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영화센터가 개관을 눈앞에 두고도 정상 운영 여부조차 장담할 수 없는 국면에 들어섰다. 서울시가 지난 15년간 영화계와 시민사회가 함께 논의해 온 시네마테크 원안을 변경해 단독으로 추진해온 데 대해, 영화·시민단체들이 “현 체제와는 어떠한 공식적 협력도 하지 않겠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하며 실질적 거부 행동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서울영화센터 조감
그동안 영화계는 명칭 변경, 건립준비위원회 해산, 필름 아카이브·열람실·전용 상영관 등 핵심 기능 축소, 멀티플렉스형 구조 전환 등 서울시의 일련의 결정이 사전 협의 없이 진행됐다고 지적해왔다. 설명과 논의가 부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불신은 더욱 깊어졌다.
애초 시네마테크는 고전·유산영화 보존과 독립예술영화 상영·교육·연구 기능을 갖춘 ‘영화도서관’ 개념으로 설계된 공공 문화정책이었다. 2010년 이후 TF 운영, 국제 설계 공모, 건립준비위원회 구성 등 여러 절차를 거쳐 민관이 함께 구조를 만든 사업이지만, 2021년 이후 서울시는 기존 협의체를 중단하고 내부 논의를 비공개로 전환하면서 정책 방향을 스스로 조정해왔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번 공동 성명은 그동안 누적돼 온 갈등의 정점으로, 단순한 의견 표명 단계를 넘어 실제 개관 이후의 운영 가능성을 흔드는 ‘물리적 거부’라는 점에서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다.
협력 거부를 선언한 단체들은 한국독립영화협회, 영화수입배급사협회, 미디액트, 지역영화네트워크,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한국예술영화관협회, 영화제정책모임,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등으로, 서울의 독립예술영화 생태계를 실질적으로 구성해온 주체들이다. 이들이 빠져나간다는 것은 공공기관이 기능을 수행하는 데 필수적인 전문성·교육·상영 프로그램의 파트너가 사라진다는 의미다.
앞서 원안 복구 요구 성명에는 단체 43곳과 1508명의 개인이 동참했고, 김지운·봉준호·박찬욱·류승완 등 대표 영화인들도 참여한 바 있어 이번 사태가 특정 단체의 반발이 아니라 영화계 전반이 공유한 우려임을 보여준다.
영화·시민단체는 시네마테크가 특정 조직의 소유물이 아니라 시민 전체의 영화유산과 문화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공공 인프라라고 강조하며, 서울시가 공공성과 전문성을 약화시킨 데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
서울시가 지금의 운영 방침을 유지할 경우, 서울영화센터는 개관 직후부터 시민의 문화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반쪽짜리 시설’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개관을 앞둔 지금, 서울영화센터는 출발과 동시에 정체성과 기능이 흔들리는 위기에 놓인 셈이다.
서울시는 이제 원안 복귀와 공론장 재개라는 영화계의 요구를 받아들일지, 혹은 현 추진 체제를 유지한 채 개관을 강행할지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어느 선택을 하든 논란과 책임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미 형성된 만큼, 서울영화센터는 개관 직전부터 공공성·전문성·운영 기반이 흔들리는 진퇴양난의 국면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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