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서방 연대 vs 한미일 공조 정세 재편
북한에 손 내밀었지만 돌아온 건 '방중'
트럼프 피스메이커로 띄우며 기조 선회
우원식 의장, 북한과 깊이 있는 교감 無
북한·중국·러시아 정상이 나란히 톈안먼광장 성루(망루)에 오른 중국 전승절 열병식이 열린 가운데, 우리 정부는 별도 대북 메시지를 내지 않고 신중한 기조를 유지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광복절까지 북한을 향해 대화를 제안하는 유화적 메시지를 이어왔지만, 미국·일본과 정상외교 이후에는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정부가 사실상 '대북 발신을 멈춘 시점'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수석·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전승절 망루에 오르며 북 ·중·러 연대를 과시했다.
3일 정치권에 따르면 중국의 항일전쟁 승전 80주년을 맞아 열린 전승절 열병식에서 북 ·중·러 정상이 66년만에 '반(反)서방 연대'를 시각적으로 선언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1959년 중국 국경절(건국기념일) 열병식에 당시 김일성 북한 주석·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가 함께 톈안먼 망루에 선 이후 처음이다. 냉전 종식 후 처음으로 연출된 장면이기도 했다.
북·중·러가 전승절을 계기로 공개적인 '미국 패권 대항' 구도를 연출한 반면, 한·미·일은 최근 정상외교를 통해 협력 기류를 강화하는 흐름이다. 이 대통령이 북한 관련 언급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는 것 역시 최근 들어 강화된 한·미·일 협력 구도와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중국 전승절 열병식과 관련 '북·중·러 밀착이 강화됐다는 평가'에 대한 입장을 묻자 "대통령실에서 특별한 평가가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주변 국가들에 대해서는 늘 면밀하게 (살피고 있고) 그리고 한반도를 비롯한 국제 정세가 원낙 복잡다단한 형태라 그런 과정에서 당연히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전날에도 대통령실은 김 위원장의 방중에 따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소집 계획 여부에 대해선 "개최 여부부터 결과까지 모두 비공개이기 때문에 말하기 어렵다"며 입장 표명을 자제했다.
이 대통령은 앞서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 대화 단절의 책임을 지난 윤석열 정부에 돌리고, 북한을 향해 현재의 '김정은 체제'를 존중한다고 천명했다. 그러면서 "엉킨 실타래일수록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풀어야 한다. 앞으로도 우리 정부는 실질적 긴장 완화와 신뢰 회복을 위한 조치를 일관되게 취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지난달 18일 열린 을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선 "을지연습은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방어적 성격으로, 이를 통해 북한을 공격하거나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려는 의도가 없음을 분명히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이 대통령 실명을 거론하며 "망상이고 개꿈" "리재명은 이러한 력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을 위인이 아니다"라는 조롱성 비난을 퍼부었다. 이에 대통령실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선제적 조치"라며 북한에 대한 자극을 피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결국 돌아온 건 김정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이었다.
최근 이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피스메이커'로 지칭하며 대북 문제 해결의 무게중심을 미국에 두겠다는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북한이 반복해서 대화 제안을 외면하자, 이 대통령은 미국과의 정상 외교를 통해 한미 관계 복원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직접적인 대북 메시지를 줄이는 대신, 미국과의 공조 속에서 우회적인 해법을 찾는 외교 전략에 방점이 찍히고 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과도 만나고 북한에 트럼프 월드도 하나 지어서 거기서 골프도 칠 수 있게 해 주시라"는 요청도 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 앞서는 일본을 먼저 방문해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하며 한미일 협력 구도를 다지는 데 집중했다. 한미일 공조에 무게를 둔 최근 흐름을 감안하면 전승절 당일 정부가 침묵을 택한 것도 같은 연장선상으로 읽힌다. 북·중·러 정상의 연대가 강조된 이번 전승절에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 반응한 점을 감안했을 땐, 우리 정부의 조심스러운 대응은 한미 간 외교적 균형을 의식한 행보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북·중·러 정상의 연대가 부각된 열병식에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식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중국이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자유를 쟁취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미국인들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희생된 미국인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들을 향한 불만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 국민들이 이 기념일을 오래도록 기억하길 원한다"며 "미국을 상대로 음모를 꾸미고 있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에게도 따뜻한 안부를 전해달라"고 비꼬았다.
다만 우리 정부의 대북 발신 자제 기조와는 달리, 베이징을 찾은 국가 의전서열 2위 우원식 국회의장은 열병식 참관 전 김 위원장과 간단한 수인사를 나누는 등 접촉에 나섰다. 두 사람 사이에 유의미한 대화나 교감이 오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고, 외교적 의미를 부여하긴 어려운 접촉이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우원식 의장은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에게 "(2018년 이후) 7년 만에 다시 봅니다"라고 말을 건넸으나, 이에 김 위원장은 "네"라고 답했을 뿐 그 외 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 의장은 김 위원장과 멀리 떨어진 반대편에서 열병식을 참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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