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제동에 '재판중지법' 멈췄지만…'당정갈등' 고착 조짐 [정국 기상대]

김주훈 기자 (jhkim@dailian.co.kr)

입력 2025.11.06 04:00  수정 2025.11.06 05:11

李 임기초반인데…여러차례 '이견노출'

여당 일부서도 "부담주지 말아야" 지적

이례적 입장표명에 '鄭 견제설' 재점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오전 국회본청에서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2026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대통령 시정연설을 마친 뒤 국회본청을 나서며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현직 대통령의 형사재판을 중지시키는 이른바 '재판중지법'(형사소송법 개정안) 추진 철회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대통령실의 개입으로 여당의 법안 추진이 가로막히면서, 당정 엇박자 논란이 또다시 수면 위로 올랐기 때문이다. 여당은 '갈등설'을 일축하고 있지만, 대통령실이 이례적으로 입장을 밝힌 것은 지도부에 그동안 쌓인 불만을 터뜨렸다는 관측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5일 경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후속조치를 위한 비상설 특별위원회인 'APEC 성과 확산 및 한미관세협상 후속지원 위원회'를 구성했다. 이재명 정부의 외교 성과를 제도와 예산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된 위원회다.


통상적으로 정부의 성과를 뒷받침하기 위해 여당이 특별위원회 등 협력을 위한 기구를 만드는 것은 일반적인 수순이다. 하지만 불과 이틀 전인 지난 3일 '재판중지법' 추진을 철회한 배경에 APEC 정상회의 성과 홍보 등 이유를 내세운 만큼, 법안을 둘러싼 당정 갈등설을 진화하기 위한 여론전의 일환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당정 간 엇박자로 인한 갈등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6월 이후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과 검찰개혁 후속 조치 등 굵직한 사안에서 이견이 드러났고, 이재명 대통령의 교통정리로 갈등은 일단락됐다. 세제 개편안의 경우 당이 주식시장과 투자자 반발을 의식해 제동을 걸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국무총리 산하 검찰개혁추진단을 두고선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충돌이 발생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그로부터 2개월여 만에 갈등설이 또다시 촉발된 것이다.


다만 이번 재판중지법 사안은 그동안의 의견 차이와는 결이 사뭇 다르다. 단순히 법안의 세부 내용을 두고 입장이 다른 것과 달리, 이 대통령의 만류에도 추진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앞서 민주당은 이 대통령 당선 직후 형사소송법 등 쟁점 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새로운 원내지도부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이 대통령의 의중이 담겼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럼에도 당은 해당 법안을 재추진했고, 결국 이 대통령 부담으로 이어졌다.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 ⓒ뉴시스

최근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에 연루된 민간업자들이 1심에서 모두 중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자, 여야는 이 사건에 연루된 이 대통령의 유·무죄를 두고 충돌했다. 여기에 조원철 법제처장이 이 대통령의 12개 혐의가 모두 무죄라는 주장을 펼치자, 야당의 반발은 거세졌다. 당장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 재판 재개 필요성을 압박하자, 민주당은 이 대통령이 당초 해당 법안 보류 의사를 드러낸 것은 이해하지만 "국민의힘의 사실왜곡에 대한 정당방위"라는 이유를 들어 재추진 입장을 밝혔다.


문제는 '국정안정법'이라는 이름으로 변경한 채 APEC 정상회의 직후 곧바로 추진 의사를 밝혔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이번 APEC에 대해 "역대급 성공"이라는 평가와 함께 한미 협상 타결에 따른 대미 투자 등 현안에 대한 국회 차원의 후속 조치에 나서겠다고 했다. 야당조차 APEC 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에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외교 문제로 그동안 발목 잡힌 이재명 정부가 국정 과제에 고삐를 당길 환경이 마련됐다는 분석이 나왔지만, 여당의 쟁점 법안 강행 논란에 사실상 치적이 묻혔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APEC을 계기로 대통령 지지율이 오르고 있고, APEC 성과와 한미 협상 결과, 예산 정국을 거치면 경제에 올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며 "당이 추석 이후에도 계속 재판에 몰입하는 것은 대통령 지지율에도 내년 지방선거에도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대통령실이 당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례적인 것 같다"며 "(대통령실이) 그동안 불만이 많이 쌓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결국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직접 나서 "민주당의 사법개혁안 처리 대상에서 '재판중지법'을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고, 이에 앞서 당도 지도부, 대통령실과 소통을 바탕으로 재판중지법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고 물러섰다. 이후 이 대통령이 지난 4일 국회에서 시정연설에 나섰을 때, 정청래 대표는 환담 이후 "웃고 좋은 얘기만 했다"고 말하면서 갈등설도 일단락된 분위기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또다시 '명청갈등'(이재명·정청래)은 재조명 받고 있다. 그동안 정치권에선 당정 간 이견 노출을 두고 주도권 싸움 나아가 차기 권력 다툼이라고 의심했다. 여당에 대한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 임기 초반 갈등설이 잇따라 불거졌기 때문이다. 당시 당내에선 "의사소통 과정"이라고 일축했지만, 이젠 당정이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가 표출되는 실정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사법불신 극복·사법행정 정상화 TF' 출범식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나아가 일부에선 이 대통령이 정 대표에게 '경고성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강 실장이 "대통령을 정쟁의 중심에 끌어넣지 않아 주길 당부한다"고 말한 부분이 민주당 지도부를 겨냥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동안 당정 갈등설이 불거졌을 당시 대통령실은 진화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번 사안만큼은 "대통령실과 대통령의 생각은 같다"며 적극적인 입장 표명에 나섰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 대통령과 달리 정 대표는 거칠게 문제를 처리하려는 모습이 '자기정치'라고 보일 수밖에 없다"며 "지금은 정교하게 정부를 뒷받침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인데, 정 대표가 처리를 깔끔하게 하지 못하니까 말이 계속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당대표 1기 지도부에서 원내대표를 지낸 박홍근 의원은 지난 4일 YTN라디오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해 "당은 대통령을 보호해 국정 안정을 도모하려는 취지였으나 정작 대통령의 생각을 정확히 읽지 못했다"며 "향후 이런 혼선이 국정 운영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조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야권에선 민주당의 '재판중지법' 추진을 패착이라고 보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무죄'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5월 상고심에서 전부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일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는데, 현재 재판이 중단됐음에도 '재판중지법'까지 활용하는 것은 민주당도 유죄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국민의힘은 주장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민주당이 이 대통령의 만류에도 다시 재추진한 것은 선거법 위반 사건이 유죄라고 보는 것"이라면서 "더욱이 유·무죄를 떠나서 단 한 사람을 위한 맞춤형 법을 만드는 것 자체가 사법 파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향후 재판중지법을 둘러싼 당정 갈등이 재발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여당은 해당 법안을 철회하겠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당내 일부에선 이 대통령의 재판을 두고 국민의힘이 공세 수위를 높일 경우 재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는 검찰·사법 개혁을 주도한 당내 강경파의 주장인데, 당초 국회 본회의에 계류된 형사소송법의 재추진을 의원총회에서 거론한 것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이다. 사실상 재판중지법에 대한 불씨가 꺼진 것이 아닌 만큼, 당정 갈등도 완전히 진화된 것은 아니라는 관측이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정국 기상대'를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김주훈 기자 (jhkim@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