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일 출범한 후 51일 만
대의원제 손질 마지막 혁신안 발표
노인 비하 논란·계파 갈등 고조 '오명'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가 10일 대의원 투표 반영 없이 권리당원 투표와 국민여론조사로만 당대표를 선출하는 내용의 혁신안을 발표하고 서둘러 활동을 마무리지었다. 지난 6월 20일 김 위원장 체제로 출범한 이후 51일 만이다.
혁신위는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김남국 의원의 코인투기 논란이 잇달아 터지며 위기감이 커진 당의 쇄신을 위해 출범했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의 강성 지지층인 일명 '개딸(개혁의딸)'들이 요구하는 내용을 마지막 혁신안으로 제시하면서 친명(친이재명)계와 비명(비이재명)계의 갈등만 첨예화시켰단 비난을 피해가지 못하게 됐다. 김 위원장의 '노인 비하' 발언 등 설화가 잇따르며 혁신위의 동력 또한 떨어져 가던 상황이라, '혁신위를 혁신해야 한다'는 비판에도 마주해야 했다.
당대표 선출에 대의원 배제하고 권리당원 비중 늘려
3차 혁신안, 의원 워크숍서 다뤄져 계파 간 격론 일 듯
김은경, 활동 종료 소회에 "명치 향했던 칼끝 아팠다"
혁신위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당대표와 최고위원 등 지도부를 선출하는 과정에 대의원을 배제하는 내용의 혁신안을 발표했다. 또한 공천 시 현역 의원 하위 평가자에 대한 감점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는 불체포특권 포기와 꼼수탈당 근절 방안에 이은 3번째 혁신안이다.
3차 혁신안은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권리당원 1인 1표 투표 70%와 국민여론조사 30%로 선출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현행 민주당 당헌·당규의 전당대회 투표 반영 비율은 권리당원 40%· 대의원 30%· 여론조사 25%· 일반당원 5%으로 돼 있다. 여기에서 대의원 투표권을 배제하고 권리당원 반영 비율을 대폭 늘리자는 제안이다. 대의원의 힘을 빼는 대신 권리당원의 권한을 강화해 강성 지지층의 영향력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대의원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안이 도출됐으나 비명계의 거센 반발로 실제 혁신안 관철은 수월하지 않을 전망이다. 혁신위원회 소속 이해식 의원은 "오는 28~29일 양일간 의원 워크숍을 통해서 다루겠다"라며 "혁신안에 대한 의원들의 전반적인 생각이 그 워크숍을 통해 토론되지 않을까 생각된다"라고 했다.
또 "혁신안은 다 제도 개선과 연관 돼있기 때문에 당헌·당규를 개정해야 하는 작업과 연관된다"라며 "최고위원회에서 어떤 절차와 과정을 거쳐서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만일 수용을 안한다면 그와 관련해서 이유가 뭔지 밝히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혁신위는 이날 현역 의원에 대한 공천 불이익 강화도 제안했다. 현재 하위 20%에게 경선 득표의 20% 감산을 적용하고 있지만, 이를 하위 10%까지는 40% 감산하고 10~20%는 30% 감산, 20~30%는 20% 감산 규칙을 적용해 경선 시 제재를 실질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이나 경선 불복자에 대한 감산은 현행 25%에서 50%까지 상향 적용할 것도 제안했다.
다만 앞서 혁신위가 내놓았던 1·2호 혁신안은 큰 반향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여기에 당대표 선출에서 대의원 투표를 없애는 식으로 현행 대의원제를 무력화하자는 제안까지 나오면서 3호안에 대한 당내 비판도 더욱 커진 상황이다. 약세 지역의 지역대표성을 쪼그라트리고, 팬덤 정치만 더욱 강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당의 3차 혁신안 수용 여부를 둘러싼 우려 역시 만만치 않다.
불체포특권 포기 담은 1호안 '껍데기' 평가 받아
2호는 김홍걸 의원에 침묵해 혁신 의지 의구심
3호 발표 앞두고 '노인비하' 논란 동력 더 떨어져
김 위원장은 혁신위 활동 기간 혁신안에 대한 주목을 이끌기보다는 잇단 실언으로 위원회 위상과 입지가 흔들리는 결과를 낳았다.
김 위원장은 이를 의식하듯 혁신위 활동 종료 소회를 묻는 질문에 "혁신안은 여러 위원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치열하게 논의하고 논쟁해서 만들어 낸 피땀의 결과다. 그 결과가 나의 여러 가지 일로 가려질까 그게 가장 두렵다"라고 했다. 또 "명치를 향했던 칼끝이 정말 아팠다"며 "죽을힘을 다해서 죽기살기로 여기까지 왔으니 잘 받아서 민주당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혁신안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혁신위는 앞서 지난 6월 23일 첫 번째 혁신안으로 민주당 의원 전원의 불체포특권 포기 및 체포동의안 가결 당론 채택을 제시했다. 이 혁신안은 한 달 가까이가 경과한 7월 18일 의원총회에서야 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불체포특권 포기 결의안이라는 형식으로 채택됐다. 그 과정에서 '정당한 영장 청구'라는 전제조건이 달리면서 '껍데기' '반쪽짜리 혁신안'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지난달 21일에는 비위 의혹을 받는 이들의 선제적 '꼼수 탈당'을 방지하고 복당 제한 등의 조치를 제도화하는 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같은달 7일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제명됐다가 민주당에 복당한 김홍걸 의원에 대해선 침묵을 지키며 길을 잃은 모습을 보였다. 혁신위가 노인 비하와 김 위원장 가정사 논란이 촉발되기 이전에 발표한 혁신안들도 수용 과정에서 진통을 피해가지 못한 것이다.
3차 혁신안 발표를 앞두고는 혁신위의 동력이 더욱 떨어졌다. 김 위원장이 '여명 비례 투표'를 언급하면서 당의 고질적인 문제로 여겨졌던 '노인 폄하와 경시 풍조'가 다시 한 번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과거 민주당이 나이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드러내는 듯한 발언을 해서 선거를 그르친 경험이 있음에도 이를 반복하면서 결국 '혁신위 조기 해체'라는 후폭풍을 낳았다. 혁신위는 당초 9월까지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청년 좌담회에서 "둘째 아들이 22살이 된 지 얼마 안 됐는데 중학교 1~2학년일 때 '왜 나이 든 사람들이 우리 미래를 결정하느냐'라는 질문을 했다"며 "(아들의 주장은) 평균 연령을 얼마라고 봤을 때 자기(아들)의 나이로부터 여명까지, 엄마 나이로 여명까지 해서 비례적으로 투표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되게 합리적이죠?"라고 자리에 참석한 이들에게 반문하며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1인 1표'라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맞는 말이다.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1대1 표결을 해야 하느냐"라고 해 논란을 촉발했다.
초선 의원 '학력 저하 심한 코로나19 학생' 비유
이낙연 겨냥 "자기 계파 살리려하는 것 부적절"
"교수라 철없이 지내 정치적 언어 잘 모른다"
김 위원장이 촉발한 설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천안함 자폭' 발언 등으로 논란이 된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이 불과 9시간 만에 낙마한 후 2번째로 인선된 위원장이다. '당의 쇄신'이란 막중한 임무를 갖고 취임했지만 김 위원장의 행보들 역시 당의 혁신 의지를 의심하는 기류만 가중시켰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김남희 혁신위 대변인은 "우리의 불찰이기도 하고, 여러 공격이나 비난들이 있어 우리도 동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최종 혁신안을) 발표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최근 김 위원장과 혁신위는 '노인 비하' 논란으로 큰 위기를 맞았다. 김 위원장은 대한노인회를 찾아 자신의 발언에 대해 고개를 숙이면서 "남편과 사별 후 시부모를 18년간 모셨다"라고 했다. 하지만 사태가 수습되기는커녕 김 위원장의 시누이가 '노인 폄하는 그녀에겐 일상이었다'는 커뮤니티 글을 올리며 진실공방이 시작됐다. 가뜩이나 잔뜩 있었던 혁신위의 악재에 혁신위원장의 가정사 폭로 논란까지 더해진 것이었다.
당의 면모를 혁신해야 할 혁신위원장이 계파 갈등성 발언을 하거나 초선 의원을 '학력 저하가 심한 코로나19세대 학생들'에 빗대 뭇매를 맞은 적도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16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이낙연 전 대표를 겨냥한 듯 "자기 계파를 살리려 (정치적 언행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라고 말해 계파갈등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달 20일 KBS라디오 '최강시사'에서는 그 전날 있었던 더민초(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 모임) 의원들과 간담회 분위기에 대해 "코로나 때 딱 그 초선들"이라고 수식하면서 "소통이 잘 안 되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전에 가르쳤던 학생과 코로나 세대를 겪었던 학생들의 차이가 분명히 있다. 아주 심각할 정도로 있었다. 일단 그들은 학력 저하가 심각했다"며 당내 초선의원들을 폄하했다는 논란을 자초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일 인천 공개 일정 중 윤석열 대통령을 '윤석열'이라 지칭하며 비난했다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 동안 일한 임기 말년에 대해 "윤석열 밑에서 통치받는 게 창피했다. 문재인 대통령 때 금융감독원 부원장으로 임명받았는데 윤석열 밑에서 임기를 마치는 게 엄청 치욕스러웠다"라고 말했다. 이는 여권이 '문재인 정부 알박기 인사들은 물러나 치욕감에서 해방돼라'라는 공세를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2일 춘천에서 열린 시민 대화에서는 노인 비하 논란에 대해 "노여움을 풀라"라고 하면서도 "60세로 곧 있으면 노인 반열에 들어가는데 교수라서 철없이 지내, 정치적 언어를 잘 모르고 정치적 맥락과 무슨 뜻인지도 깊이 숙고를 못한 어리석음이 있었다"라고 해명해 논란을 낳았다. 이 발언을 둘러싸고도 '교수 폄하, 코로나 학력 저하 세대 등 연이은 망언으로 학자의 품격을 저하했다'는 비난 여론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