 사망한 김문기 전 성남도시공사 개발1처장을 “시장 재직 시엔 몰랐다”고 부인했다. 조문도 가지 않았다. 유 본부장 자신에 대해서는 ‘산하 기관의 중간 간부일 뿐’이라며 하찮게 언급했다. ‘이재명 식의 의리’를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밝히겠다고 했다. 솔직하게!
그가 오직 진실만을 말하리라는 보장이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렇지만 검찰수사가 실체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게 하는 징검다리 역할은 충분히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므로 더욱 이 대표와 민주당 사람들은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릴 일이다. 할 말이 있더라도 그 후에 하는 게 옳다. ‘검찰공화국’ ‘정치보복’ ‘야당탄압’이라고 소리 지르는 게 바로 전형적인 수사방해 행위다. 그것이 목적인가? 이 대표가 갑자기 ‘대장동 특검’ 카드를 들고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인가?
전에는 상대방의 ‘특검수사’요구에 ‘시간 끌기’의도라며 반대하던 이 대표의 태도가 돌변한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윤 대통령 연루의혹도 함께 수사하자고 맞불을 놓으며 기세를 올리겠다는 심산인 것 같다. 대중이 이에 호응하면 윤 정권은 궁지에 몰릴 것이고 검찰수사는 동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빛이 역력하다.
이제 핵심증인이자 피고인인 유 전 본부장이 아는 그대로 다 밝히겠다고 한다. 이 시점에 검찰수사의 판을 쓸어버리고 특검 수사로 전환시키자는 것은 속이 뻔히 보이는 잔꾀다. 대장동 의혹만이라면 또 모르겠다. 선거법 위반 혐의에다 백현동 문제‧성남FC 후원금‧변호사비 대납·부인 김혜경 씨에 대한 공무원의 수행비서 역할 등 의혹들이 줄줄이 진실규명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대장동 특검 하나로 퉁 치자는 것처럼 들린다. 아니면 특검 시리즈를 하자는 것인가?
이 대표와 민주당은 대한민국의 존속·발전에 필수적인 법과 제도와 기구들에 대해 존중심을 가져야 한다. 수사는 검찰의 몫이고 책무다. 검찰의 존재 이유를 부인한다면 민주당의 제도적 지위와 권능은 누가 인정해줄 것인가? 이 대표가 정말로 책임의식 있는 리더라면 당의 준법성·도덕성 훼손을 우려해서라도 대표직을 내려놔야 옳다. 후에 결백이 증명되면 정치적 입지는 더욱 탄탄해질 것인데 뭐가 걱정인가.
민주당 의원들도 참으로 답답하다. 당 대표를 아끼는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범법 혐의자를 막무가내로 옹호하는 것은 공범적 행위가 되고 만다. 애초에 무결했는데 당 대표가 되고부터 정권의 의도적 탄압을 받게 됐다면야, 그 월권이나 탄압에 대해 저항할 수가 있다. 그렇지만 많은 의혹을 달고 대선에 나섰고 국회의원직과 당 대표직을 차지한 사람이라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왜 범죄혐의자를 공당(公黨)이 비호하는가?
개인에게 충성하는 것은 노비(奴婢)들의 예(禮)이다. 정치인이라면 민주정치 자체에 대해 충성을 해야 한다. 그게 민주국가 정치인의 체통이고 도리일 것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