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총파업, 언제까지 시민 불편을 무기로 삼을 것인가 [기자수첩-사회]

허찬영 기자 (hcy@dailian.co.kr)

입력 2025.05.22 07:00  수정 2025.05.22 10:14

전국 17개 시도 버스 노조, 28일 총파업 예고…상여금 등 통상임금 반영해달라 요구

서울시, 노조 조건 수용 시 인건비 총액 1조6180억원 달해…노사 임단협 난항

총파업 현실화하면 시민 이동 마비…노조, 공공 불편 협상 카드로 삼아

시민 볼모 협상 더 이상 설득력 갖기 어려워…파업 방식·방향 다시 고민해

서울시버스노조가 지난 14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별관 인근에서 서울시 규탄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연합뉴스

서울 시내버스를 포함한 전국 17개 시도 버스 노조가 오는 28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총파업이 현실화되면 버스 업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2년 연속 파업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파업의 이유는 정기 상여금 등 각종 수당을 통상임금에 반영해달라는 요구다. 대법원 판례에 근거한 이들의 요구가 법적 타당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 주장을 관철하는 방식이다.


버스 노조는 해마다 반복하듯 시민의 발을 멈추게 만드는 총파업을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처럼 시민을 볼모로 삼는 파업 방식을 정당한 투쟁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노조가 요구하는 조건을 모두 수용할 경우 버스 운전직 인건비 총액은 1조6180억원에 달한다. 이미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가운데 추가 인건비 부담은 서울시뿐 아니라 국민 세금으로 충당될 수밖에 없다. 노조의 입장에서 임금은 생존권과 직결되므로 절박한 요구일 수 있다. 그러나 공공서비스라는 본질을 망각한 채 시민의 일상과 권리를 볼모로 잡는 행동은 그 어떤 정당성도 확보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번 파업이 서울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국 17개 시도 버스 노조가 동시 파업을 예고하고 있어 시내버스, 고속버스, 전세버스, 마을버스 등 총 4만대 이상의 버스가 멈춰 설 수 있다. 버스는 서민과 학생, 노년층 등 교통 약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으로 이들의 출퇴근길, 통학길, 병원 방문, 장보기까지 일상의 모든 이동이 마비될 수 있다.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이처럼 공공의 불편을 협상 카드로 삼는 방식은 사회적 지탄을 받기에 충분하다.


해외 사례를 보면 서울 시내버스 노조와는 사뭇 다른 방식의 파업도 존재한다. 일본의 일부 버스 노조는 파업 중에도 버스를 평소 같이 정상 운행하면서 탑승객에게 요금을 받지 않는다. 이른바 '무임 운송 파업'이다. 시민의 불편은 없고 사측은 수익 손실을 감수해야 하므로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는 구조다. 노조는 시민의 지지를 얻으며 협상력을 강화하고, 사측은 압박을 받되 공공성은 유지된다. 더구나 우리나라처럼 준공영제로 버스 회사의 손실을 공공이 보상해주는 구조에서는 이런 파업 방식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무임 운송 파업은 현행법상 불법으로 간주될 수 있다. 요금을 받지 않는 행위가 업무방해로 처벌받을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제도적 한계를 이유로 시민 불편을 당연시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려는 지금의 방식은 정당화될 수는 없다.


노조는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조직이고, 그들의 목소리는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공공재인 대중교통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면 일반 기업 노동자와는 다른 사회적 책임 또한 져야 한다. 시민의 발을 묶고 고통을 유발하는 파업은 노조 스스로의 명분과 도덕적 정당성을 잃게 만들 뿐이다. 특히 매년 반복되는 총파업은 시민들의 피로감과 반감을 키우고 노조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제 노조는 파업의 방식과 방향을 다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시민의 고통 위에서 이뤄지는 협상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일본처럼 새로운 방식의 투쟁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해 나가려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정당한 권리를 지키려는 투쟁이 오히려 시민의 삶을 무너뜨리는 역설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시민의 지지를 얻는 투쟁, 시민과 함께 가는 협상이야말로 진정한 노조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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