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원장 '오후 6시 이후 재판 미진행' 공지하자…법원 내부서 불만 나와
법관들 "처음부터 오후 6시 재판 잡는 경우 없어…재판 하다보면 시간 넘기는 것"
"법원장, 노조에 너무 끌려다니는 것 같아…재판부 상의도 없이 결정한 점 부적절"
김정중 "재판 탄력적 운영하자는 취지…합의사항 따른 것 일뿐 끌려다닌 것 아냐"
김정중 서울중앙지법원장이 최근 "재판 진행 시간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오후 6시까지 진행하도록 노력하겠다"는 글을 법원 내부 게시판에 게시한 것을 두고 법관들 사이에서 "법원장인 노조 압박에 끌려다닌다"는 불만이 나왔다.
13일 조선일보에 따르면 김정중 서울중앙지법원장은 지난 8일 중앙지법 내부 게시판에 '구성원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란 글을 올렸다. 그는 노조가 요구해서 받아들인 네 가지 사항을 언급하며 "'충실히 추진한다'라는 의사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 중 첫번째는 "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오후 6시 이후 재판이 진행되지 않도록 기일을 지정할 것을 재판장에게 메일링 등 적절한 방법으로 알린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5월 체결된 중앙지법과 법원노조 중앙지부의 단체협약에 담긴 내용이다.
다른 법원들도 비슷한 단체협약을 맺었으나 이를 공식화하는 방안을 두고 중앙지법과 노조는 상당 기간 '줄다리기'를 했다. 노조는 자신들이 작성하는 '정책 추진서'에 명문화하고 법원장이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김 법원장은 근로 조건과 무관한 내용을 서면으로 약속한 것은 부적절하다며 이를 거부했다.
이에 노조는 지난달 법원 내부망에 '김정중 법원장은 몽니 부리지 말고 구성원들을 섬기고 지부와 협력하라'는 성명서를 게시했다. 또한 내부게시판에는 법원장을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고, 노조는 법원 청사 곳곳에 법원장을 압박하는 현수막을 건 것으로 전해졌다.
김 법원장은 '오후 6시까지 재판'을 재판장에게 안내하는 것은 기관 운영 방식으로 근로조건을 규정한 단체협약과는 무관하다는 취지의 메일을 직원들에게 보내며 버텼다. 일부 판사 중에는 "법원장이 원칙을 지킨다"며 응원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가 김 법원장은 지난 8일 서면 약속 대신 노조 요구를 따르겠다는 글을 법원 내부망에 올렸다. 그러자 중앙지법 판사들 사이에선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 부장판사는 "처음부터 오후 6시 이후 재판을 잡는 경우는 없고, 재판을 하다 보면 시간을 넘기는 것"이라며 "'오후 6시 이후 재판하지 않도록 재판장에게 안내한다'는 내용도 굴종적인 데다 재판권 침해 소지도 있다"고 매체에 전했다. 또다른 판사는 "노조에 너무 끌려다니는 것 같다"며 "재판부와 상의도 없이 법원장이 결정한 건 부적절하다"고 꼬집었다.
판사들의 이런 지적이 나오자 김 법원장 측은 "맞벌이 직원들의 아이 돌봄 공백 등을 고려해 시간이 오래 걸릴 사건은 미리 일정을 잡아 재판을 탄력적으로 운영하자는 취지"라며 "재판권 침해와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또 노조와의 합의 사항을 따른 것이지, 노조에 끌려다닌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법원 내부에선 노조에 우호적인 '김명수 코트'라서 벌어진 일이란 시각도 나온다. 한 판사는 "오는 9월 대법원장 교체 후에도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노조 때문에 여러 갈등이 생겨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