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대통령실 거부에도 입장 유지
추경호 "상의 없었다…정부 방침 동의"
물러섬 없는 대통령실 "입장 변함없어"
"당-정-의료계 대화부터 시작해야" 조언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내년에 모집할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을 보류할 것을 제안하며 '의정(의료계-정부) 갈등' 중재를 위해 나섰으나, 대통령실이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서 되레 갈등이 생기고 있다. 급기야 30일 예정된 윤석열 대통령과 당 지도부 만찬도 연기되면서 '당정 관계'를 두고 우려가 터져나오고 있다.
28일 정치권에 따르면 한 대표는 지난 25일 고위당정협의가 끝난 직후 한덕수 국무총리와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 등에게 2026년 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을 유예하자고 제안했지만, 대통령실은 한 대표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기로 했다.
한덕수 총리는 전날 진행된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한 대표의 증원 유예 제안에 대한 질문을 받자 "'(한 대표가) 2026년 증원을 유예하면 (의정 갈등이) 좀 더 쉽게 풀릴 것 같다'고 했고, 검토를 해봤는데 정부로서는 어렵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대표는 유예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한 대표는 전날 밤 페이스북에 "2025년에는 입시요강으로 발표된 증원을 시행하되, 2026년엔 2025년에 7500명을 한 학년에서 교육해야 하는 무리한 상황을 감안해 증원을 1년간 유예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며 "더 좋은 대안이 있다면 더 좋겠다. 국민 건강에 대해 큰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또 한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과 면담을 하며 관련 사항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
한동훈 대표는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나 "당이 민심을 전하고 민심에 맞는 의견을 전해야 한다"며 "국가의 임무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게 최우선이다. (국민 건강과 안전을 위해) 어떤 게 정답인지 그것만 생각하면 된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나 "상견례 차원의 모임이다. 여러 현안에 대해 상임위원회 차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공유했다"며 "특히 간호법이 통과된 과정을 설명드렸고 의료 현장에 대한 문제에 대해 서로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했다. 특별히 결론을 내거나 하는 자리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의대 증원 유예에 관해 논의했느냐는 질문에 "당정 갈등으로는 안 비쳤으면 하는 우려가 있었다"며 "현재 일어나는 인식을 공유하는 차원으로, 여기에서 안을 내는 것에 있어서도 정부와 같이 노력을 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 대표가 강한 의지를 내비치자 대통령실도 강경하게 맞섰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나선 것이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의료개혁과 관련해서 대통령실의 입장은 일관된다. 변함없다"며 "한 대표의 의견과는 전혀 무관하게 항상 일관된 입장이었다"고 설명했다.
급기야 기존에 예고됐던 지도부 만찬까지 전격적으로 미뤘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추석 민심을 듣고 그 다음에 만나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만찬을 추석 이후로 연기됐다"며 "추석 민심을 챙기는 게 우선이라 미루게 된 것이라고 보시면 된다"고 말했다.
만찬 연기를 어느 쪽에서 먼저 제의했느냐는 질문에는 "만찬 연기는 상의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된 거로 안다"고 말을 아꼈다.
심지어 대통령실은 원내대표 측에만 사전에 만찬 연기를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한동훈 대표와 2026년도 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 유예에 대해) 구체적으로 사전에 심도있게 상의한 적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의료개혁은 윤석열정부의 중요한 과제로 국민들이 전폭적으로 지지를 보여주고 있다"며 "의료개혁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추진돼야 하고 정부의 방침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당도 함께 할 생각"이라고 한 대표의 입장과 이견이 있음을 밝혔다.
한 대표는 이날 오전까지도 만찬 연기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한 대표는 이날 오전 만찬 연기에 대해 "얘기를 들은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집권여당과 대통령실, 나아가 일부 친윤계와 친한계가 '의정 갈등' 해결 방안을 두고 다소 상반된 입장을 내면서 당정 갈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집권여당과 대통령실이 쌍방 간의 소통 방식을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아울러 국민의힘과 대통령실, 또 의료계가 함께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대화의 장부터 먼저 만드는 식으로 차근차근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최수영 정치평론가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대통령실 입장에서는 한 대표가 이슈를 선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추경호 원내대표 등 당내 의원 나아가 대통령실과 조율도 많이 안 거치고 제안을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계속해서 쌓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런 불신들이 쌓이면 나중에 (당정 간에) 정말 헤아릴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한동훈 대표가 대통령의 권위를 존중하면서도 좀 더 정밀하게 당내 의견을 조율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 평론가는 '의정 갈등' 해소를 위해 한 대표가 해야 할 일을 묻는 질문에 "유예를 먼저 던지기보다 '대화를 시작하자'고 제안하며 당에서도 오고 대통령실에서도 오고 의료계도 함께 하는 3자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며 "그 자체로 국민을 안심시키고 당사자 간 신뢰가 형성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기류가 바뀌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한동훈 대표가 공적 의사 체계에 대해 아직 주도권을 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이라도 한동훈 대표와 당 보건복지위원회 위원들, 그리고 당의 정책위원회 원내대표단이 모여서 한번 토론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곳에서 결론을 모으고 결론을 모은 것을 바탕으로 한동훈 대표가 그 내용을 가지고 대통령실과 조율을 하면 좋을 것"이라며 "그 이후에 필요하다면 직을 걸고 '결단을 내려달라'고 승부수를 띄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