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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로그인] ‘세계 최초’ 혈액·소변으로 유해 물질 살핀다…환경보건시료은행


입력 2023.04.10 07:00 수정 2023.04.10 07:00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지난달 국가환경보건시료은행 개소

환경성질환 연구 목적 인체 시료 보관

혈액·소변 등 250만 점 초저온 냉동

연구 통해 녹색화학산업 성장도 기대

지난달 29일 열린 국가환경보건시료은행 개소식에서 한화진 환경부 장관(왼쪽에서 네 번째) 일행이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환경부

최근 세계는 급변하는 물결 속에 다양한 생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등 자연재해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 중립, 감염병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한 비대면 문화 확산, 디지털 첨단 기술을 접목한 4차 산업혁명 등 저마다 시장 선점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공공기관 역시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 중입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공공기관 역점 사업에 관한 관심은 크게 줄어든 상황입니다. 데일리안이 기획한 [D:로그인]은 공공기관의 신사업을 조명하고 이를 통한 한국경제의 선순환을 끌어내고자 마련됐습니다. 네트워크에 접속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로그인]처럼 공공기관이 다시 한국경제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조명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1760년대 영국에서 시작한 산업 혁명은 인류에 많은 문명을 선물했다. 다만 선물에는 적지 않은 대가도 따랐다. 공장 굴뚝에서 배출하는 탄소는 기후 위기를 불렀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 가운데 하나라 칭송받던 플라스틱은 이제 지구는 물론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가 된 지 오래다.


이 때문에 탄소를 비롯한 다양한 환경 유해인자들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유해성에 관한 연구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국립환경과학원에서는 2009년부터 3년마다 사람 몸속에 쌓이는 유해 물질을 조사하고 있다. 현재까지 4번째 조사를 진행했는데, 조사 물질은 납과 수은, 카드뮴 등 중금속을 비롯해 코티닌(담배 연기), 플라스틱 등 33종이다.


조사 방법은 대상자 혈액과 소변을 채취해 조사 물질 농도분석과 기초 임상검사를 하는 방식이다. 생활방식 조사와 오염물질 노출 원인 파악을 위한 설문도 한다. 기초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오염물질 노출이 우려되는 집단 또는 지역에 대해서 원인 규명을 위한 정밀 조사가 이어진다.


혈액, 소변과 같은 인체 시료를 통한 환경보건 연구는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에서 활발하다. 환경 유해인자들이 실제 사람 몸에 얼마나 쌓이고,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연구 자료는 환경 보건 정책을 만드는 데 기초 자료가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연구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문을 연 국가환경보건시료은행 시료 보관실을 둘러보고 있다. ⓒ환경부

지난달 29일 인천 환경산업연구단지에 ‘국가환경보건시료은행(이하 보건시료은행)’이 문을 열었다. 환경과학원이 운영·관리하는 보건시료은행은 약 250만 점의 혈액과 소변, 조직 등 생체 시료(인체유래물)를 초저온 상태로 보관하는 장소다. 예산 76억원을 투입해 전체 면적 2032㎡에 지상 2층 규모로 건축했다.


보건시료은행은 모니터링실을 비롯해 액화 질소 냉동고 50대, 기계식 냉동고 60대, 데이터 분석실 등 16개 공간을 갖추고 있다. 이들 냉동고는 정전 상황에서도 최대 72시간 동안 시료를 최적 상황에서 보관할 수 있는 설비를 갖췄다.


보건시료은행은 관련법에 따라 인체에서 수집한 조직과 세포, 혈액, 체액 등이나 이들로부터 분리한 혈청, 혈장, 염색체, DNA, RNA, 단백질 등을 질소 등을 활용해 초저온으로 보관한다. 그동안 개별 환경보건 조사연구사업을 하면서 임시 저장·보관하던 생체시료를 통합 관리하는 데 의미가 있다.


인체 유래물은 몸속 유해 물질의 과거와 현재 노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지표로 환경성질환 연구에 대한 활용 가치가 크다. 특히 중장기 보관 시료는 미래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건강 영향의 인과 규명 등 연구 활용성을 확장할 수 있어 관련 학계에서도 관심이 많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국가가 질병 원인 분석과 치유책을 찾기 위해 인체 유래물을 연구하고 있다. 다만 국가 차원에서 환경성 질환 연구를 목적으로 보건시료은행을 갖춘 것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환경성 질환은 생활 속에서 환경오염 물질에 인체가 노출돼 발생하는 질병을 의미한다. 현재 정부가 규정한 환경성 질환은 아토피 피부염, 치매, 우울증, 파킨슨병, 인플루엔자 및 폐렴, 알레르기 비염, 천식 등이다.


보건시료은행은 체내 유해 물질 노출 확인과 건강 영향 규명 등 목적으로 수집해 개별 사업별로 임시 보관 중인 혈액, 소변 등 인체 유래물 시료를 통합 관리한다.


국가환경보건시료은행 내 질소 냉동고 모습.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현재 생체 시료 수집 조사연구 관련 사업은 모두 4가지다. 먼저 어린이 환경보건 출생 코호트 연구는 7만 명의 임신부를 대상으로 시료를 모은다. 생체 시료는 향후 10년까지 124만 건을 모아 아이 출생부터 청소년까지 환경 노출과 건강 추적 조사에 사용할 예정이다.


국민환경보건기초조사 사업은 만 3세 이상 국민의 생체 시료를 모으는 내용이다. 2009년부터 3년 주기로 연간 약 1만6000건 시료를 모으고 있다.


앞으로는 산업단지, 폐광 지역 등 오염원 주변 주민 건강영향조사를 위해 혈액과 소변 등을 사업당 500~5000건까지 수집할 계획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건강모니터링을 위해 해마다 1000건 정도의 생체 시료 수집도 예정하고 있다.


환경과학원은 내년까지 보건시료은행을 중심으로 ‘환경보건 바이오뱅크 시스템 구축’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환경과학원 관계자는 “생체 시료를 안정적으로 저장함으로써, 데이터 정확도를 보장하고 체계적인 시료 저장은 미래에 개선된 기술로 시료를 분석하는 것이 가능하게 돼 향후 환경오염 노출평가에서의 활용도가 클 것”이라고 기대했다.


더불어 “보건시료은행은 잠재적 환경오염 노출에 의한 건강 영향의 과학적 규명을 위한 중요한 인체 자원 보관에 의미가 있다”며 “이를 통해 과거 환경 보건 수준과 비교, 평가 등 정책 방향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국가환경보건시료은행 운영과 관리를 맡게 된 김동진 국립환경과학원장.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핵심은 ‘데이터’…향후 20년, 차원 다른 환경산업 발전 보게 될 것”


[인터뷰] 김동진 국립환경과학원장


“결국 중요한 건 데이터의 축적이다. 수십 년간 자료를 모으고, 비교하고, 연구하면서 변화 추이를 살펴야 한다. 장기간에 걸친,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도시 지역과 농촌을 비교하고, 산업단지와 일반 도시 등과의 차이를 확인하면서 환경이 인체에 미치는 유해성을 확인하는 게 보건시료은행 설립 목표다.”

김동진 환경과학원장은 보건시료은행 개소에 “보다 체계적이고 장기간 환경보건 연구가 가능하게 될 것”이라며 “이를 통해 향후 환경성 질환 저감과 안전한 화학제품 개발 등 녹색화학산업 육성에도 이바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 설명에 따르면 보건시료은행은 환경 정책 최종 지향점과 맞닿아 있다. 환경 정책은 궁극적으로 사람과 자연이 외부 유해 물질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는지 분석하고, 나쁜 영향성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생체 시료에서 발견한) 미세 플라스틱이라든지 중금속 이런 것들이 어느 지역에서는 많이, 어느 지역에서는 적게 나오는지 확인할 수 있고, 그 원인(오염원)이 뭔지 찾아서 제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아주 장기간에 걸친 추적 조사의 기본이라고 보면 된다.”


김 원장에 따르면 생체 시료는 수집 경로와 장소 등이 달라서 가치가 높다. 도시와 농촌, 산업단지와 일반 도시 등 각지에 거주하는 사람들로부터 혈액, 소변 등에서 표본을 채취하기 때문에 환경에 따른 비교가 가능하다. 2009년부터 3년마다 반복하는 표본 채취는 현재 100만 점가량 모은 상태다.


국립환경보건시료은행 전경.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우리나라 생체 시료 연구는 좀 늦은 편이다. 영국과 프랑스, 일본 등이 추적 조사를 오래전부터 진행 중이다. 다만 이들 국가와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다. 연구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는 질병을 추적하는 연구지만, 우리는 환경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다. 인체에 쌓이는 환경적 요인들을 연구하기 위한 보건시료은행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다.


아직 생체 시료 연구에서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하지는 못했다. 14년간 모은 데이터만으로는 부족하다. 대신 연구 속도가 나날이 빨라진다. 정부 의지도 강하고 산업계 관심도 많다. 현재 100만 점인 시료가 축적될수록 관련 연구도 다양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올해 환경과학원은 보건시료은행뿐만 아니라 여러 환경연구 시설이 연이어 문을 연다. 지난달 28일 충북권 대기환경연구소가 문을 열었고, 오는 9월에는 첨단대기오염감시센터가 개소한다.


해외 전기차 수입 인증을 담당할 전기차 시험연구동도 올해 완공 예정이다. 이 밖에 유해화학물질 평가를 맡을 화학물질연구동과 층간소음, 새집증후군 등을 연구하는 생활환경실증심험연구동도 공사가 한창이다.


김 원장은 “데이터와 과학에 기반한 환경 정책을 지원하는 게 우리 환경과학원의 역할”이라며 “앞으로 들어설 시설들을 바탕으로 데이터를 연구하고 분석하면 환경산업 발전에도 엄청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마 올해는 앞으로 20년을 내다보는, 장기 전략으로 갈 수 있는 글로벌 환경 연구단지를 만드는 원년이 되는 해”라며 “아시아 최고를 넘어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한국의 환경연구가 이제부터 본격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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