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어떤 참사에서 이름·얼굴 없는 곳에 온 국민이 분향하고 애도하나"
찬성 시민 "세월호 참사 때도 명단 공개…제대로 추모하고 싶어"
반대 시민 "정치적 이용은 유족 두 번 죽이는 일…민주당, 유족들이 촛불 들도록 부추겨"
전문가들 "이재명 사법리스크 이슈 덮고 정부책임론 부각 의도…무엇보다 유족들이 원치 않아"
더불어민주당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명단과 영정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사고 희생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진심을 담아 애도를 한다는 의견과 명단 공개는 인권침해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족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명단 공개를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것은 '정부 책임론'을 부각하려는 의도라며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의 이름도, 영정도 없는 곳에 국화꽃 분향만 이뤄지고 있다. 세상에 어떤 참사에서 이름도 얼굴도 없는 곳에 온 국민이 분향을 하고 애도를 하는가"라며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이름과 영정사진 공개를 요구하고 나섰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이모(42)씨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 명단도 공개됐다"며 "뉴욕에 가면 911테러 참사로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한 메모리얼 파크도 있고 희생자 명단이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기록돼 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삶을 조명하고 안타까운 사정을 많은 이들이 알게 되면 더 위로할 수 있을 것"라고 주장했다.
'산만언니'라는 필명의 1995년 삼품백화점 붕괴 사고 생존자인 이성민씨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이번 끔찍한 참사로 비명에 간 개별자들의 인생을 알고 그들을 제대로 애도하고 추모하고 싶다"며 "만약 명단이 공개되고 2차 가해가 진행되면 가해자들을 당신들이 '압색'하면 된다. 잘 하시지 않느냐"고 적었다.
반면 광화문 인근 직장인 박모(34)씨는 "귀한 아들 딸 하늘나라에 보낸 심정도 기가 막힌 일인데 유족들의 아픔을, 희생자들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유족을 두 번 죽이는 일 아니냐"라며 "정치인이라면 다음에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고심해야 하는데 민주당은 마치 유족들이 촛불이라도 들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부추기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직장인 정모(36)씨는 "유족들이 동의할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동의 없는 공개는 인권침해"라며 "이재명 대표는 십년 넘게 모신 측근 직원 얼굴도 고인의 이름도 모른다고 하고, 골프 친 것도 기억 없다고 하는 사람이 왜 자꾸 고인들 이름과 얼굴을 멋대로 공개하자고 하는지 모르겠다. 고인들을 이용하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국가적 슬픔을 더 이상 이용하지 말라"고 꼬집었다.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은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번 사태가) 공적인 사안으로 돼있기도 해서 일정한 부분은 공공의 알 권리에 속하는 부분도 있으나, 다만 이것의 기본적인 출발은 사생활"이라며 "(그럼에도) 유족의 동의 여부에 따라 조정이 돼야 할 내용이어서, 정부 당국에서도 염두에 두고 뭔가 준비하고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관련 사법리스크 이슈를 덮고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정부 책임론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 유족들의 명단 공개를 주장하며 이슈를 계속 끌고 가는 것"이라며 "유가족 입장에선 내 아들 딸의 이름이나 사진이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대형 참사가 벌어진 상황에서 현재 가장 고통을 받으시는 분들은 유가족과 친지분들일텐데 이 분들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명단을 공개하라는 의견이 나오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며 "유가족들의 슬픔을 추스르는데 더 해가 될 수 있는 만큼 개인정보는 통제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특히 "명단 공개 주장이 과연 순수한 공익적 목적으로 주장하고 있는지, 공익이라면 누구를 위한 공익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데 추모를 어떻게 하느냐는 분들이 있는데 개인적 차원에서 알던 분들 때문에 추모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이번 일에 책임을 통감하기때문에 추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