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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위대한 알코올중독자’<66>] CIA 정보관


입력 2022.12.16 14:05 수정 2022.12.16 14:05        데스크 (desk@dailian.co.kr)

<작가 주> 우리나라는 음주공화국이라 할 만큼 음주에 관대한 사회입니다. 반면, 술로 인한 폐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주취자의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알코올중독자가 양산됩니다.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가 풍비박산나기도 합니다. 술 때문에 고통 받는 개인과 가정, 나아가 사회의 치유를 위해 국가의 음주·금주정책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술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항상 경계해야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들려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66화 CIA 정보관


“미국을 흔히 세계경찰이라고 그럽니다. 미국이 단순히 오지랖이 넓어서 그런 걸까요? 아닙니다. 세계평화를 위한 겁니다. 세계의 선도국가, 리더로서 가지는 책임감 내지 의무감이죠. 마찬가지로 미국이 세계경제를 걱정하는 건 인류번영을 위한 겁니다. 이런 건 미국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제임스가 미합중국의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했다.


김우환은 미 대사관을 나서며 미국이 왜 한국의 금주운동에 이렇게까지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금주운동이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경제를 위협한다면 모를까 겨우 한국의 문제에 불과한 것을 가지고 본국에서 CIA 정보관이 직접 왔다는 것부터 의아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미국의 유력언론에 1면 톱으로 보도되었다지만 콜린을 통해 전달해도 충분한 사안을 침소봉대해서 취급하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또한 세계평화도 아니고 세계경제를 위협하는 일에 미국이 나설 건 또 뭔가. 미국이 무한 봉사하러 세계를 돌아다니는 국가도 아니고 이 무슨 오지랖이란 말인가. 김우환은 미국의 의도가 궁금했지만 무턱대고 아무에게나 물어볼 수가 없었다. 친한 기자가 없지 않았지만 김석규의 일에 CIA까지 나선 것을 혹시 눈치라도 챈다면 이만저만 낭패가 아니었다. 그래서 김우환은 스스로 의문을 풀어보기 위해 인터넷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편집인이 2015년「中 군사전략가의 美 금융제국 비판」이란 제목으로 게재한 중국 국립 국방대학 교육주임 차오량 장군(공군 중장)의 강연문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요약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의 출범으로 미국의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에 올랐다. 금 1온스 당 35달러의 가치를 고정시킨 금태환제를 내세운 결과였다. 하지만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 막대한 전쟁비용을 지출해 달러를 금으로 태환해주는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 미국은 1971년 금태환제를 파기했다.


미국은 달러와 금의 연동을 파기한 이후 1차 석유 파동이 일어난 1973년 달러를 가장 핵심적 자원인 석유에 연동시켰다. OPEC의 주도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로 하여금 향후 모든 원유 거래는 오직 달러로만 하도록 한 것이었다. 왜냐 하면 달러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석유라는 에너지는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한 자원이라는 점을 꿰뚫어보았기 때문이었다. 1973년 이전까지 국제 석유 거래에는 여러 통화가 사용되었으나 1973년 이후에는 달러로만 석유 거래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달러는 유로 탄생 전까지 국제 결제의 80%를 담당했다. 그런데 유로가 탄생하면서 국제 결제의 상당 부분을 유로가 담당하게 되었다. 유로는 출범 직후 달러 결제 교역의 약 3분의 1을 대체했다. 현재 국제 교역의 23%가 달러가 아닌 유로로 결제되고 있다. (현재 달러의 국제 결제율은 60% 내외에 이른다.) 미국은 유로의 탄생에서 교훈을 얻었고, 이후 달러의 지배력 유지를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라크와의 전쟁이었다.


미국이 대량살상무기를 이유로 이라크에서 전쟁을 벌였다고 하지만 사실은 석유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공공연히 알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전쟁 승리 이후 이라크에서 단 한 방울의 석유도 가져가지 않았고 미국 국민들은 저유가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오히려 원유 가격은 전쟁 이전 배럴당 38달러에서 전쟁 후에는 149달러로 껑충 뛰어 올랐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 나선 이유는 석유가 아니라 달러 때문이었다. 산유국에서의 전쟁이 초래하는 직접적 결과는 석유 가격을 상승시키며, 석유 가격의 상승은 달러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킨다. 예를 들면 전쟁 이전에는 38달러로 석유 1배럴을 살 수 있었지만 전쟁이 일어나면서 석유 가격은 4배 이상인 149달러가 되었다. 이제 38달러로는 4분의 1배럴도 살 수 없는 지경이 됐고, 나머지 4분의 3배럴을 사려면 100달러 이상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그러면 비산유국은 미국을 찾아가 자국의 공산품과 원자재를 바치는 대신 제발 달러를 내달라고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이럴 때 비로소 미국은 자신 있게, 공개적으로, 마치 정당한 일을 한다는 듯이 달러를 찍어내면 된다. 결국 미국은 산유국에 대한 전쟁을 통해 석유 가격을 높임으로써 달러에 대한 막대한 수요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엄청난 금융 이윤을 챙겨온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와 전쟁을 벌인 이유는 석유가격 상승 외에 한 가지가 더 있다. 후세인은 1999년 유로의 공식 출범에 즈음하여 달러와 유로, 미국과 유럽 사이에서 불장난을 쳐 이득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즉, 석유 거래 결제를 달러에서 유로로 바꾸려 한 것이다. 특히 미국을 분노하게 만든 것은 후세인의 유로 결제가 연쇄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이라크의 뒤를 이어) 러시아의 푸틴, 이란의 아마디네자드,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등도 자국의 석유 판매를 유로로 결제할 것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미국의 분노를 산 후세인은 교수대에서 생을 마감했다.


미국 경제는 1971년 달러와 금의 연동을 파기한 이후 제조업 등 실물 경제를 포기했기 때문에 가상경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가상경제는 3개의 시장(선물, 채권, 주식)을 일컫는데 국제 금융 자본이 이 3개의 시장에 머물러 있는 한 미국은 이윤을 창출해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창출된 막대한 이윤으로 미국은 세계를 상대로 금융업을 계속하고 있다.


김우환은 기사를 읽고 나서 문득 사채업자가 연상되었다. 세계를 상대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내는 국제 사채업자. 거기다 돈까지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는 무소불위의 사채업자. 하지만 그건 미국에 대한 반감을 근거로 한 상상은 아니었다. 전 세계를 상대로 유일하게 돈을 찍어낼 수 있는 나라. 그래서 웬만한 통화량으로는 국내 인플레가 발생하지 않는 나라. 자국 인플레의 짐을 세계 전체에 나눠 갖게 한 나라, 미국에 대한 경외와 감탄이 그 배경이었다.


박태갑 소설가greatop@hanmail.net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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