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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이원석 총장 "한쪽서는 '검찰독재' 저주…한쪽서는 해낸 일 없다고 비난"


입력 2024.09.13 11:02 수정 2024.09.13 11:28        황기현 기자 (kihyun@dailian.co.kr)

이원석 검찰총장, 13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서 퇴임식

"사회서 소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 검찰과 사법에 몰아넣는 '소용돌이의 사법' 시대"

"극단적 양극화 빠진 사회, 조롱과 저주, 혐오 판쳐…검찰 '악마화'하는 현상 심화"

"검찰, '옳은 일을 옳은 방법으로 옳게 하는' 사람들…검찰구성원 저력 기대하고 믿어"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 7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약 2년여 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이원석 검찰총장이 "한쪽에서는 검찰독재라 저주하고, 한쪽에서는 아무 일도 해낸 것이 없다고 비난한다"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총장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그동안 조금이라도 나아진 것이 있다면 이는 검찰구성원 여러분이 피와 땀과 눈물로 애쓰신 덕분이고, 아쉽고 부족한 것은 모두 제 지혜와 성의가 모자란 탓"이라며 이같이 전했다.


이 총장은 "별빛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끊임없는 비바람과 거친 파도에 맞서 힘겹게 사나운 바다를 헤쳐 나가야 했다"며 "지금은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종교, 과학, 기술, 의료와 같은 사회 여러 영역에서 소통하고 숙의해 해결해야 할 문제를 검찰과 사법에 몰아넣는 가히 소용돌이의 사법(Jurisdiction of the vortex) 시대"라고 지적했다.


이어 "극단적 양극화에 빠진 우리 사회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고함과 비난, 조롱과 저주, 혐오와 멸시가 판을 친다. 진영과 정파, 세대와 성별, 계층과 지역으로 나뉘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아니 '보고 싶은 것만 보이고, 듣고 싶은 것만 들리는' 그리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회가 됐다"며 "이해관계에 유리하면 환호해 갈채를 보내고, 불리하면 비난하고 침을 뱉어 검찰을 '악마화'하는 현상이 심화됐다. 한쪽에서는 과잉수사라 욕을 퍼붓고, 한쪽에서는 부실수사라 손가락질한다. 만약 그 일이 상대 진영에서 일어났다면 서로 정반대로 손가락질하며 평가했을 일을, 옳고 그름이 아니라 오로지 유불리에 따라서만 험한 말들을 쏟아내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 총장은 또 "한 날, 한시도 노심초사하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을 쏟았지만, 처음 품었던 뜻을 모두 실천하지는 못했다"며 "마주하는 모든 일마다 오로지 '증거와 법리'라는 잣대 하나만으로 판단하고 국민만 바라보고 결정하려 노력했지만, 국민의 기대와 믿음에 온전히 미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달 22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연합뉴스

이 총장은 취임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과 '검수완박' 사태를 겪은 검찰을 '병들어 누운 환자'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뜻을 잃고 망연자실하게 손을 놓은 검찰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며 "우선 법령과 제도를 바로잡고 정비해 수사가 업의 본질인 검찰이 수사를 할 수 있게끔 복원시켰다. 병들어 누운 검찰을 겨우 일어나 앉게 하고, 두 다리로 버티어 서게 하고, 그다음 걷고 뛰도록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음으로 검찰의 존재이유를 되물었다. '민생범죄' 대응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는 결론을 금세 찾았고, 국민들의 마음에 도사린 걱정거리를 살폈다. 국민들의 걱정거리를 해소해야 한다는 고민 끝에, 성폭력·디지털성범죄, 스토킹, 혐오범죄, 전세사기, 보이스피싱, 아동학대, 마약, 음주운전, 금융·증권범죄에 역량을 집중했다"고 부연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범죄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야 할 형사사법기관인 검찰과 경찰의 역할과 기능을 쪼개고 나누고 분산해 서로 갈등하도록 만들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총장은 "통섭과 융합의 시대에 그렇게 해서는 일이 되지 않고, 이는 시대정신이 아니다"라며 "검찰 혼자서 일하는 시대는 지났으며, 여러 기관의 칸막이를 없애 함께 일하는 것만이 국민을 위한 공직자의 자세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증권범죄합수단, 가상자산범죄합수단, 보이스피싱합수단, 국가재정범죄합수단, 마약범죄특별수사본부, 환경범죄합동수사팀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이 총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초기라는 어려움에도 원칙과 기준을 확립해 고용노동부와 함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임금체불과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엄정대응 기조를 세웠다"며 "제주 4·3, 납북귀환어부, 5·18 관련자의 직권재심과 명예회복을 차근차근 추진했으며, 서해공무원 피격사건과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 기소를 통해 공동체의 헌법질서를 지켜내고자 했다. 대선과 지방선거 사범에 대해서는 당적·진영·정파와 관계없이 수사하고 처분해 법의 형평을 이뤄냈다"고 강조했다.


대검찰청 ⓒ연합뉴스

이어 "검찰은 '옳은 일을 옳은 방법으로 옳게 하는' 사람들"이라며 "부정부패와 비리에 대해 하나하나의 사건마다 '지구가 멸망해도 정의를 세운다'는 기준과 가치로 오로지 증거와 법리만을 살펴 접근해야 하고, 개인이나 조직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아야 한다. '관용과 자제'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전제가 사라진 시대에 이러한 노력은 설 땅을 찾기 매우 어렵고 근거 없는 비난과 매도에 시달리게 되지만, 그것이 검찰의 숙명이라고 여기며 견뎌내야 한다. 검찰과 사법에 사회의 모든 문제를 몰아넣고 맡겨 오로지 자기 편을 들어달라고 고함치는 '소용돌이의 사법' 시대에도 검찰은 '법의 지배', '법치주의'의 원칙을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정당한 수사와 재판에 대한 근거 없는 허위 주장과 공격,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지 못할 검사탄핵의 남발, 국가를 사람에 비유한다면 눈과 귀, 팔과 다리의 역할을 하는 검찰을 아예 폐지한다는 마구잡이 입법 시도까지 계속되면서 명예와 자긍심만으로 버티는 검찰구성원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다"며 "인력, 법령, 제도와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은 채 검찰구성원들의 희생과 인내만이 요구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애썼지만,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안타깝고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 총장은 "법령과 제도 탓만 할 수 없는 것이 공직자의 처지"라며 "'군자는 의(義)에 민첩하고, 소인은 리(利)에 민첩하다'는 옛말이 있지만, 의에 민첩하면, 시간이 걸려도 긴 안목으로 보면 저절로 리가 따라올 것이다. 실력과 겸손을 갖춘 검찰구성원들의 저력을 기대하고, 또 믿는다. '공직자가 힘들어야, 국민이 편안하다'는 믿음을 갖고 국민을 섬기는 검찰을 만들어 가자"고 당부했다.

황기현 기자 (kihyun@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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