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동맹' 표현 문제 삼으며 여야 대치
김병주 사과 여부 이견 못 좁힌 가운데
與 "김병주 막말 윤리위원회 제소 검토"
野 "발언 트집 잡아 특검 막으려는 술수"
22대 국회 첫 대정부 질문이 여야 의원들의 고성과 삿대질로 얼룩졌다. 의원들 간 집단 고성이 오갔고, 질의 순서를 다 마치지 못한 채 대정부 질문을 위한 본회의는 산회됐다. 국민의힘은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당 의원들을 향해 "정신이 나갔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윤리위원회 제소 검토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민주당은 채상병 1주기인 오는 19일 이전에 채상병 특검법(순직 해병 수사방해 및 사건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법)을 반드시 관철시킨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날 대정부 질문 파행에 따라 채상병 특검법은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고,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법안 처리 저지를 위한 무제한 토론) 일정 역시 취소됐다.
2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는 이날부터 사흘간 대정부 질문에 들어갔다. 첫날인 이날엔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에 대한 질의가 진행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수사 담당자 등 검사 4명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로 여야 갈등이 고조된 채 열린 대정부 질문은 약 두시간 만에 멈췄다. 김병주 의원 발언에 대한 '사과' 여부를 놓고 여야는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질의 순서에서 "정신 나간 국민의힘 의원들"이란 발언을 했다. 이것이 여당 의원들을 자극하며 회의가 정회하는 등 아수라장이 연출됐다. 김 의원은 국민의힘의 앞선 '한일동맹' 표현을 문제 삼았다.
김 의원은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질의하는 과정에서 "여기 웃고 계시는 정신 나간 국민의힘 의원들은 (6월 2일)논평에서 '한미일동맹'이라는 표현을 썼다. 국민의힘에서는 '계속되는 북한의 저열한 도발행위는 한미일 동맹을 더욱 굳건히 한다'고 했다"면서 "정신이 나가도 한참 나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원은 "일본은 독도에 대한 영토적 야욕을 갖고 있는 나라이고, 그런 나라와 어떻게 동맹을 한다는 것인가"라고도 따져 물었다.
김 의원의 발언에 국민의힘 의석에서는 항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여야가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과 고성을 주고 받기도 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주호영 국회부의장은 정회를 선포했다.
여야의 거친 신경전은 정회 후에도 계속됐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정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거칠고 함부로 막말을 해대는 것에 대해 심히 유감을 표하고 김 의원을 막말 등을 이유로 윤리위 제소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윤종군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김병주 의원이 국민의힘이 논평을 통해 주장한 한미일 동맹에 문제를 제기하자 격분하며 대정부 질문을 중단하고, 사과까지 요구했다"며 "하지만 국민의힘이야말로 국민께 사죄해야 한다"고 맞받았다.
민주당은 대정부 질문 파행 후 국민의힘의 사과와 주호영 국회 부의장의 각성을 요구하는 규탄대회도 이어갔다.
기싸움은 '전현직 법무부 장관'인 박범계 민주당 의원과 박성재 장관의 사이에서도 벌어졌다. 대정부 질문에 앞서 민주당 등 야권은 국민의힘의 불참 속 이재명 민주당 전 대표의 '대장동·백현동 특혜 개발의혹'과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의혹' 사건의 수사 담당자 등 검사 4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회부했다. 국민의힘은 탄핵소추안에 대한 법사위 회부의 건이 의결된 이후에 대정부 질문에 참석했다.
여당 의원들은 본회의장 입장 후 '민주당의 꼭두각시 중립 없는 국회의장, '국회 유린 국회의장, 민주당에 들어가라' 등 문구가 쓰인 피켓을 좌석에 붙였다.
검사 탄핵과 관련한 박범계 의원의 질의에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특정 정치인을 수사했다는 이유로 검사에 보복적으로 탄핵이라는 수단을 내거는 것은 제도 취지에 맞지 않을뿐더러, 검사들을 정치적으로 압박하는 모습은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성과 형사사법 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검사 탄핵과 관련 이원석 검찰총장이 '이재명 전 대표가 재판장 역할을 한다'고 말한 것과 관련해선 "검찰총장의 말에 개인적으로 동의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박성재 장관의 입장에 박범계 의원은 "박 장관께 전임 법무부 장관으로서 그렇게 살지 말라, 공정성을 회복하라는 충고를 드리겠다"고 했고, 박 장관은 "충고 감사히 듣겠다"고 받아쳤다.
전현직 장관 채상병 질의 신경전에
신원식 장관 겨냥 '미꾸라지' 발언도
주호영 "서로 참고 경청, 자제하자"
민주당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 과정에서의 외압 의혹을 재차 제기하며 정부·여당에 대한 압박도 이어갔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박범계 의원이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운영위 회의에서 이 사건의 본질은 항명이라고 했는데 동의하나'라고 묻자 "동의한다"고 했다. '항명인가'라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박 의원이 '대통령의 직권남용 아닌가'라고 묻자 "대통령 직권남용이라는 건 받아들일 수 없고, 그건 박정훈 대령의 일방적 주장이다. 나머지 모든 사람은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다'고도 답변했다.
신 장관은 국민의힘 의원이자 국회 국방위원회 여당 간사를 맡고 있던 지난해 8월 21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과 통화하지 않았다고 왜 거짓말했나'라는 박 의원의 질문에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속기록을 보면 채상병과 관련된 사건에 대해 (이 전 장관과) 통화한 적 없다고 분명히 나와 있다"고 덧붙였다.
이 과정에서 야당 의원이 '미꾸라지'라고 소리를 치자, 박 의원은 "미꾸라지는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니고 우격다짐(억지로 우겨서 남을 굴복시킴)이라 보여진다"고 신 장관을 조준했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 순서에서도 여야 사이의 긴장감은 흘러나왔다. 김 의원이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인사를 하지 않은 채 단상에 올랐는데, 김 의원은 이에 대해 "인사는 존경심이 들어야 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우 의장이 민주당의 일방적 국회 운영을 중재하지 않은 데 대한 반발 의사로 보인다.
이외에도 주호영 국회부의장은 양문석 민주당 의원의 고성을 저지하면서 "이런 분위기를 잘못 만들면 (22대 국회 내내)계속 이어져 간다. 서로 참고 경청하고 자제해서 본회의장 분위기를 잘 만들어가자"라는 일침을 가했다.
한편 민주당은 이날 대정부 질문 파행이 채상병 특검법 통과를 막으려는 국민의힘의 술수라는 주장도 펼쳤다. 민주당은 강유정 원내대변인 서면 브리핑에서 "지금 당장 전직 4성 장군이자 동료 의원에 대한 모독을 사과하라"라고 요구하는 한편 "김병주 의원의 발언을 트집삼아 어떻게든 대정부질의를 멈추고 특검 통과를 막으려는 비열한 술수를 당장 멈추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