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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부터 안 보이지만 봄 오는 건 느껴요"…벚꽃축제 시각장애인들 [데일리안이 간다47]


입력 2024.03.30 06:04 수정 2024.03.30 10:00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영등포구, '봄꽃 동행 무장애 관광투어' 개최…서울시 최초 시각장애인 관람 지원

공연으로 즐기는 청각체험, '봄꽃 만지기' 촉각체험, 서울마리나 요트체험 등 프로그램 다양

시각장애인들 "꽃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꽃으로 목걸이도 만들어요?"

"눈이 안 보인다 뿐이지 많이 상상한다" "몇 십년 만에 처음 용기 내 봄꽃축제 나와 본다"

2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봄꽃축제 현장에서 열린 '봄꽃축제 동행 무장애 해설 프로그램'에서 시각장애인 임상옥(50)씨가 최호권 영등포구청장과 함께 산수유 꽃잎을 만져보고 있다.ⓒ데일리안 김하나 기자

"봄꽃 보고 싶은데 상상하기는 어려워요"


2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윤중로 벚꽃길. 벚나무만 1000그루가 넘는 이곳에서 '봄꽃 동행 무장애 관광투어'에 참여한 시각장애인 임상옥(50)씨가 살구꽃잎을 만지며 한 말이다. 3살에 시력을 잃어 색깔만 겨우 구분한다는 임씨는 "꽃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만져보면 장미는 동글동글 뾰족뾰족, 국화는 넓적하고 잎이 겹친 것처럼 생겼다"고 말했다. 꽃목걸이를 건네받은 임씨는 "꽃으로 목걸이도 만들어요?"라며 "사탕 목걸이는 본 적이 있는데 꽃목걸이는 본 적이 없어 반은 상상이 가고 반은 상상이 가질 않네요"라고 신기해했다.


'봄꽃 동행 무장애 관광투어'는 영등포구가 서울시 최초로 시각장애인의 관람을 돕기 위해 동선 안내와 봄꽃의 세부 묘사를 포함한 해설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축제기간 1일 1회 운영된다.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은 "눈으로 즐기는 꽃 축제에 시각장애인은 늘 소외돼 온 것이 현실인데 시각장애인도 벚꽃 축제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 서울관광재단과 손잡고 기획하게 된 동행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프로그램에는 시각장애인 10명, 동행인 10명, 현장영상해설사 2명 총 22명이 참석했다.


2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봄꽃축제 현장에서 열린 '봄꽃축제 동행 무장애 해설 프로그램'에서 시각장애인 이춘희(51)씨가 봄꽃길 음악 공연을 듣고 있다.ⓒ김하나 데일리안 기자
◇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하지만 탄성 소리에 즐거워져"


오후 2시 첫 번째 프로그램은 청각체험이었다. 장애인활동지원사 신미정(57)씨는 "쉐이커 악기를 가지고 서커스 공연을 하는 연주를 한다"며 "연주자들이 입은 옷이며 머리도 신발도 자유분방해 예술가들처럼 생겼다. 두 개 공을 흔들며 연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행인인 신씨 옆에서 설명을 듣던 시각장애인 이춘희(51)씨는 "10살때부터 날이 화창한지 밝은지조차 모를 정도로 불빛조차 전혀 안 보이는데 봄이 오는 건 느껴진다"며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하지만 탄성을 지르는 소리를 들으면 즐거워진다"고 전했다.


2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봄꽃축제 현장에서 열린 '봄꽃축제 동행 무장애 해설 프로그램'에서 시각장애인 임상옥(50)씨가 꽃잎을 만져보고 있다.ⓒ김하나 데일리안 기자

다음 프로그램은 촉각체험으로 '봄꽃 만지기'였다. 일부 시각장애인들은 코로 흘러오는 꽃내음과 손에 만져지는 꽃잎의 느낌으로 봄꽃놀이를 즐겼다. 시각장애인 정인직(53)씨는 "산수유를 만졌는데 말랑말랑하고 촉촉한 풀 같다"고 말했다. 일부 시각장애인들은 시력을 잃기 직전 기억속에 갖고 있던 꽃을 떠올리기도 했다. 산수유 꽃잎과 살구꽃잎을 만져본 시각장애인 최양숙(62)씨는 "뾰족뾰족하게 생겼다"며 "8년 전 시각을 잃기 전만 해도 신길동 근처를 많이 돌아다녔는데 그 때 잔뜩 피어있던 꽃이 생생하다. 눈이 안 보인다 뿐이지 많이 상상한다"고 전했다.


2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봄꽃축제 현장에서 열린 '봄꽃축제 동행 무장애 해설 프로그램'에서 시각장애인 최양숙(62)씨가 내리막길 터널에 달린 나비모형을 만져보고 있다.ⓒ김하나 데일리안 기자
◇ "요트는 탁 트여 바람이 좀 더 시원…갈매기는 무슨 색이에요?"


오후 3시 프로그램은 한강의 강바람을 몸으로 느끼는 '서울마리나 요트체험'이었다. 영상해설사 인미현(63)씨는 "바로 오른쪽에 한강이 있고, 곳곳에 유람선 요트가 정박해 있다"고 설명했다. 요트에 올라 탄 시각장애인들은 "집에만 있다 나와 보니 강바람이 시원하다"고 입을 모았다. 임씨는 "유람선은 타봤지만 요트는 처음"이라며 "요트는 탁 트여 있어 좀 더 시원하다.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 때 갈매기가 끼룩끼룩하는 소리를 내며 다가오자 임씨는 "갈매기가 앞쪽 3~4m 정도에 20마리는 있는 것 같다"며 "갈매기는 무슨 색이에요?"라고 되물었다.


2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봄꽃축제 현장에서 열린 '봄꽃축제 동행 무장애 해설 프로그램'에서 시각장애인 A씨가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주고 있다.ⓒ김하나 데일리안 기자

시각장애인 유정일(56)씨는 "57년 만에 요트를 처음 타본다"며 "스무살에 실명해 37년 정도 눈이 안 보인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마음껏 나들이를 하기 쉽지 않다보니 몇 십년 만에 처음 용기 내서 봄꽃축제도 나와 본다"고 전했다. 유씨는 "집 밖으로 나오면 각종 장애물에 다칠 수 있어 두렵다"며 "지팡이를 짚고 다니더라도 위에 표지판이 있을 수 있고 땅이 평평하다 꺼지는 구간도 있다. 어느 날은 같이 걷던 시각장애인 한 사람이 없어진 것도 몰랐다"며 "그 정도로 밖에 나오기 쉽지 않은데 이런 기회가 많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등포구는 앞으로 매년 봄꽃축제마다 이런 시각장애인 동행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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