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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배우발견㊸] ‘일타 전문’ 정경호의 연약·소심美


입력 2023.02.18 09:17 수정 2023.02.18 22:01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배우 정경호 ⓒ

드라마 ‘일타 스캔들’의 글로벌 인기가 화제다. 과도한 교육열 문제를 다룬 드라마는 많았으되 ‘일타 강사’(사설학원에서 첫 번째로 등록 마감이 되는 인기 강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학부모와의 러브 스캔들을 중심에 둔 신선한 설정이 호응을 얻고 있다.


전도연과 정경호를 선두로 단역배우까지 출연 배우 모두가 호연을 넘어 열연을 과시하고 있고, 학부모와 강사의 로맨스에 겹겹의 사연과 에피소드를 쌓아 설득력을 높인 것도 인기 이유다.


'일타 스캔들' 최치열과 남행선(왼쪽부터) ⓒ

그러나 무엇보다 전도연과 정경호, 정경호와 전도연의 ‘완벽한 어울림’이 채널을 고정 시키고 방영일을 학수고대하게 한다. 세상에, 50대로 접어든 전도연이 30대 중반의 ‘러블리 앤 큐트’가 가능하다니! 워낙 동안이고 나잇살 붙지 않은 탄탄한 몸매도 한몫하지만, 외형만으로 되는 사랑스러움과 귀여움이 아니다. 스스로 의도하면 ‘무엇이든 그렇게 보이게 하는’ 배우 전도연의 연기력과 능청은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사실, 더 놀란 건 배우 정경호다. 달리 말하면, 전도연보다 기대치가 낮았다. 솔직히, 천하의 배우들인 황정민과 송강호가 “전도연 앞에 서면 나는 작아진다”고 혀를 내두르는 배우인데, 누가 상대역이 되든 전도연보다 큰 기대를 걸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정경호가 그런 전도연과 대등해 보인다. 때론 선배 전도연을 품어 안는 연기를 한다.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전도연과 짝을 이룰 때만이 아니다. 일타 강사 최치열로 움직일 때도 그 표현이 유려하다. 영화 ‘킹스맨’을 본뜬 학원 광고영상을 찍을 때도, 수백 명 앞에서 수학을 치열하게 강의할 때도, 오래 봐온 조교들 이름조차 외우지 못하고 친구 하나 없이 고고할 때도, 고급 침대 두고 바닥에서 잠을 자고 섭식장애로 음식 하나 제대로 목으로 넘기지 못할 때도 너무나 자연스럽고 평안하다. 시청자 소감에 “정경호가 이렇게 연기 잘하는 배우였나”라는 극찬의 댓글들이 많을 만하다.


'무정도시' 정니현 ⓒ

사실 정경호는 19년 전 드라마 데뷔작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시작으로, ‘개와 늑대의 시간’(2007), ‘무정도시’(2013) 때도 편안하면서도 매력적으로 연기했다. ‘일타 스캔들’ 한 번 잘해서 받는 칭송이 아니라는 얘기다.


가만 생각해 보면 정경호에게는 ‘일타’ 최고의 전문가 역할을 즐겨 맡겨졌다. 드라마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에서는 국내 최고 인기의 대중음악 작곡가였고,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는 국내 최고 대학병원의 ‘일타’ 외과 전문의여서 잠잘 시간 부족하게 수술이 밀렸다. 영화 ‘압꾸정’에서도 의사 면허가 박탈됐음에도 여기저기서 찾는 성형외과 수술의였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김준완ⓒ

드라마 ‘일타 스캔들’의 일타 강사 최치열을 비롯해 정경호가 맡은 ‘일타’들은 드라마나 영화 속 전형적 전문가들과 다르다. 흔히 전문가라고 하면 냉철하고 지적인 것은 기본, 피도 눈물도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배우 정경호가 만들어내는 ‘일타’들은 피와 눈물이 있는, 따스한 감성의 소유자들이다.


작곡가 하립(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은 좋은 노래를 얻기 위해 악마와 영혼의 거래를 할 만큼 심약하고, 외과 수술의 김준완(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자신보다 연인의 입장을 우선하고 연인의 눈물과 웃음에 꼼짝 못 하는 로맨티스트이고, 성형외과 의사 박지우(압꾸정)는 귀가 얇아 사기를 당하고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무너진다.


연약하고 소심해서 더 따스한 인물을 만드는 배우 정경호 ⓒ

언뜻 보면 국내 최고의 전문가라는 사회적 지위와 어울리지 않는 연약하고 소심한 인성인데, 배우 정경호는 극과 극의 특성을 하나의 캐릭터에 이질감 없이 잘 담아낸다. 그 결과, 그가 빚은 인물은 사실적이고 현실적 매력을 지닌다.


어떻게 이런 표현이 가능할까. 물론 정경호의 탄탄한 연기력이 제1 요소다. 더불어 타고난 것도 있다. 마치 ‘엄마 뱃속에서 막 태어난 기린’ 같은, 길쭉길쭉하되 가느다래서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아우라가 보는 이의 마음을 훔친다. 그런 연약미를 장착한 가운데 소심해서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심성이 21세기형 남자의 이상형으로 완성시킨다.


맞다, 푹 빠졌다. 바로 저녁 9시 10분이면 다시 만날 수 있어 행복한 오늘이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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