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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후보들의 민폐 속출해도…경찰은 "후폭풍 두렵다" 눈치만 [데일리안이 간다 48]


입력 2024.04.02 05:02 수정 2024.04.02 05:02        김인희 기자 (ihkim@dailian.co.kr)

확성기 장치한 유세차량들, 이른 아침부터 음향 내보내며 소음 유발

병원입구·교통섬 등 주정차 금지구역에 버젓이 차 대놓고 선거운동

법으로 선거운동 소음 허용치 정해놨지만…기준 너무 높아 유명무실

단속해야 할 경찰은 "후폭풍 두려워서…선거기간에는 마찰 자제"

1일 아침 구로역 인근에 정차해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는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유세차량. 해당 위치는 어린이병원(왼쪽 큰 붉은 타원) 앞으로 주·정차금지 및 단속지역(오른쪽 작은 붉은 타원)이다.ⓒ데일리안 김인희 기자

4·10 총선이 8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후보들의 선거운동도 점차 과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선거운동은 공직선거법으로 보장하고 있지만 지역주민들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기본 원칙도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대다수 후보들의 유세차량은 주·정차금지 위반은 물론, 확성기 장착 소음피해까지 유발하며 주민들의 따가운 눈총과 질책을 받고 있다. 또 정작 이를 단속해야 하는 경찰은 선거 이후의 후폭풍이 두려워 눈치만 살피고 있는 실정이다.


1일 아침 지하철 1호선 구로역 1번출구 인근의 이면도로. 이곳에는 구로을 현역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유세차량이 자리를 잡고 홍보 영상물과 음향을 지속적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엄연한 주·정차금지구역이다. 유세차량이 정차한 바로 뒤쪽에는 어린이병원이 있어 수시로 구급차가 드나들 수 있기 때문이다.


주·정차 뿐만 아니라 소음도 문제다. 이 어린이병원에 아이가 입원해있다는 주민 A씨는 "아이가 잠자리를 가려서 밤새 보채다가 새벽 2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들었는데, 아침 7시가 되자마자 선거유세 음악이 나와서 아이가 잠을 깼다"며 "4년에 한 번 하는 선거라는 건 알지만 민생을 생각한다는 사람들이 민폐를 끼쳐서야 되겠나"라고 말했다.


선거운동이 치열해지면서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는 주정차금지구역이라 하더라도 유세차량들이 정차해 영상과 음악을 송출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데일리안 김인희 기자

인근 주민 B씨도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역 근처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선거운동원들만 있어도 충분할텐데 굳이 병원 출입구 근처에 차를 놓고 영상물을 틀어놔야 하나"라며 혀를 찼다.


이런 선거운동은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일수록 더 치열하다. 이로 인해 선거운동 소음 민원도 선거철마다 꾸준히 접수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가 있었던 2022년 선거 유세 관련 민원은 1만1746건이 접수됐다. 지난해에는 전국 단위 선거가 없었음에도 월평균 298건이 접수됐다.


선거 유세 관련 민원 접수 현황.ⓒ국민권익위원회

이런 민원을 반영해 국회는 2021년 12월 선거 유세차량·확성기의 소음 허용치를 신설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자동차에 부착한 확성장치는 정격출력 3㎾(킬로와트), 음압 수준 127㏈(데시벨)을 초과하면 안 되며, 휴대용 확성장치는 출력 30W를 초과할 수 없다. 이는 유세차량 바로 1m 옆에서 측정한 기준으로 삼는다. 또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는 확성장치를 사용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음압 기준 상한인 127㏈는 일상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소음과 비교해서도 월등히 높아 쓸모가 없다는 지적이다. 일반적인 도로변에서의 자동차 주행 소음이 70㏈, 자동차 경적 소리가 100㏈, 소방차·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125㏈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선거 유세차량의 음향 송출은 사실상 사이렌을 계속 가동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차량통행과 보행에 불편을 야기하는 유세차량 주·정차도 문제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어린이보호구역·소방시설 주변 5m 이내·횡단보도 위·교차로 모퉁이 5m 이내·버스 정류장 10m 이내·인도 위 등은 원천적으로 주·정차가 금지되는 구역이다.


하지만 선거 분위기가 과열되며 이런 원칙이 무시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이날 여러 온라인 사이트와 SNS에는 주·정차 규정을 위반한 선거유세 차량을 촬영한 사진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세종갑에 출마한 새로운미래 김종민 후보의 유세차량이 자전거전용도로를 막고 있다.ⓒ김종민 후보 X(옛 트위터) 캡처

세종갑에 출마한 새로운 미래 김종민 후보의 유세차량은 자전거도로를 막고 정차한 채 선거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광주 광산갑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후보의 유세차량은 아예 교차로에서 보행자가 신호를 기다리는 '교통섬'에 올라가 있는 모습이 이날 SNS에 게시되기도 했다.


보행자 교통섬에 올라선 채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후보의 유세차량.ⓒ민형배 후보 X(옛 트위터) 캡처

하지만 이런 위법사항을 단속해야 할 경찰의 역할은 미온적이기만 하다. 자칫 해당 지역구의 국회의원이 될 수도 있는 후보의 유세차량을 단속했다가 '미운털'이 박힐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이날 경찰 관계자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원칙적으로 주정차규정을 위반한 차량은 선거유세차량이라 하더라도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단속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실제로 단속하려 하면 선거법에서 허용하는 유세차량의 공개장소 연설대담 규정을 들어 단속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시민들의 불편이 따르는 것은 알고 있지만 선거기간에는 경찰도 정당과의 마찰을 피하려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분위기"라며 "마찰이 발생하면 선거 이후의 후폭풍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김인희 기자 (ihk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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