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90여일 앞두고 잇따른 야당발 '정쟁 불붙이기'
정우택 "거대야당, 정치공세·국정방해 중단해야"
이태원특별법 尹 거부권 '불통' 이미지 누적 의도
대통령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총선을 90여일 앞두고 민주당의 입법 폭주가 계속되면서다. 대통령실은 지난 9일 이태원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이례적으로 유감 입장을 표명했다. 쌍특검법 이후 여론의 눈길이 쏠리는 가운데 야당 거부권 행사 유도 책략에 대한 대응 고민이 길어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이태원 특별법)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임오경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후 논평을 통해 "이제 공은 다시 윤석열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참사특별법마저 거부할 것이냐.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울분과 국민의 요구를 이번에도 외면할 것이냐"라며 "양곡관리법·간호법·노조법·방송법·배우자의 주가조작 범죄의혹을 밝히자는 특검법까지 국민의 요구를 거부하고 거부권을 남발하는 것에도 정도가 있다"고 꼬집었다.
또 "윤 대통령은 유가족들의 아픔과 국민의 목소리를 받아들여 이태원참사특별법을 즉각 수용하고 공포하라"며 "이번에도 국민의 뜻을 거부한다면 국민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내년 총선을 겨냥해 지지층을 의식한 정쟁성 법안 처리로 읽힌다. 실제로 국회는 총선이 3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 선거제 개편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 분양가 상한제 주택의 실거주 의무 폐지를 담은 주택법 개정안,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중소사업장에 법 적용을 2년 유예하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 등도 계류 중이다.
대형마트의 새벽 배송을 허용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비대면 진료 관련 의료법 개정안은 12월 국회에서 본회의 상정이 불발된 데 이어 1월 국회에서도 난항이 예상된다. 정쟁성 공방만 벌이느라 정작 본질에 가까운 법안 처리에는 속도를 내지 못한 셈이다.
국민의힘은 현 상황을 '총선 민심 교란용' 악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정우택 국회부의장도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회가 마땅히 주요 민생경제 법안, 현안을 해결해야 하는 데 주력해야 하지만, 180석 거대 야당이 입법권을 쥐고, 총선용 정치공세 입법 폭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대통령실은 거듭된 거부권 행사를 비판하는 여론과 야당의 노림수 가운데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의 지난 9∼11일 설문 결과,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긍정 33%, 부정 59%로 집계됐다. 부정평가 이유 중에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2위를 차지했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갤럽과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간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8건에 달한다. 현 정부 이전에는 노태우 대통령 7건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 6건, 박근혜 대통령 2건, 이명박 대통령 1건 순이었다. 김영삼·김대중·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동안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이례적으로 많은 수치를 두고 "민주당의 입법과 의회 독재에 알면서도 끌려가는 거부권 행사가 많아진 것"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민주당이 민생과 거리가 있는 정쟁용 입법·탄핵·예산을 대통령의 손으로 거부하게 함으로써 '불통'이라는 이미지를 누적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다.
대통령실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에 대해 "여야 합의 없이 또다시 일방적으로 강행 처리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법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당과 관련 부처의 의견을 종합해 입장을 밝히겠다"고 밝혔다. 이는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대해 대통령실이 입장 표명을 신중히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거대 야당의 폭주가 되레 역풍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당 관계자는 "야당은 대통령의 '쌍특검법' 거부권 행사 이후 계속해서 정치적 중도층의 투표율을 떨어지게 하려는 상황"이라면서도 "총선을 앞두고 부담을 만들려는 의도보다 야당의 역할을 열심히 하는 게 총선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