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대통령실서 135분간 첫 영수회담
의대 증원만 공감…나머지 현안 이견만
尹 '여야정 협의체' 필요…李 '국회 우선 활용'
대통령실 "소통·협치 계속 될 수 있기를 희망"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9일 첫 영수회담을 가지면서 소통의 물꼬를 텄다. 하지만 의료 개혁을 제외한 대부분의 현안에선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별도의 합의문은 채택하지 못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이날 오후 2시부터 135분간 용산 대통령실에서 차담회 형식으로 회담을 진행했다. 당초 예정된 1시간을 훌쩍 넘긴 이번 회담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720일 만에 이뤄졌다.
대통령실에서는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민주당에선 진성준 정책위의장과 천준호 당대표 비서실장, 박성준 수석대변인이 배석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 간 독대는 없었다.
이날 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됐지만, 이 대표가 양복 상의에서 A4 용지 10장에 달하는 원고를 꺼내 작심 발언을 쏟아내자, 윤 대통령의 표정은 굳어지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저희가 오다 보니까 (여의도 국회에서 용산 대통령실까지) 한 20분 정도 걸리는데 실제 여기 오는데 한 700일이 걸렸다. 제가 오늘 드리는 말씀이 거북할 수 있을 텐데, 야당과 국민들이 가지는 이 정부 2년에 대한 평가의 일면이라고 생각해달라"며 운을 뗀 뒤 15분가량 발언을 이어갔다.
이 대표는 "정부 비판적인 방송에 대해서 중징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 2년은 정치는 실종되고 지배와 통치만 있었다는 평가가 많다" "스웨덴 연구기관이 (대한민국이) 독재화가 진행 중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등의 발언으로 긴장감을 높였다. "이번 기회에 국정 운영에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들도 정리하고 넘어가면 좋겠다"며 김건희 여사 관련 특검법 수용을 에둘러 압박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전 국민 25만원 민생 회복 지원금 지급과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연구·개발(R&D) 예산 즉각적 복원, 연금 개혁,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 특별법과 해병대 채 상병 관련 특검법 수용, 거부권 행사 유감 표명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 대표가 언급한 대부분의 현안에 대해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민생 회복 지원금에 대해선 "물가·금리·재정 상황 등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지금 상황에서는 어려운 분들을 더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이태원 특별법과 관련해선 "사건 조사나 재발 방지, 유족 지원 등에는 공감한다"며 "민간조사위원회에서 영장청구권을 갖는 등 법리적인 문제를 해소하고 다시 논의한다면 무조건 반대는 아니다"라고 했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이날 회담 직후 열린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차담회에서는 민생경제와 의료 개혁을 중심으로 다양한 현안이 논의됐다"며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 한 부분은 있었다"고 밝혔다.
이 수석은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의료 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는 데 인식을 같이 했고,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여당·야당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하고, 조금은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담회와 관련한 별도의 합의문은 없다"고 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여·야·정 민생협의체 가동과 관련해서도 이견을 드러냈다. 이 수석은 "윤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전했다.
언론에 공개된 이 대표의 모두발언이 끝난 뒤 진행된 비공개 회담에선 윤 대통령이 발언 분량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측 주장에 따르면, 135분간 진행된 회담에서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발언 분량은 85 대 15였다고 한다. 이 수석은 "모두발언에서 이 대표가 민주당과 본인의 입장을 길게 설명했기 때문에 (비공개) 대화는 이 대표의 발언에 대한 윤 대통령의 답변 위주로 진행됐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회담이 야당과의 소통 및 협치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수석은 "정치의 복원, 여야 협치 시동 이런 것들이 지난 총선을 통해 표출된 민심"이라며 "오늘 회동은 바로 그런 민심에 순응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향후 정치적 상황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지만 소통과 협치가 계속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