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사실상 '김건희 여사 특검' 수용 촉구
"야당 굴복 시도시 국정 어려울 것" 경고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의 첫 만남에서 윤 대통령의 가족을 둘러싼 의혹을 거론함과 동시에 이른바 '야당 탄압'시 국정 운영이 난항에 부딪힐 수 있다고 경고했다. 총선 압승 후 한껏 고무된 민주당이 각종 정쟁 사안을 민의(民意)로 포장하며 정부·여당을 압박하는 가운데 나온 작심비판의 배경엔 '거대 야당'이란 자신감이 깔렸다는 해석이다.
29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표는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서 윤 대통령과 만나 인사를 나눈 뒤, 안주머니에서 A4용지 10매 분량의 '총선 승리 청구서'를 꺼내 15분여간 읽으며 비난을 쏟아냈다. 윤 대통령은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영수회담은 지난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정부 출범 후 720일 만에 이뤄진 첫 만남이다.
이 대표는 모두발언에서 "정말 대통령께서 성공한 대통령이 되시기를 바란다"며 관례적인 덕담으로 운을 떼자마자 곧장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가족 등 주변 인사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라며 본론으로 치고 들어갔다.
영수회담 실시 전부터 정치권 최대 화두는 이 대표가 윤 대통령 면전에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언급할 지 여부였는데, 이날 이 대표가 강경한 표현으로 김 여사 특검법 수용까지 요구한 것이다.
그간 최고위원회의 등 공식 석상에서 윤석열 정부의 국정기조 전환을 촉구해 온 이 대표였다. 그러나 그는 실제 영수회담에서 아예 '야당 탄압 시 초래될 결과'에 대한 경고장을 대통령에 직접 날렸다. 192석의 범야권이 막강한 입법 주도권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이 대표는 "행정 권력으로 국회와 야당을 혹여라도 굴복시키려 하면 국정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여당과 대립각을 세워온 특검법의 수용을 요구하며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나 (채해병) 특검법 등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한 유감 표명과 함께 향후 국회 결정을 존중하겠다라는 약속을 해 주시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거부권 행사에 대한 사실상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것이다.
이 대표는 이번 회담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식한 듯, 그간 거론된 민감한 의제를 모두발언에서 빠짐 없이 쏟아냈다. 실제 윤 대통령의 모두발언 직후 집무실을 퇴장하려던 취재진을 멈춰세워 준비된 원고지를 읽으며 대국민 담화 형식을 차용한 것으로 미뤄 볼 때, 처음부터 작심 비판의 의지를 다져온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최근 민주당 차기 지도부로 거론되는 인사들이 친명(친이재명) 일변도로 꾸려질 전망에다, 국가 의전 서열 2위의 국회의장 출마 의사를 밝힌 후보군마저 '국회 재표결 요건을 기존 200석에서 180석으로 낮추는 원포인트 개헌'(조정식 의원)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하는 상황에서 이 대표는 사실상 거칠 게 없다는 평가다.
주요 당직자 중에선 아예 협치라는 발상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 상황이다. 전략기획위원장으로 임명된 강성 친명 민형배 의원은 "협치라는 것을 가능하면 머릿속에서 지워야 한다"며 "협치를 대여 관계의 원리로 삼는 건 192석 야권 압승의 총선 결과라는 민심에 배반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 대표 본인도 사법 리스크가 있는데 대통령 면전에서 사실상 '김건희 여사 특검 수용'을 언급하는 이 대표를 보면서 총선 압승을 통한 힘자랑이 거세지겠다고 느꼈다"며 "영수회담도 한 만큼, 야당은 '총선에 드러난 민심을 외면하는 대통령'이라는 명분으로 전보다 강하게 (정부·여당을) 압박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